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각종 OTT 플랫폼을 켜면 연애 프로그램 포화시대라고 할 만큼 리얼리티 연애 예능이 붐을 이루고 있다. 강렬한 캐릭터를 가진 출연자들이 운명의 짝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흔히 '연애는 케미(chemistry)가 중요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즉, 둘 사이의 케미,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야 더 깊은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여러 리얼리티 연애 예능 프로그램들을 과학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각각에 어울리는 화학 반응을 빗대어 수다를 떨어보고자 한다.
연애는 케미가 중요하다?!
가장 먼저 살펴볼 작품은 최근 새로운 시즌으로 화제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의 <솔로지옥>이다. 이 프로그램은 싱글 남녀들을 무인도에 가둬 두고 커플이 이루어질 때까지 섬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바깥 세상에서는 스치듯 지나쳤을 수 있는 상대방에게도 무인도라는 제한된 공간과 상황에서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무한대로 커지면서 커플이 될 확률도 최대치로 높아진다.
이렇게 평소에는 반응하기 쉽지 않은 물질들을 제한된 공간에 가두어 놓고 빠르게 반응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야광봉이다. 야광봉 튜브 안에는 과산화수소 용액와 다이페닐 올살레이트라는 물질이 작은 유리관을 경계로 분리되어 있다. 이때 야광봉 튜브를 꺾어 유리관이 깨지면 두 물질이 섞이며 주위에 있는 형광 염료들을 자극하게 되고, 그 결과 다양한 색상의 빛을 내게 된다. 서로 관련이 없었던 두 물질을 야광봉이라는 고립된 공간에 가둬두니 둘 사이의 케미가 발생하는 것이다. 야광봉을 흔들거나 온도를 높이면 내부 물질의 혼합이 빨라져 빛이 더욱 밝아지는데,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게임과 미션들도 참가자들 간의 접점을 늘려서 더 많은 케미가 발생하도록 설계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프로그램은 작년 7월에 방영하였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연애 예능 프로그램인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이다. 제목 그대로 한 번도 연애를 제대로 해보지 못한 이들이 용기를 내어 사랑을 찾아나가는 리얼리티 쇼이다. 출연자들은 평소 이성을 대하기가 너무 어렵고 어색해서 소개팅을 나가도 마치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는 이들을 돕기 위한 연애 코칭 전문가들이 붙어서 스타일링부터 대화법까지 세심하게 조언해준다.
우리가 자주 먹는 마요네즈 역시 물과 기름을 섞어서 만든 음식이다. 마요네즈의 재료인 식초와 식용유는 서로 밀어내는 성질 때문에 층이 분리되지만, 계란 노른자에 있는 레시틴 성분이 이를 하나로 묶어준다. 레시틴 분자는 물과 기름 모두와 친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둘 사이를 중재하며 안정적인 혼합 상태(마요네즈)를 만들어준다. 전문가의 연애 컨설팅은 마요네즈의 레시틴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처음에는 도저히 연애 반응을 일으키기 어려웠던 모태솔로 남녀들도 적절한 중재와 조언을 거치면서 점차 부드럽게 섞이고 발전하는 모습이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이다.
연애가 약한 결합이라면 결혼은 공유결합
세 번째로 다룰 프로그램은 SBS Plus의 장수 연애 예능인 <나는 SOLO>이다. 이 프로그램도 여러 남녀가 모여 합숙을 하는 형태는 비슷하지만, 출연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연애가 아닌 결혼에 맞춰져 있다. 실제로 출연자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기준은 취미나 호감도 같은 연애 감정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을 함께할 배우자로서의 조건까지 폭넓게 고려한다.
화학 결합에도 연애처럼 두 원자가 가볍게 붙었다가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약한 결합이 있는가 하면, 결혼처럼 단단하게 붙어서 되돌리기 어려운 결합도 있다. 머리를 물로 적신 후 롤로 웨이브를 넣으면 잠깐은 곱슬머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온다. 머리카락을 구성하는 케라틴 단백질들 사이의 결합이 일시적으로 변하여 모양이 바뀌었지만, 약한 결합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본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미용실에서 하는 파마는 케라틴 단백질 사이의 이황화결합(황원자 사이의 공유결합)을 한차례 끊었다가 새로운 형태로 재결합시키는 것이라서, 한 번 모양이 잡히면 웬만해선 풀리지 않고 안정적인 곱슬머리를 유지한다. 결혼 상대를 찾는 <나는 SOLO>는 미용실 파마와 같아서, 웬만해서는 끊어내기 힘든 강한 결합의 상대방을 찾기 위해 서로의 가치관, 가족 관계, 경제력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화학 반응 측면에서 보자면, 단지 불꽃 튀는 반응이 아니라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결합을 위해 신중하게 계산하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목표를 위해 가족 단위의 출연자가 등장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SBS에서 방영 중인 <합숙맞선>은 결혼 적령기의 싱글 남녀가 어머니와 함께 합숙하며 인연을 찾는다는 콘셉트이다. 자녀들의 이상형과 현실적인 조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어머니들이 직접 나서서 결혼 성공시키려는 모습은, 마치 세포 속에서 리보솜의 도움을 받아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닮아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들이 줄줄이 연결되며 만들어지는데 이들이 올바른 순서로 이어져야만 정상적 기능을 하는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리보솜이라는 거대한 복합체인데, 리보솜은 mRNA 서열을 읽으면서 아미노산이 정확한 순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합숙맞선>에서 활약하는 어머니들도 마치 리보솜처럼 자녀(아미노산)들이 적합한 배우자를 찾아 결혼(단백질)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때로는 만남에 개입하기도 한다. 물론 최종적인 선택은 자녀 본인의 몫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어머니들은 리보솜처럼 잘못된 결합이 생기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갈등의 연쇄반응을 조절하기 위한 제어봉
비록 연애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남녀 관계의 케미를 다룬다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JTBC의 <이혼숙려캠프>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부부들이 참가하여 일정 기간 함께 머물며 숙고할 시간을 가진다. 단순히 이혼을 막는 것이 아닌, 각 부부가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출연한 부부들은 이미 몇 번이나 크게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은 만큼 작은 말 한마디에도 감정이 폭발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경우가 많은데, 마치 원자력 발전소에서 연쇄반응 제어가 실패하여 큰 사고가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보게 된다.
핵분열로 에너지를 만드는 원자로에서는 중성자들이 연쇄적으로 방출되어 계속 새로운 핵분열을 일으키는데, 이를 안정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제어봉을 사용한다. 제어봉은 중성자를 잘 흡수하는 카드뮴, 붕소와 같은 물질로 만들어진 막대인데, 원자로 속을 드나들며 중성자 수를 조절하고 그 결과 원자로의 출력이 조절된다. 출연한 부부들도 합숙 과정에서 제어봉과 같은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전문가 심리 상담과 배우들의 상황극은 감정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갈등 에너지가 더 이상 위험한 연쇄반응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완전히 갈등이 없는 관계가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원자로가 전혀 반응하지 않으면 전기가 만들어지지 않듯, 어느 정도의 갈등은 오히려 관계를 깊어지게 만드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폭주하지 않도록 관계의 제어봉을 사용하여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이처럼 연애 예능 속 다양한 인간관계는 화학 반응의 여러 모습과 닮아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을 단순한 반응식으로 치환할 수는 없지만, 연애 예능 속 케미를 보며 비슷한 화학 반응을 떠올려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이다.
-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2-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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