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펼친 세기의 대결은 대중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직관과 창의성에서도 기계가 앞설 수 있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확인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이 느낀 것은 기술의 진보에 대한 감탄보다도 충격과 두려움이었다.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가 그려온,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이미 대중문화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 속으로 들어온 대화형 AI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기술의 발전은 다시 한번 큰 변곡점을 지나고 있었다. 2022년 11월 30일, 오픈AI는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를 공개했다. 이 서비스의 의미는 단순히 더 똑똑한 인공지능이 등장했다는 데 그치지 않았다. 누구든 전문 코딩이나 복잡한 명령어 없이 평소 말하듯 질문하고, 답변이 잘못되면 바로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고치면서 AI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이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인공지능이 더 이상 개발자나 프로그래머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대중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도록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이다. ChatGPT는 출시 5일 만에 사용자 100만 명을 확보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출시 약 두 달 만에 월간 활성 사용자 수 1억 명을 돌파해 당시 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대화형 AI 서비스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경쟁적으로 등장했다. 구글은 2023년 2월 자사 언어 모델을 바탕으로 한 실험적 챗봇 바드(Bard)를 먼저 발표해 시험 공개했고, 2024년에는 이름을 제미나이(Gemini)로 바꾸며 웹과 모바일 전반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같은 해 검색엔진 빙(Bing)과 엣지(Edge)를 AI 기반으로 재편해, 웹의 최신 정보를 반영하고 출처를 함께 제시하는 대화형 검색 기능을 강화했다. 앤트로픽 역시 2023년 3월 클로드(Claude)를 공개하며 요약, 질의응답, 글쓰기, 코딩 등을 수행하는 대화형 AI 경쟁에 합류했다.
한국에서도 이 흐름은 빠르게 이어졌다. 네이버는 2025년 3월 검색 결과를 요약하고 출처와 추천 콘텐츠를 함께 보여주는 AI 브리핑을 출시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이 기능이 네이버 전체 검색의 20%를 넘어서며 빠르게 안착했다. 카카오는 2025년 10월 카카오톡 채팅탭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ChatGPT for Kakao를 선보였다. 별도 앱 설치 없이 국민 메신저 안에서 AI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고 출시 3개월 만에 이용자는 800만 명으로 확대됐다. 이제 대화형 AI는 몇몇 기술 기업의 실험을 넘어 검색과 메신저 같은 일상 플랫폼의 기본 기능으로 스며드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기술은 우리는 대체할까 확장할까
인공지능 발전이 가져오는 새로운 바람에 적응할 새도 없이, 이제 AI는 소프트웨어에 머무는 것을 넘어 현실 세계로 나오고 있다. 화면 안에서 글을 쓰고 답을 하던 AI가 사물을 인식하고 상황을 판단하며 실제로 움직이는 몸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피지컬 AI의 시대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CES 2026에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산업 현장용 범용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공개했다. 아틀라스는 기존 프로토타입을 넘어 실제 공장 환경에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로봇으로, 56개의 자유도를 가진 회전 관절과 촉각 센서를 갖춘 인간 크기의 손을 지녀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최대 50kg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힘과 정밀한 움직임 덕분에 자재 적재, 조립, 기계 관리 같은 힘들고 반복적인 일을 대신 해 줄 수 있으며, 배터리를 스스로 교체해 사람의 개입 없이 연속해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사람처럼 두 다리로 걷고 물체를 옮기는 로봇이 등장하자 이제는 정말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 혁신은 일자리 ‘대체’라기보다 ‘재편’에 가깝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면서 마부라는 직업은 사라졌지만, 자동차 정비사와 도로 설계자, 보험 설계사 같은 새로운 직업들이 생겼다. 영화관의 필름 영사기가 디지털 상영기로 바뀌자, 필름 영사기사는 사라졌지만 새로운 디지털 장비 전문가와 콘텐츠 제작자가 생겨났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기존 업무를 없애는 동시에 새로운 일을 만들어 냈고, AI 시대에도 일자리 재편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직 AI를 받아들일지 말지 토론하는 사이에도, AI는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다. 내비게이션이 제안하는 경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 목록, 스마트폰 사진의 자동 보정, 카드사의 이상 거래 탐지 등 AI는 점점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배경처럼 작동하는 기반 기술이 되고 있다. 이는 AI의 의미가 단순한 업무 대체의 수준을 넘어 인간의 감각과 판단 능력을 보완하고 확장해 주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정말로 AI 시대가 올까’가 아니라 ‘이미 와 있는 AI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질문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대한민국 과학축제 in 경기’
올해 ‘대한민국 과학축제 in 경기’는 그런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장면으로 느낄 수 있는 자리이다.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고양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의 핵심 키워드는 ‘사람+과학기술×AI’이다. 현장에서는 재난 대응과 산업 현장에 활용될 수 있는 4족 보행 로봇, 관람객의 얼굴과 목소리를 바탕으로 10년 뒤의 자신과 마주하게 하는 AI 체험, 카메라와 자연어 지시를 결합해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범용 AI 로봇 기술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들은 AI가 단지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기억, 노동과 상상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 것이다. 관람객이 원하는 주제로 음악을 만드는 창작 체험, AI를 소재로 한 SF 영상 상영과 과학커뮤니케이터의 강연까지 더해져 기술을 보고 듣고 직접 소통해 볼 기회도 마련된다. 과학의 달을 맞아 AI의 변화를 남의 이야기처럼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면 이번 축제에 꼭 한 번 직접 가보길 권한다.
-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4-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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