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가 공개와 동시에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작년 12월 16일 공개된 후 첫 주에만 550만 명이 시청했으며, 글로벌 TOP 10 TV쇼(비영어)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흑백요리사>는 한국의 정상급 요리사 100명을 백수저(스타 셰프)와 흑수저(신예 무명 요리사)로 나누어 요리 대결을 펼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2024년 방영되었던 시즌1이 같은 부문에서 3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었는데, 시즌2 역시 공개 직후부터 요리판 서바이벌이라는 독특한 긴장감과 셰프들의 개성 넘치는 조리 방식 덕분에 높은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돌풍 <흑백요리사2> 요리 대결 속 과학
이번 시즌에서 눈길을 끈 인물 중 한 명은 분자요리로 유명한 신동민 셰프이다. 그는 2006년 국내에 분자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분자요리란 요리의 재료와 조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색다른 식감과 맛을 창출하는 조리 방식이다. 솜사탕과 팝콘도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분자요리이다. <흑백요리사2>에서 신동민 셰프가 선보인 '-196℃ 사과'에도 조리 과정 하나하나에 분자요리 기법과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다.
요리는 사과를 버터에 볶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사과에 함유된 당류가 높은 열에 의해 캐러멜화 반응을 일으켜 고소하고 풍미 있는 단맛이 생긴다. 볶은 사과를 믹서로 곱게 갈은 후 질소 압축가스를 주입해 거품 상태로 만드는데, 질소는 불활성 가스이므로 다른 기체에 비해 맛 변화를 최소화하며 내용물의 산화를 지연시킨다. 이후 이 거품을 액체 질소에 담그면 순간적으로 -196℃의 극저온에 노출되면서 수분이 거의 순식간에 얼어붙어 마치 눈가루와 같은 고운 입자가 된다. 이 초저온 급속냉각은 세포 조직을 보존한 채 수분을 작게 얼려 입 안에서 눈처럼 부드럽게 녹는 특이한 식감을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설탕 공예로 만든 사과 모양의 틀 안에 눈가루와 같은 사과를 담아내면, 차가움과 단맛, 바삭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사과 디저트가 완성된다.
같은 고기라도 익히는 방식에 따라 다른 식감과 맛이 만들어져
<흑백요리사2>의 여러 대결 구도 중 백미는 백수저와 흑수저 요리사가 각각 같은 재료를 가기고 서로 다른 요리를 만들어 눈을 가린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받는 것이다. 돼지 항정살을 주제로 한 대결에서는 백수저 레이먼킴 셰프와 흑수저 바베큐연구소장이 맞붙었다. 바베큐연구소장은 고기에 먼저 훈연 향을 입힌 뒤 숯불 위에서 직화로 굽는 조리 방식을 선택했다. 훈연 과정에서 나무의 주요 성분인 리그닌이 열분해되면서 페놀계 방향족 화합물들이 생성되는데, 이 성분들은 고기 표면에 스며들어 특유의 스모키한 풍미와 향을 만들어낸다. 숯불 직화는 강한 복사열로 고기 표면의 수분을 빠르게 날리며 바삭한 껍질을 만들고, 동시에 내부는 육즙을 머금게 한다.
반면 백수저 레이먼킴은 항정살을 한 차례 그릴에 구워 마이야르 반응(단백질과 당이 높은 온도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갈색으로 변하면서 여러 가지 풍미를 더해주는 현상)을 충분히 일으킨 뒤, 80℃ 정도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익히는 포칭 기법을 사용했다. 포칭은 끓는점보다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히는 조리 방식으로, 단백질이 급격히 수축하는 것을 막아 고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이후 다시 한 번 겉면을 강하게 구워서 고소함을 극대화하였다. 서로 다른 조리법으로 맛의 화학 반응을 다르게 유도한 두 요리가 경쟁을 벌인 셈이다.
고기를 뜨겁게 익히기만 하는 것이 아닌 가열과 냉각을 반복하는 조리법도 있었다. 백수저와 흑수저 셰프가 한 명씩 팀을 이루어 미션을 수행하는 대결에서는 박포갈비(돼지갈비 부위 중 뼈와 삼겹살이 붙어 있는 특수부위) 요리가 선보였다. 먼저 갈비에 꿀을 발라 단맛을 가미한 후 초벌로 살짝 구웠다가 냉동실에 넣고 짧게 식혔다. 냉각 과정에서는 고기에 남아있던 잔열이 재분배되며 고르게 익히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후 갈비에 다시 양념을 입히고 굽는 과정을 2~3회 반복했다. 이렇게 굽고 식히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고기 안팎으로 양념 맛과 향이 깊게 배어들었고, 짧은 시간에도 마치 오래 숙성한 듯한 맛이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반쯤 익힌 고기를 차가운 곳에 두었다가 다시 구워 먹는 '설야멱' 요리도 이 원리를 활용한 것인데, 새로운 기술처럼 보이는 조리법이 사실은 오래전부터 경험적으로 활용되어 왔다는 점에서 전통 음식에 대한 선조들의 지혜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한 숟갈까지 편한 사찰음식의 과학
이번 시즌의 또 다른 볼거리는 대한민국 사찰음식 명장 1호인 선재스님의 요리이다. 선재스님은 수행 현장에서 꾸준히 식문화를 가르치다가 1994년 사찰음식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연구를 발표하며 사찰음식 분야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체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가 <흑백요리사2>에서 선보인 ‘간장·된장 비빔밥’은 고기나 고추장과 같은 강한 자극 대신, 제철 나물의 향에 장의 깊은 발효 풍미를 층층이 쌓아 올린 요리였다. 정갈한 맛뿐만 아니라 수행자다운 태도와 절제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우리 혀에 있는 맛 수용체는 단맛, 짠맛, 매운맛처럼 자극이 큰 맛은 반복될수록 둔해져, 같은 맛을 느끼려 더 큰 자극을 찾게 되는 감각 적응(sensory adaptation)이 일어난다. 또한 강한 맛 자극에 반복 노출되면 그 음식에서 느끼는 쾌감이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도 발생하는데, 이는 같은 음식을 계속 먹을 때 그 즐거움도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더 이상 먹기를 멈추게 만드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선재스님의 비빔밥은 단맛, 짠만, 매운맛과 같이 맛의 피로를 부르는 요소는 피하고, 대신 다양한 나물의 미세한 향과 씹힘으로 자극을 분산시켰다. 자극적인 맛 대신 저강도의 부드러운 감각 덕분에 미각이 쉽게 지치지 않고, 그래서 마지막 한 숟갈까지 편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었다.
요리는 맛있는 과학 실험실
<흑백요리사2>에 등장하는 요리들은 단순한 경쟁의 결과물이 아니라, 요리 재료들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과학 실험의 결과이기도 하다. 요리를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오늘 먹는 한 끼의 식사도 더 흥미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1-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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