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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체가 되지 않고 살아가려면 AI가 만든 보편적 생각들 속에서 개별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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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체' 메인 포스터 Ⓒ쇼박스
영화 '군체' 메인 포스터 Ⓒ쇼박스

영화 <부산행>으로 K-좀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연상호 감독이 신작 좀비 영화 <군체>로 관객들을 찾았다. 영화는 한 빌딩에서 열리는 바이오 기업의 화려한 콘퍼런스에서 시작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연구 성과를 발표하던 바이오 회사의 대표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건물 안에는 좀비가 순식간에 늘어나고 결국 빌딩 전체가 봉쇄된다. 처음에는 네발로 기어 다니던 좀비들은 점차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서로의 감각과 정보를 공유하며 빠르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계속 똑똑해지는 좀비들에 맞서며 건물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집단지성으로 진화하는 K-좀비

해외 영화와 드라마 속 좀비들은 느리게 움직이는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면, 영화 <부산행>과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속 K-좀비는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 특징이다. <군체>의 좀비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집단지성을 갖춘 존재로 등장한다. 이들은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있어, 인간을 공격하다 실패하면 그 경험을 모든 좀비와 공유함으로써 점점 더 지능적으로 발전한다. 좀비들이 일제히 머리를 치켜들고 한동안 기괴한 소리를 내는 장면은 서로의 기억과 경험을 동기화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때는 바로 앞에 사람이 지나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마치 스마트폰이 업데이트 중일 때 잠시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는 상황과 닮아있다. 관객에게는 사람을 향해 달려드는 좀비 자체보다, 모든 정보를 순식간에 퍼뜨리고 함께 진화하는 거대한 두뇌 집단이라는 설정이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영화 속 좀비들은 서로의 기억과 경험을 동기화하며 지능이 높아진다. Ⓒ쇼박스
영화 속 좀비들은 서로의 기억과 경험을 동기화하며 지능이 높아진다. Ⓒ쇼박스

자연계에서도 이러한 집단지성의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꿀벌은 동료에게 먹이가 있는 위치를 알리기 위해 춤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개미는 페로몬 흔적을 남기며 먹이를 찾는 최단 경로를 찾아낸다. 심지어 뇌가 없는 점균류(slime mold) 역시 집단지성으로 놀라운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준다. 황색망사점균(Physarum polycephalum)은 먹이가 있는 지점들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경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데, 한 연구에서는 도쿄 주변 도시들의 위치를 먹이로 배치하자 실제 도쿄 철도망과 매우 비슷한 형태의 연결망을 형성하여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황색망사점균이 먹이를 찾아 만들어낸 경로는 실제 인구 밀도를 반영해 설계된 도쿄 철도망과 매우 유사했다. ⒸScience
황색망사점균이 먹이를 찾아 만들어낸 경로는 실제 인구 밀도를 반영해 설계된 도쿄 철도망과 매우 유사했다. ⒸScience

 

다양성이 사라진 집단의 취약점

하지만 집단지성이 늘 생존에 유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구성원들이 빠르게 정보를 공유하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반대로 잘못된 정보가 들어왔을 때 집단 전체가 한꺼번에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 속 생존자들도 이 약점을 이용하는데, 가짜 사람 냄새를 퍼뜨리자 그 정보를 공유한 좀비들은 엉뚱한 곳으로 몰려가고 생존자들은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다. 빠른 동기화가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모두가 같은 정보를 믿고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집단은 얼핏 강력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다른 판단을 내릴 개체가 없다면 작은 오류에도 전체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다양성과 개별성이 부족한 집단은 새로운 위협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사회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생성형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는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AI가 제시하는 답변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AI가 그럴듯한 답을 빠르게 제공할수록, 사람들이 비슷한 표현과 사고방식에 머물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2024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된 연구는 생성형 AI가 개인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지만, 집단 전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다양성은 줄일 수 있다고 보고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답을 만들지만, 그 데이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생각의 축적이므로 답변도 새로운 발상보다는 기존 표현과 관점의 평균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각자의 경험에서 나온 낯선 생각은 줄어들고, 무난하고 설득력 있어 보이는 답변이 빠르게 퍼지는 것이다. 이는 영화 <군체> 속 좀비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과 닮았다. 문제는 그 방향이 늘 옳지는 않다는 점이다. 잘못된 정보나 음모론처럼 AI가 만든 그럴듯한 답변도 검증 없이 공유되면 집단적 착각으로 굳어질 수 있다.

생성형 AI의 사용은 개인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지만, 집단 전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다양성은 줄어들 수 있다. ⒸGetty Images
생성형 AI의 사용은 개인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지만, 집단 전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다양성은 줄어들 수 있다. ⒸGetty Images

 

군체의 일원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

영화의 마지막은 집단지성이 지닌 역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군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감염자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주입되거나 핵심 연결 지점이 무너지자 전체 집단은 순식간에 마비된다. 이 장면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같은 신호에만 반응하는 존재들이 얼마나 쉽게 조종되고 멈출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연상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현대 사회의 공포를 인터넷 알고리즘 등이 만들어내는 집단지성에서 찾으며, “우리 사회가 하나의 보편적 사고로만 똘똘 뭉쳐 있는 게 왜 위험한지, 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한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개별성과 독창성이 인간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우리가 군체의 일원이 되지 않으려면, 빠른 정보와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점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영화 속 좀비들의 몰락은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업데이트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편리한 기술과 집단의 힘은 활용하되, 그 안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질문하는 독립적인 존재로 남을 때 우리는 잘못된 정보가 주입되거나 사회 시스템이 흔들려도 함께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군체의 일원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점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Getty Images
군체의 일원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점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Getty Images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Rules for Biologically Inspired Adaptive Network Design, Tero et al., 2010, Science

Generative AI enhances individual creativity butreduces the collective diversity of novel content, Doshi et al., 2024, Sci Adv

정회빈 리포터
acochi@hanmail.net
저작권자 2026-06-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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