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 과학문화
  • 생활 속 과학

과학도 힙해질 수 있을까 민음사 빵과 국중박 분장놀이처럼 과학을 설명하기보다는 재미있게 스며들어야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민음사와 GS25가 함께 내놓은 민음사 빵. ⒸGS리테일
민음사와 GS25가 함께 내놓은 민음사 빵. ⒸGS리테일

최근 편의점에서는 빵보다 빵 속 책갈피가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출판사 민음사와 GS25가 함께 내놓은 ‘민음사 빵’ 이야기다. 민음사의 문학 작품 이름을 딴 빵 안에는 세계문학전집과 시집을 모티브로 한 책갈피가 무작위로 들어 있다. 지난 8월 출시한 후 첫 일주일 동안 약 20만 개가 팔렸고, 이후에도 인기가 이어져 출시 한 달이 채 되기 전 누적 판매량 100만 개를 넘어섰다. SNS에는 포장을 뜯어 어떤 책갈피가 나왔는지 확인하거나 원하는 책갈피를 구했다는 인증이 이어졌다. 이러한 인기는 독서를 세련된 취향이자 개성으로 즐기는 이른바 ‘텍스트힙’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빵 하나를 샀다고 곧바로 책 한 권을 읽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접한 책갈피의 표지와 멋진 문장은 낯설었던 문학에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민음사 빵처럼 과학도 힙해질 수 있을까

비슷한 풍경은 박물관에서도 펼쳐졌다. 올해 처음 전국 단위로 확대된 국립중앙박물관의 ‘국중박 분장놀이’에는 275팀, 643명이 참가해 자신이 좋아하는 유물을 의상과 분장, 퍼포먼스로 재해석했다. 관람객들은 유물의 이름과 제작 연대를 외우기 전에 먼저 웃고 즐기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유산과 가까워졌다. 어렵고 엄숙하게 느껴지던 문학과 문화유산도 이렇게 힙한 문화가 될 수 있다면, 과학도 가능하지 않을까.

2026 국중박 분장놀이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
2026 국중박 분장놀이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

실제로 과학문화 현장에서도 교육과 강연의 문법에서 벗어나 과학을 즐길 수 있는 경험으로 만드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4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과학문화 팝업스토어 ‘별별잡화점’이다. 방문객들은 자신의 MBTI와 비슷한 성향의 과학자를 찾아보고, 직접 과학 키링을 만들며, AI를 활용한 인생네컷 스타일의 사진을 찍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 주제를 카드 게임으로 접하고 퀴즈를 맞히면서 기관에 대한 인지도도 높일 수 있었다. 첫날 방문객은 300명을 훌쩍 넘었고, 80% 이상이 20~30대였다. 평소 과학관이나 과학 강연을 찾아가지 않던 성인이 과학을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놀러 갈 만한 곳’으로 인식한 것이다.

지난해 4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별별잡화점. Ⓒ한국과학창의재단
지난해 4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별별잡화점. Ⓒ한국과학창의재단

지난 9월 19~20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메이커 페어 서울 2026’도 같은 변화를 보여준다. 기술자와 예술가, 취미 공학자 등 100개 팀의 메이커가 직접 만든 창작물을 선보였는데, AI와 로봇 같은 첨단기술부터 레고, 프라모델, 직접 만든 전기자동차와 악기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관람객도 완성품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작동해 보고 제작자에게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행사가 과학기술의 성과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전시라기보다 DIY와 취미, 디자인, 예술이 과학기술과 뒤섞인 창작 축제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장소 역시 전통적인 과학관이 아니라 유행과 디자인, 전시 공간으로 익숙한 DDP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나는 과학과 관계있는 사람이라는 감각

물론 과학 원리를 자세히 가르치지 않고 재미있는 경험만 제공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문화의 효과를 ‘얼마나 많은 과학 지식을 배웠는가’만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과학교육 분야에는 ‘과학 정체성(science ident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과학 지식과 활동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으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나를 ‘과학과 관계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정도를 뜻하는 개념이다. 과학을 좋아하더라도 ‘나는 문과니까’, ‘과학은 전문가만 하는 일이니까’라고 선을 긋는다면 과학 정체성은 약할 수 있다. 반대로 어려운 공식을 모두 알지 못하더라도 ‘과학도 내가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다’라고 느끼기 시작했다면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과학 정체성’은 내가 과학과 관계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을 의미한다. ⒸGetty Images
‘과학 정체성’은 내가 과학과 관계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을 의미한다. ⒸGetty Images

이런 가능성을 실제 데이터로 살펴본 최근 연구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의 연구진은 미국 고등학생 7,290명을 9학년부터 11학년까지 추적한 자료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40.5%가 고등학교 재학 중 과학관이나 천문관을 방문했는데, 방문한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비슷한 조건의 학생들보다 11학년 말 과학 정체성이 유의미하게 높았다. 교실 밖에서 과학을 접한 경험이 ‘나는 과학과 관계있는 사람인가’라는 자기 인식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설명하기보다는 재미있게 스며들어야

과학문화의 목표는 모든 사람을 과학 전문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평소 과학관이나 과학 강연을 찾아가지 않을 사람도 일상에서 우연히 과학을 만나 ‘과학도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느낄 기회를 만드는 것이 먼저이다. 민음사 빵과 국중박 분장놀이의 공통점은 어려운 내용을 먼저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이미 즐기고 있는 힙한 굿즈와 우스꽝스러운 코스프레 형식 안으로 문학과 문화유산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민음사 빵 속 힙한 책갈피가 두꺼운 책의 첫 장을 펼치게 할 수 있듯, 재미 삼아 움직여본 로봇 하나가 ‘이건 어떤 원리로 움직일까’라는 첫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학에 대한 관심은 어려운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순간보다, ‘과학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깨지는 순간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과학에 대한 관심은 ‘과학이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깨지는 순간에 시작된다. ⒸGetty Images
과학에 대한 관심은 ‘과학이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깨지는 순간에 시작된다. ⒸGetty Images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Engaging future scientists: the effect of science museum visits on high school students' science identity development, Shuan Ai, 2026, Int J STEM Educ

정회빈 리포터
acochi@hanmail.net
저작권자 2026-09-23 ⓒ ScienceTimes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MAIL: sciencetimes@kosac.re.kr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차대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차대길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운영되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과 저소득·소외계층 등의 복지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