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과학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과학기술을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이 승부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이제 과학과 기술, 디자인이 함께 손을 맞잡고 가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과학기술과 디자인이 융합된 운송수단, 주거형식, 이동을 위한 사물들의 디자인은 어떠한 길을 걸어 왔을까.
21세기 디자인계의 새로운 화두는 영웅적인 건축가 혹은 디자이너들이 진두지휘하여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디자이너들이 추구한 새로운 디자인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회 <모빌리티: 움직이는 디자인전>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다음달 11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회는 근대기의 시공간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속도에 대한 집착, 빠름에 대한 강요, 이동성이 현재의 일상 환경에 미친 영향 등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관람객들은 어느 한 시기에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다양한 제품뿐만 아니라 미래에 디자인계를 선도할 제품들을 보면서 디자인의 변천사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의 첫 번째 주제는 질주의 미학, 이동수단에 대한 근대적 속도(modern speed)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은 자전거를 타거나 이탈리아의 자동차, '베스파 스쿠터' 등을 타고 로마를 활보한다. 그 당시 대중들은 그 영화에 등장하는 남녀배우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디자인된 자동차 혹은 자전거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그러한 운송수단의 발전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여러 가지 다양한 현상들을 이끌어냈다.
운송수단의 발전은 그 자체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동차와 기차가 제 속도를 내기 위해 필요한 제반조건, 즉 골짜기를 메우거나 교량을 세우고, 산을 깎아내거나 터널을 뚫어서 속도에 방해가 되는 직선 형태의 도로와 철길을 건설했다. 이러한 직접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운송수단의 발달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여러 운송수단을 타고 점차 도시 근교로 나갔고, 그 과정에서 차창 너머로 재건설된 자연경관이라는 새로운 파노라마를 바라보는 여행을 즐겼다. 또한 그들은 산업화로 오염되고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교외지역의 자연 경관과 넓은 주거 공간에서 쾌적한 생활을 누리며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생활을 했다.
이번 전시회는 바퀴의 발명에서 시작하여 속도를 가진 다양한 이동수단이 만들어지는 이동수단의 역사를 대중화의 초점에서 맞춰 그 현상들을 보여주는 대표성 있는 제품들을 전시했다. 예를 들어 최초의 자전거로 알려진 영국의 'Ordinary'로부터 이동수단을 넘어 대중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온 베스파와 할리데이비슨, 120년 자동차 역사를 보여주는 자동차들이 실물로 전시되었다. 또한 관람객들은 미래에 어떠한 이동수단들이 만들어져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함께 하는지 제시하는 영상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의 두 번째 주제는 유목민적 삶을 추구하는 주거의 이동(moving house)이다. 건축가들은 21세기 디자인의 화두인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주거공간을 재창조하고 있다. 그들은 다각적인 방식으로 이동형 주거공간에 대한 새로운 제안들을 시도했고 운송수단의 발달과 건축 및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그 제안들을 실현시키기도 했다. 어느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캠핑카 형식의 이동형 주택은 이미 상용화되었고, 공간 활용도를 높인 작은 평수의 모듈 주택도 등장했다. 건축가들은 문화 전반의 전 지구화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어느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 자동차 등을 개조하여 이동할 수 있는 주거공간을 재창조한 것이다.
세 번째 주제는 이동을 위한 사물들(objects without place)이다. 운송수단의 발달과 주거공간의 변화는 이동을 용이하게 하는 사물들을 탄생시켰다. 가장 대표적으로 1979년 일본 소니의 워크맨이 등장한 것은 포터블(Portable) 제품의 등장, 그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멀리 이동하면서도 전자 제품을 소지품처럼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이렇듯 개인 소지품화된 포터블 제품의 등장은 공간의 제약에서 사람들을 탈출시켰다.
또한 주거환경에서 이동개념의 부각은 가구 형태의 변화를 가져왔다. 가구의 경우 부피를 줄이고 조립이 가능한 구조가 주로 사용되었다. 즉 접이식 의자처럼 야외에서 손쉽게 사용하는 몇몇 가구를 제외하고 쌓거나 접어서 보관하기 쉬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행용 제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최소한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볍고 작은 제품들이 생산되어 사람들은 편하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이번에 삼성이 아트 마케팅을 펼친 네트워크 기술 분야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다. 노트북과 휴대전화는 전방위적 접속을 통해 장소성의 제약을 벗어나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예를 들어 사진작가 양철모는 샐러리맨 K씨의 하루를 보여주는 특별전시를 마련했다. 양철모는 한 사람이 경험하는 하루 동안의 생활을 통해 한국적 모빌리티 환경, 즉 한 사람의 이동경로와 라이프스타일을 추적한 기록사진을 전시해 현대인의 생활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회는 어디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 유목민처럼 지구촌을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족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과학기술과 디자인이 융합된 새로운 디자인의 세계와 그 곳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전 시 명 : 모빌리티 : 움직이는 디자인 (Mobility: Design in Nomadism)
전시기간 : 2006.11.21(화) - 2006.12.11(월)(11월 27일 휴관)
장 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전시문의 : 580-1496
사 이 트 : www.designgallery.or.kr
- 공하린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06-11-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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