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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 인터뷰 고규영 KAIST 특훈교수 및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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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준영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 차장)

결핵, 폐렴 진단을 받고 거의 혼절할 정도로 병세를 앓던 한 청년이 자라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지금은 명문 공과대 학 KAIST에서 의사과학자가 됐다. ‘2023년 대한민국최고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고규영 특훈교수(기초과학연구원 단장)의 얘기다.

그는 최근 「과학과기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치매는 베타 아밀로이드, 타우와 같은 독성 단백질이 쌓여 해마의 신경세포를 파괴해 생긴다. 독성 물질을 담은 뇌척 수액 배출을 원활히 하면 자연스럽게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일종의 ‘뇌 청소’를 하는 것과 같다. 최근 미국 바이오젠의 치매치료제(레켐비)가 국내에 들어온다 는 얘기가 들리는데 효과가 20% 정도라고 들었다. 우리가 향후 개발하게 될 관련 신약과 이 치료제를 같이 쓰면 치료보완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구상 모든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 ‘치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 치매 환자는 88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아직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 나이 들어 뇌에 독 성 단백질이 축적되면 뇌세포나 회로망이 망가진다. 이러면 기억을 저장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기능이 떨어져 사고 판단 능력이 떨어진다. 그것이 점점 심해지면 경도인지장 애를 거쳐 치매에 이른다. 현재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상태라 ‘예방’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 교수의 연구가 주목을 이끈 이유다.

고 교수는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하는 뇌 속의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는 주요 경로가 뇌 하부에 있는 뇌 막 림프관임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또 같은 연구에서 나 이가 들어갈수록 노폐물 배출 능력이 떨어지는 뇌막 림프관 기능 저하를 함께 확인했다. 이 연구결과는 뇌의 인지기능 저하,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 교수는 세계적인 생명과학자다. 지난 2002년 대한의 학회가 뽑은 ‘노벨상 근접 한국 20인 과학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북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코넬대학교와 인 디애나주립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전북대학교 의대 교수,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은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장으로도 재직 중이다.

그는 △2002년 대한의학협회의 화이자의학연구상 △ 2007년 분쉬의학상 △2011년 경암상 △2012년 아산의학상 △2018년 호암의학상을 수상했다. 생명과학자로서 치열했 던 연구 궤적이 읽힌다.

고등학교 시절엔 문과생이었고,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가 이번에 죽기 전에 한번 받기 어렵다는 ‘대한민국최고 과학기술인상’을 받기까지, 그의 삶을 돌아보면 ‘인생 전환 포인트’가 많았다.

최근 의사과학자 양성이 과학계 이슈의 한 축을 이룬 가운데, 이에 대한 고 교수의 견해도 밝혔다. 고 교수는 한국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활성화를 위해 의사과학자 확대를 희망했다.

한편,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탁월한 연구성과를 이룬 과학기술인을 발굴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명예와 자긍심을 높이고자 2003년 부터 시상해왔다. 수상자는 연구개발 업적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발전 기여도, 국민생활 향상에 미친 영향 등을 종합평가해 선정된다.

 

Q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을 축하한다.

A 이제까지 같이 연구해온 연구원, 학생연구원, 국내외에 계신 동료연구자들에게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Q 이번에 수상한 연구에 도전한 계기는.

A 우리 몸에서 뇌가 가장 많은 활동을 합니다. 에너지 소모가 많은 만큼 노폐물과 독성 물질들이 많이 생성됩니다. 이 물질들이 150 ml의 뇌척수액에 녹아 있는데, 배출되려면 림프관을 경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배출경로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난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를 밝히고자 우리 연구팀이 도전해 개가를 올린 것입니다.

 

Q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A 뇌는 하루 약 500 ml의 뇌액을 배출합니다. 뇌 활동 이후 생성된 독성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은 이 뇌액과 함께 배출됩니다. 노화는 뇌액 배출 능력을 약화시킵니다. 독성 물질이 뇌 곳곳에 쌓이면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이 발병합니다. 치매 증상을 유발합니다. 뇌액의 배출 경로는 현대 의학에서 100년 넘게 미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뇌가 생명 활동과 밀접하고 단단한 두개골로 쌓여 있어 접근이 어려웠던 탓입니다. 동물의 뇌에 형광물질을 주입하거나 자기공명장치(MRI) 촬영을 수천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뇌의 하수도’ 역할을 하는 전체 뇌 림프관의 정확한 지도를 완성해나가고 있습니다.

 

Q 치료약도 개발할 수 있나.

A 뇌막 림프관을 통해 배출되는 뇌척수액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퇴행합니다. 이때 노폐물이 너무 많이 뇌에 쌓이면 치매 같은 뇌퇴행성 질환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이 배출을 원활하게 해주면 치매 방지 및 진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치료 개념이기 때문에 우선 연구원들이 특허를 갖고 바이오 스타트업 창업을 한 뒤에 큰 기업과 협력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Q 치매는 정복 가능한가.

A 아직 미지의 영역입니다. 암과 달리 치매는 아직 밝혀진 게 많지 않아 도전적인 연구 분야로 분류됩니다. 우리가 뇌막 림프관의 기능과 치매 간의 연관성을 밝혀낸 만큼 이 분야에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연구를 확장해나간다면 의미 있는 연구성과들이 나올 겁니다. 실제로 최근 흥미로운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치매를 다루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볼 수 있을 겁니다.

