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국가 건설의 새 출발점을 마련한 역사적 전환점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정치적 독립을 이룬 ‘대한민국’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착수하면서 과학기술을 국가 근대화의 핵심 동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과학관은 국민의 과학적 사고력을 함양하고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 국가 발전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래서 과학관은 과학 지식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시작해 오늘날에는 과학문화를 선도하고 미래 인재를 기르는 교육의 장으로 진화한, 대한민국 발전사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주년 광복절을 맞은 지금, 사이언스타임즈는 우리나라 과학관이 걸어온 변화의 궤적을 추적하고 이를 통해 과학기술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조명하고자 한다.
식민지 과학관에서 자주적 과학문화 공간으로의 재탄생
1927년 서울시 중구 예장동에 문을 연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은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관이다. 1925년에 일본 천황이 준 은사금 17만 엔을 자본금으로 일본 우에노 과학관을 모델로 삼아, 2년 후인 1927년 5월 10일 서울의 남산 왜성대 총독부 구청사에 개관했다. 14개 상설전시관과 11만 점 가량의 전시물이 소장되어 있을 정도의 규모였으나, 당시 일본은 이곳을 자국의 과학 역량을 선전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실제로 '은사기념'이라는 명칭은 일본 천황의 은혜를 기념한다는 뜻으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또한 과학관 내부에는 일본의 최신 과학기술과 산업발전상을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배치되어 조선인들에게 일본의 우월성을 각인시키려 했다.
해방은 이 공간에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1945년 10월 국립과학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한데 이어 1949년 국립과학관으로 개편되면서 드디어 우리나라 과학문화의 자주적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개편된 국립과학관은 대지 2,885평, 건평 1천 평 규모의 목조 건물에 10여만 점의 동·식물 표본과 실험 기구를 보유한 상당한 규모였다. 1949년에는 제1회 전국과학전람회가 문교부 주최로 경복궁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등 과학 대중화 활동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의 폭격으로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는 비극을 맞았다. 귀중한 동·식물 표본과 실험 기구, 각 분야별 연구 자료가 모두 잿더미가 되면서 우리나라 과학문화의 소중한 자산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특히 석주명이 평생 모은 75만여 점의 나비 표본도 이때 함께 소실되어 한국 곤충학 연구에 큰 손실을 입혔다. 서류창고만 덩그러니 남은 폐허에서 과학관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이후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가던 1955년 과학관 재건 계획이 수립되었고, 1960년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새로운 국립과학관 건립이 확정되었다. 12년간의 긴 공백을 딛고 1962년 8월 30일 마침내 새로운 국립과학관이 개관했다. 이때부터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완전히 벗어던진 진정한 의미의 우리나라 과학관이 시작되었다.
과학관의 현대적 발전이 본격화된 시기는 1990년부터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국립중앙과학관이 개관하면서 서울의 과학관은 국립서울과학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2008년에는 국립과천과학관이 개관해 수도권에 대규모 과학관이 추가로 설립되었다. 이어 지방에도 국립대구과학관, 국립광주과학관, 국립부산과학관이 차례로 개관하면서 전국 권역별 과학문화 거점이 완성되었다.
정적 전시에서 체험형 전시로 전환
1960년대 재건된 초기 과학관은 전통적인 박물관 형태를 따랐다. 박물학, 고생물학, 지질학, 산업기계 등의 유물과 표본을 유리관 속에 진열하고 설명문을 부착하는 정적 전시 방식이 주를 이뤘다. 관람객들은 전시물을 멀리서 바라보며 텍스트 중심의 설명을 읽는 수동적 관람에 머물렀다. 전시실은 조용한 도서관처럼 정숙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고, '만지지 마시오', '조용히 하시오'라는 금지 표지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이러한 정적 전시 방식은 1980년대부터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서구 과학관의 영향을 받아 체험형 전시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 개관한 국립중앙과학관은 이러한 변화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는 기계 모형, 손잡이를 돌려볼 수 있는 실험 장치,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모형 등이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면서 터치스크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인터랙티브 게임 등이 대폭 확산되었다.
미래형 과학관, 전시 콘텐츠와 디지털 기술의 융합
과학관의 가장 혁신적 변화는 첨단 디지털 기술과의 융합이다. 2023년 XR이 급성장한 디지털콘텐츠 기술 1위로 선정된 것처럼 과학관도 AR, VR, MR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실물 표본과 모형 중심의 전통적 전시는 이제 가상현실이 결합된 몰입형 체험으로 진화했다. 관람객들은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로 시간여행을 하거나, 분자 구조 내부로 들어가 원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홀로그램 기술을 활용한 3차원 영상과 터치스크린 기반 인터랙티브 전시도 일반화되었다.
특히 생성 AI 기술의 발달은 과학관 콘텐츠 제작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AI가 개별 관람객의 관심사와 학습 수준을 분석해 맞춤형 전시 경로를 추천하고, 실시간 질의응답을 통해 개인화된 가이드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코로나19 이후에는 메타버스 기반 가상 과학관이 등장해 물리적 제약 없이 전 세계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온라인 과학문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식이 순환하는 허브, 과학관의 역할 확장
전시 방식의 변화는 곧 교육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관람객을 지식의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탐구자로 인식하는 철학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듣고 보는' 교육에서 '만지고 경험하는' 교육으로, 과학 원리를 텍스트로 설명하는 방식에서 직접 실험하고 조작하며 몸으로 체득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과학관의 교육 대상과 역할이 크게 확장되면서 다층적 교육 체계가 구축되었다. 전통적으로 학생들의 견학 장소 역할에 머물렀던 과학관은 이제 전 생애에 걸친 과학교육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대상별로 보면 아동·청소년에게는 취학 전 과학 경험 제공, 정규 과학교육의 심화·보완, 과학적 흥미와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한다. 교사들에게는 과학교육 연수 프로그램과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자료를 지원한다. 일반 성인들에게는 과학 소양 함양과 과학적 사고를 통한 합리적 판단력 향상을 돕는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과학관이 교육기관의 기능에 더해 과학문화 확산의 거점으로 역할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과학적 해석과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며 각종 과학행사와 축제, 사이언스 카페, 과학 토크쇼 등을 통해 과학을 일상과 연결하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지역사회와의 연계도 강화되고 있다. 지자체와 협력한 과학문화 프로그램 개발, 지역 학교와의 연계 교육, 지역 기업과의 산학협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역 문화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부 과학관은 지역의 과학기술 역사를 발굴하고 전시하여 지역 정체성 형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과학관
광복 이후 과학관은 피동적 전시관에서 벗어나 국가 과학문화 발전을 이끄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앞으로는 지속가능성, 포용성, 혁신성을 발전의 핵심 가치로 삼고, 정부의 장기적 지원과 과학관 간 협력, 첨단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개발이 요구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돌아본 과학관의 변화는 시설 운영 방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과학이 사회 속에서 작동하고 대중과 공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미래 세대가 과학을 통해 사고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며, 과학관은 앞으로도 사회 변화를 견인하는 중요한 문화 거점으로 남을 것이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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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8-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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