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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과학 연구의 조직적 확산, '과학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고 있다' 조직적 네트워크의 학술 출판 시스템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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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과학 연구의 조직적인 확산

현대 과학의 발전은 동료 검토(peer review)와 학술 출판 시스템이라는 견고한 기반 위에 구축되어 왔다.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확립된 이 시스템은 새로운 발견을 검증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동해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짜 과학 연구의 확산이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연구진이 최근 PNAS(미국과학원회보)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과학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연구팀은 7만 개 학술지에 게재된 500만 편 이상의 과학 논문을 분석한 결과, 조직화된 악의적 행위자들의 네트워크가 학술 출판 시스템에 체계적으로 침투하여 가짜 연구를 대량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직적 네트워크의 학술 출판 시스템 침투

연구의 주저자인 리스 리처드슨(Reese Richardson) 사회과학자는 편집자들이 공모하여 저품질 논문을 대량으로 출판하며, 전통적인 동료 검토 과정을 우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단순히 개별 연구자의 일탈이 아닌, 조직화된 시스템적 부정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인데, 특히 주목할 점은 '브로커' 역할을 하는 중간자들의 존재다. 이들은 가짜 연구를 생산하는 저자들과 이를 출간해 줄 편집자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불법 거래망과 유사한 형태로, 과학 출판계에 체계적으로 침투하여 기존의 품질 관리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 Getty Images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 Getty Images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데이터 조작, 이미지 생성, 심지어 전체 논문 작성까지 가능해지면서, 가짜 연구의 생산 속도와 정교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리처드슨 연구팀은 "수천 편의 논문에 걸쳐 이미지 복제 네트워크를 추적할 수 있다"며 그 규모의 방대함을 강조했다.

 

가짜 연구의 실태와 규모

현재 추정에 따르면 발표되는 연구 논문 중 최대 7편 중 1편이 가짜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과학계가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수치인데, 가짜 연구는 조작된 데이터, 검증되지 않은 결과, 표절된 연구, 조작된 이미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자기 홍보 저널(self-promotion journals)' 현상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논문의 저자가 동시에 해당 저널의 편집자 역할을 하는 경우로, 객관적인 검토 과정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품질 관리 시스템의 근본적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사회과학자 안나 아발키나(Anna Abalkina)는 이러한 종류의 "부정행위"는 과학에 대한 신뢰를 파괴한다고 설명하며 구체적으로 체계적 분석과 메타분석을 왜곡시키고, 치료법 개발을 지연시키며, 새로운 연구를 방해한다고 경고했다.

 

과학과 사회에 미치는 치명적 피해

가짜 과학 연구가 미치는 피해는 학계를 넘어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특히 의학 분야에서의 가짜 연구는 직접적으로 인명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더욱 심각하다. COVID-19 팬데믹 기간 중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치료 효과에 대한 가짜 연구가 과학적,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대표적이다. 알츠하이머 질병 연구 분야에서도 충격적인 사례가 발생했다. 한 획기적 연구에서 이미지 조작의 증거가 발견되어 결국 논문이 철회되고 주저자가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미 수십억 달러의 연구 자금과 수년간의 연구 노력이 잘못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투입된 후였다. 아발키나는 "단 하나의 논문"이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놀랍게도 엄청나게 클 수 있다고 경고하며 개별 가짜 연구가 미칠 수 있는 파급효과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는 과학적 지식의 누적 과정 자체를 왜곡시킨다. © Getty Images
이러한 문제는 과학적 지식의 누적 과정 자체를 왜곡시킨다. © Getty Images

이러한 문제는 과학적 지식의 누적 과정 자체를 왜곡시킨다. 후속 연구들이 가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이는 결국 전체 연구 분야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아카데믹 출판계의 대응과 한계 - 근본적 해결책: 평가 시스템의 전환

과학 출판업계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주요 출판사인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는 2024년 한 해 동안 2,923편의 논문을 철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가짜 연구를 식별하고 제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논문 철회는 이미 잘못된 과학이 출판된 이후에 이루어지는 사후 조치라는 한계가 있다. 잘못된 연구 결과가 이미 학계와 대중에게 전파된 후에는 그 영향을 완전히 되돌리기 어렵다. 특히 언론 보도나 정책 결정에 이미 활용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현재 출판업계는 새로운 식별 방법과 검증 시스템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조직화된 가짜 연구 생산 네트워크의 정교함과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연구진은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현재의 과학 연구 평가 시스템에서 찾고 있다. 리처드슨은 "자원 부족에 직면하면서도 출판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두 가지 선택지만 남게 된다. 과학적 부정행위에 가담하거나 과학계를 떠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과학자들이 수만 명에 이른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연구팀이 제시하는 최선의 해결책은 현재의 양적 평가 지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다. © Getty Images
연구팀이 제시하는 최선의 해결책은 현재의 양적 평가 지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다. © Getty Images

연구팀이 제시하는 최선의 해결책은 현재의 양적 평가 지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다. 논문 편수나 인용 횟수 등의 수치적 지표에 의존하는 평가 방식이 오히려 가짜 연구 생산의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사실 국내외 대학교 및 연구소에서 업을 진행하고 있는 아카데믹이나 연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문제이지만 경쟁 사회에서 본인을 드러낼 수 있는 양적 평가 지표를 없앤다면 사회는 또 다른 불법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과학은 백신, 항생제, 인터넷, 무균 수술 등 현대 생활을 가능하게 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온 우리 생활의 엔진이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조직적 가짜 연구의 확산은 이러한 과학의 근본적 가치와 신뢰성을 위협하고 있다. 과학계와 사회 전체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수세기에 걸쳐 구축해 온 과학적 지식 체계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루이스 아마랄(Luis Amaral) 교수는 이 연구를 자신이 참여한 가장 우울한 프로젝트라고 표현하면서도, 과학이 인류에게 유용하고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이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The entities enabling scientific fraud at scale are large, resilient, and growing rapidly (대규모 과학 부정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조직들은 크고, 회복력이 있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Richardson et al. 2025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08-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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