 

Q 생활 속 치매 예방 팁이 있다면.

A 목 주변을 자주 풀어주며 뇌액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치매 예방에 도움을줄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뇌에서 나온 뇌척수액이 우리들이 발견한 뇌막 림프관을 통해 배출되고 목에 있는 200∼300여 개의 림프절에 모인 뒤 전신 순환으로 들어갑니다. 턱 밑의 목 부위를 마사지해주면 뇌척수액 흐름이 원활해집니다. 아침저녁으로 10∼15분 정도 손으로 턱 밑 목을 잡고 어루만지면 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산책, 독서도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됩니다.

 

Q 지난 30여 년간 연구 스펙트럼을 계속 넓혀오셨다.

A 연구실에서 지낸 대부분의 시간을 모세혈관, 림프관 연구에 매진해왔습니다. 인간의 전체 질환 중 혈관 관련 질환이 3분의 1이 넘습니다. 초기에는 암에 주력했는데, 암 치료율이 70%를 넘어가면서 치매 등 머리 관련 질환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아직 치료율이 20∼30% 미만인 것들입니다. 특히 눈, 코, 목의 혈관과 림프관 연구를 통해 다양한 가지치기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Q 각종 연구성과를 낼 수 있었던 노하우는.

A 무엇보다 문제 설정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해결 가능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과학자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찾아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번 2023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시상식은 제1회 세계 한인 과학기술인대회와 함께 진행되었다.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고규영 교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Q 코로나19 감염 경로를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고 들었다.

A 2년 전 코로나19를 일으키는 SARS-Co-V2 바이러스가 콧속 섬모상피세포에 자리 잡고 증식한 뒤 다른 장기로 퍼져나가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때 비강점막면역 형성이 예방에 중요하다는 가설을 제시했는데 비강점막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강 혈관과 림프관 연구가 전무했습니다. 우리 연구원들이 재능을 발휘해 비강내 혈관과 림프관 지도를 완성했고, 이 연구성과가 지난 5월에 네이처 심순환계 연구의 커버 스토리를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콧속 혈관과 림프관을 3차원(3D)으로 구현한 정밀지도를 통해 어떻게 약물이 흘러가는지 파악했기 때문에 감염 예방법을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팬데믹이 다시 온다면 백신을 근육주사가 아닌 코 안에 뿌리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부작용이 적고 95%의 면역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고규영 교수에게 2023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뒤 기념촬영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Q 코로나19 백신 개발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아직 관련 성과나 경험이 없다.

A 화이자는 보건학자, AI 개발자 등 전문가 100명 이상이 팀을 구성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끝에 빠르게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 규모에선 시도가 힘든 일이지만 정부와 기업, 학계가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Q 앞으로 도전할 연구는.

A 지금까지 연구성과는 대부분 생쥐 실험동물을 통해 이뤄졌는데, 현재는 영장류에서 재현하고 있습니다. 확증이 되면 대상 환자를 대상으로 도전하고 싶습니다.

 

Q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연구하는 의사’의 길을 택한 이유는.

A 원래 고등학교 때 문과였는데, 방학 때 전국 무전여행을 한 뒤 폐결핵을 앓아 1년간 휴학했습니다. 그때 결핵 환자들을 보면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의대에 와서 방학 동안 생리학연구실에 들어갔는데, 조경우 교수님이 ‘한 사람을 살리는 의사도 중요하지만 신약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도 의미 있다’고 조언한 것을 계기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양쪽을 다 알고 있으니 연구의 폭과 깊이가 더 있는 것 같고,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를 가지고 기초 연구를 하니까 더 심오했던 것 같습니다.

 

Q 의사과학자는 수입, 처우가 임상의에 비해 낮아서 지원하려는 의대생이 없다던데.

A 요즘은 그래도 대우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의사과학자가 많으면 좋은데, 연간 4,000명 배출되는 의사 중 1%인 40명만 의사과학자가 돼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는 항상 실패의 연속이고 연구비 걱정에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연구자가 ‘내 연구로 많은 사람을 살린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Q 지난 5년간 4대 과학기술원 및 POSTECH 자퇴생 1,100여 명 대부분이 의대로 재입학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최상위권의 의대 쏠림, 이공계 엑소더스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A 학생 개개인의 바람보다는 사회적인 구조 때문입니다. 삶의 격차가 좁아지고 연구하는 좋은 문화와 환경을 만들면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들 것이라고 봅니다.

 

Q 연구하는 의사가 되려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A 우리 세대보다 좋은 환경인 것 같은데, 불안한 마음과 조급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해당 분야를 공부할수록 연구에 대한 욕구가 생길 것입니다. 차분히 재미있게 집중하다 보면 중요한 발견을 하고 그에 따라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바닥부터 올라가야 합니다.

 

Q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올바른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과학 리포트를 발간하고, 지금도 집현 네트워크 등을 통해 과학문화 확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A 의생명 과학자로서의 즐거운 의무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전문성이 더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일반인과 벽 없이 대화를 나누며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창이라고 봅니다.

 

Q 연구철학이 있다면.

A 지금도 하는 연구에 대해 배가 고픕니다.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죽는 것이 꿈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모세혈관 및 림프관 연구 방향을 머리(뇌 포함)와 목 부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말 흥미로운 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치매 치료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차원의 신약이 나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홍보팀
저작권자 2023-08-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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