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소 몇 주에서 수십 년까지 걸리는 명화 복원 작업을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미국 매사츄세츠공대(MIT) 연구진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회화 작품에서 복원이 필요한 부분을 파악하고, 실제 작품에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11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연구자의 취미에서 시작된 연구
손상된 미술 작품을 복원하는 데는 안정된 손놀림과 예리한 안목이 필요하다. 지난 수 세기 동안 복원가들은 손상된 부분을 찾아낸 후, 색을 혼합하여 한 번에 한 구역씩 채우는 방식으로 그림을 복원해 왔다. 복원이 필요한 작은 부분이 한 그림에만 수천 곳에 이르는 작업도 있다. 단 한 점의 복원 작업에 몇 주에서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는 이유다.
미국 매사츄세츠공대(MIT)의 박사과정생인 알렉스 카치킨 연구원은 그림 복원 작업이 취미였다. 2021년 미술관 여행을 다니던 카치킨 연구원은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은 극히 일부이며, 상당수는 복원에 많은 시간이 필요해 창고에 보관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복원 기술의 발달로 복원 속도를 대폭 단축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개발됐다. 과학자들은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특정 화가나 시대 스타일을 반영한 디지털 복원본을 생성하는 데 이미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러한 복원은 가상 이미지나 독립된 프린트 형태로만 존재했고, 원본 작품에 직접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치킨 연구원은 “창고 속에는 손상된 채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예술 작품이 정말 많다”며 “만약 디지털로 복원한 것을 물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면, 기존 수작업 복원의 어려움과 한계를 해결하여 더 많은 예술 작품이 빛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본 그림에 ‘마스크’ 덧입혀 그림 복원
카치킨 연구원은 MIT에 입학하면서 구입했던 15세기 목판 유화를 이번 연구에 활용했다. 이미 수차례의 복원 과정을 거친 작품이다. 우선 기존의 복원 흔적은 모두 제거하고 그림을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 전통적 기법을 적용했다. 덧칠된 부분을 모두 제거해야 원래의 상태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작품을 스캔하여 색이 벗겨지거나 갈라진 부분을 모두 디지털로 기록했다. 그리고 기존 AI 알고리즘을 사용해 그림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가상으로 재현했다. AI는 복원이 필요한 5,612개 영역을 식별했다.

카치킨 연구원은 디지털 복원본과 정확히 일치하는 색상과 복원이 필요한 영역을 지도화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 지도는 얇은 고분자 필름 두 장에 인쇄되는데, 첫 장은 컬러로, 두 번째 장은 동일한 패턴의 흰색으로 인쇄된다. 정확한 색을 재현하려면 컬러 잉크와 흰색 잉크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복원 과정에는 5만 7,314가지의 색상이 사용됐다.
그다음 고해상도 프린터를 사용해 두 레이어를 인쇄하고, 이를 손으로 정밀하게 맞춰 원본 작품 위에 부착했다. 전체 복원 과정은 시작부터 완료까지 약 3.5시간이 소요됐다. 이는 전통적인 복원 작업보다 약 66배 빠른 속도다.
인쇄된 필름은 복원 전용 용액으로 쉽게 제거될 수 있는 재질로 제작됐으며 디지털 파일은 복원 기록으로 보관된다. 즉 향후 복원가들이 어떤 부분이 어떻게 복원됐는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카치킨은 “어떤 ‘마스크’가 사용됐는지 디지털 기록이 남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작품을 다루는 복원가는 복원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며 “이런 일은 지금껏 보존 분야에서 한 번도 가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치킨은 AI를 활용한 복원 작업에는 윤리적 고민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 방법이 널리 사용될 경우 반드시 복원가들이 모든 단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라며 “더 정밀한 복원 기술이 개발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 연구로 향후 보존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으로 적용할 방법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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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6-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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