경북 포항 구룡포과메기문화관에 교복 차림의 중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태블릿으로 AR·VR 콘텐츠를 체험하고, 한쪽 교실에는 국가유산 교육사의 수업을 들으며 국가유산 모형을 만드는 학생들은 연신 호기심 어린 몰입을 이어갔다. 박물관 유리 너머로 바라보던 국가유산을 직접 조작하고, 질문하고, 반응하는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찾아가는 국가유산 교육 체험관 '이어지교'”가 한창 운영 중인 포항 현장의 풍경이다.
‘이어지교’는 국가유산청이 주최하고 국가유산진흥원이 주관하는 참여형 교육 사업이다. 신체적·지리적 여건과 무관하게 누구나 국가유산의 가치를 향유할 수 있도록 지역 곳곳을 직접 찾아가 교육·체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복합문화시설이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체험관을 여는 거점형과, 버스를 개조해 학교·복지기관으로 직접 이동하는 방문형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된다. 2020년에 시작해 7년째를 맞은 사업은 지난해 전라북도·전라남도·제주특별자치도에서 운영한 데 이어 올해는 경상북도·부산광역시·경상남도 일대 150개소를 순차적으로 방문한다.
천 년 전 유산이 태블릿 위에 올라오다
AR·VR 콘텐츠, 헤리티지 시네마, 미션게임, 국가유산 교육, 촉각모형 전시로 구성된 ‘이어지교’ 체험관의 프로그램은 과학기술을 매개로 국가유산을 보는 것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바꾸는 시도다.
AR 체험존에서는 실물 큐브를 태블릿 카메라에 비추면 화면 위에 3D 콘텐츠가 겹쳐 나타나는 마커 기반 증강현실 방식이 활용된다. 경복궁 권역의 국가유산을 이야기 흐름에 따라 탐험하는 스토리북 수염도둑, 종묘제례 등 무형유산을 주제로 한 스피드퀴즈가 대표적이다. Color to Life for Racing은 태블릿으로 직접 색칠한 캐릭터를 AR로 불러내 광화문 월대를 배경으로 한 레이싱 게임에 등장시키는 콘텐츠다. 직접 만든 캐릭터가 화면 속 경복궁 앞을 달리는 순간, 국가유산은 감상의 대상에서 놀이의 배경으로 자리를 바꾼다.
VR 콘텐츠는 한층 몰입도가 높다. 한반도의 공룡 콘텐츠는 진주·고성·보성 지역 공룡 화석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복원한 가상 생태 환경을 제공한다. 발굴된 뼈의 형태와 지층 정보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재구성한 공룡의 모습을 VR 기기를 통해 실제 공간감 속에서 경험하는 방식이다.
대한제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형 VR 영화 '무동', 윤동주의 삶을 CG 인터랙티브 영상으로 구현한 '시인의 방' 등 헤리티지 시네마도 운영됐다. 역사 속 인물의 시점으로 시대를 따라가는 이 콘텐츠들과 연계한 방탈출 미션게임은 단순 관람을 넘어 국가유산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경험을 만들어낸다.
산넘고, 물건너 체험관이 찾아간다
‘이어지교’의 운영 방식에서 주목할 부분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거점형은 구룡포과메기문화관처럼 지역 내 복합문화시설이나 유휴 공간을 체험관으로 전환해 운영한다. 지역 자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국가유산 교육의 거점으로 삼는 구조다. 방문형은 45인승 대형 버스를 AR·VR 실감형 체험 공간으로 개조해 학교와 복지기관을 직접 찾아간다. 학생들이 체험관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체험관이 학생들 곁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2020년 경주·부여를 시작으로 권역을 넓혀온 이어지교는 2023년 충남·충북·대전·세종(24개소, 2,226명), 2024년 경기·강원(60개소, 7,999명), 2025년 전북·전남·제주(108개소, 9,536명)를 거쳐 올해 경북·부산·경남 150개소로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 6년간 누적 수혜 인원은 2만 3천여 명을 넘어선다. 지난 5월 16일에는 방문형 체험 버스가 여객선에 실려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기초자치단체인 울릉군으로 건너갔다.
체험으로 끌? 수업으로 완성되는 연계 교육
AR·VR 콘텐츠가 ‘이어지교’의 전면이라면, 국가유산 교육사가 진행하는 수업은 그 뒤를 받치는 구조다. 국가유산 교육 전문 자격을 보유한 교육사가 각 기관으로 파견돼 연령별 맞춤형 수업을 직접 진행한다.
사이언스타임즈가 찾은 현장에서는 '우리를 지켜온 요새, 한국의 성곽·산성'을 주제로 수업이 진행됐다. 수원화성 축조에 사용된 거중기의 원리, 정조와 정약용의 과학적 사고가 교재와 AR 스티커를 넘나들며 설명됐다. 기술이 환경을 만들고, 교육사가 의미를 채우는 구조다. 이날 현장을 찾은 교사도 이어지교의 교육적 가능성에 주목했다.
한민규 포항 영신중학교 교사는 “자유학기제 과정에서 학생들이 국가유산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교육 경험”이라며 “앞으로 역사 교과를 배울 때 오늘의 체험을 떠올리며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하고, 역사와 국가유산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어·음성·자막이 통합된 교재와 촉각 보조기기 기반의 감각 콘텐츠도 함께 운영된다. 시각장애 학생이 국가유산 정보를 손끝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첨성대·근정전 촉각모형 전시, 토기와 도자기를 3D 입체 퍼즐로 맞추는 체험이 같은 공간에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었다. 장애 여부와 무관하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접근성의 문제를 콘텐츠 구성 단계에서부터 반영한 결과다.
한편, 경상북도에서는 포항 구룡포과메기문화관에 이어 안동시청소년수련관에서도 6월 15일부터 19일까지 거점 연계 운영이 예정돼 있다. 부산 BEXCO에서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와 연계한 거점형 체험관이 7월 20일부터 29일까지 운영되며, 경상남도에서는 9월부터 10월까지 거점형·방문형이 함께 운영된다. 부산광역시·경상남도 소재 학교·복지기관을 대상으로 한 신청 접수가 진행 중이다.
- 김현정 리포터
- vegastar0707@gmail.com
- 저작권자 2026-05-29 ⓒ ScienceTimes
관련기사

뉴스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