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플라스틱의 화학물질과 심장질환 사망률의 연관성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심혈관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의 1위를 차지하며 매년 약 1,790만 명이 이로 인해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심혈관 질환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경향성은 아시아, 중동 그리고 태평양 지역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미국 NYU 랭곤 헬스(NYU Langone Health)는 새로운 연구를 통해 가정용 플라스틱 제품의 화학물질과 심혈관 질환의 연관성을 확인했다. 해당 연구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플라스틱 제품의 화학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55세에서 64세 성인의 심장질환 사망 중 무려 10% 이상이 플라스틱 화학물질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충격적인 결과는 생활 습관이나 유전적 요인 외에도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의 화학물질이 심장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식품 포장지나 페트병 등 플라스틱에 함유된 화학물질 다이에틸헥실 프탈레이트(DEHP)에 대한 노출을 추적하고자 하였다. NYU 환경 위험 조사 센터의 책임자이자 연구 책임자인 레오나르도 트라산데(Leonardo Trasande)는 이용 가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 세계적인 양상을 모델링한 것이기 때문에 연구의 한계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플라스틱 화학물질이 심장 건강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가소제 DEHP: 심장질환 사망의 숨겨진 원인?
연구팀은 인구 조사에서 얻은 건강 및 환경 데이터를 분석하여 프탈레이트(phthalates) 노출로 인한 사망률을 추정했다.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의 내구성과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화학물질로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 연구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다이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라는 특정 프탈레이트 화합물이다. DEHP는 식품 포장재, 비닐 바닥재, 의료 기기, 장난감, 그리고 다양한 가정용품에서 발견되는데, 제품의 유연성과 내구성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물질은 플라스틱 제품에서 서서히 방출되어 음식, 공기, 물을 통해 인체에 흡수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분석을 바탕으로 연구팀은 DEHP에 대한 노출이 2018년에 35만 명의 사망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단순한 통계적 관련성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수의 인명이 이 화학물질과 연관된 심장질환으로 인해 손실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연구는 DEHP가 직접적으로 심장질환을 유발하는지 확인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연구 결과가 둘 사이의 관련성을 보여줄 뿐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입증하지는 않고 있는 셈이다. 그 때문에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DEHP와 심혈관계 질환 간의 관련성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므로 더 심도 깊은 조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 영향: 아시아와 중동 지역이 가장 취약
전 세계적으로 DEHP와 심혈관 질환 간의 연관성을 보이는 연구 결과가 나타났지만, 그 중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특히 더 큰 영향력이 확인되었다. 놀랍게도 아시아, 중동 및 태평양 지역은 DEHP와 관련된 심장 질환 사망률이 총 추정 사망자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이 지역들이 플라스틱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심장질환에 특히 취약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인도가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로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를 파키스탄과 이집트가 잇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분포는 플라스틱 사용 패턴, 규제 수준, 의료 인프라, 생활 방식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특정 지역이 더 높은 영향을 받는 이유에는 여러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 플라스틱 사용량, 폐기물 관리 시스템, 식이 패턴, 그리고 환경 규제 정도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재활용되지 않은 플라스틱 폐기물이 열악하게 관리되어 환경 오염이 심화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더 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도 있다.
연구팀은 지역적 차이를 고려하여 DEHP가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 다양한 변수를 통제하였다. 체질량 지수, 식습관, 신체 활동 그리고 잠재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는 다른 사회적인 요인들을 고려했다. 이 접근 방식은 DEHP 노출과 심장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더 분명하게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받고 있다.
심장질환 외에도 다양한 위험
지금까지의 연구가 심장질환 발병의 위험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더 무서운 점은 프탈레이트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전부터 진행된 또 다른 연구들에서 프탈레이트가 생식 건강과 면역 체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것으로 알려진 여러 화학물질이 염증을 유발하고, 신진대사와 심혈관 기능을 포함한 기본적인 생물학적 기능의 기초가 되는 우리의 호르몬 신호를 교란시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프탈레이트는 특히 내분비계 교란 물질로 알려져 있다. 내분비계 교란 물질은 인체에 흡수되었을 때 마치 호르몬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용하거나 호르몬의 분비, 수송, 작용, 분해 등을 방해하여 호르몬 체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프탈레이트 역시 우리 몸속으로 흡수되었을 때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여러 연구에서 프탈레이트는 생식 장애, 호르몬 불균형, 발달 이상, 그리고 최근에는 대사 증후군과 비만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들은 프탈레이트의 영향에 특히 취약할 수 있다. 발달 중인 신체는 이러한 화학물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장난감을 입에 넣거나 바닥에서 놀기 때문에 화학물질에 노출 위험성이 더 높다. 이러한 우려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는 어린이용 제품에 특정 프탈레이트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연구팀은 플라스틱에 함유된 화학물질이 심장질환에 기여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더 큰 규모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프탈레이트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점점 더 쌓이고 있다고 강조한다.
일상 속 플라스틱 노출 줄이기
우리는 매일 플라스틱에 둘러싸여 있다. 플라스틱 전혀 사용하지 않는 건 현대 사회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일상에서 몇 가지 간단한 예방 조치를 통해 프탈레이트 노출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먼저 플라스틱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식기세척기에 넣는 것을 피해야 한다. 플라스틱을 고온 상태로 노출하게 되면 플라스틱에 사용된 화학물질이 바깥으로 용출되거나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환되어 인체에 흡수될 수 있다.
-
■ 음식 보관: 가능한 한 플라스틱 대신 유리나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를 사용하여 음식을 보관하고, 특히 뜨겁거나 기름진 음식은 플라스틱 용기에 보관하지 않는다.
-
■ 음식 준비: 플라스틱 조리기구 대신 나무, 대나무, 실리콘 또는 스테인리스 스틸 조리기구를 사용한다.
-
■ 식품 포장 줄이기: 가능한 한 신선한 식품을 구매하고 플라스틱 포장 용기 사용을 줄인다. 과일과 채소는 포장되지 않은 상태로 구매한다.
-
■ 물병: 일회용 플라스틱 물병 대신 재사용 가능한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유리 물병을 사용한다.
-
■ 개인 관리를 위한 뷰티 용품: 프탈레이트가 포함되지 않은 제품과 화장품을 선택한다. 성분 목록을 확인하고 "프탈레이트 무첨가" 또는 "파라벤 무첨가" 표시가 있는 제품을 찾는다.
-
■ 집안 먼지 관리: 집을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젖은 수건으로 닦아 화학물질이 포함된 먼지를 제거한다.
-
■ 어린이 제품: 어린이용 제품, 특히 장난감과 치발기는 가능한 한 프탈레이트가 없는 것을 선택한다.
이러한 간단한 변화는 일상적인 DEHP 및 기타 프탈레이트 노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몇 주 동안만 이러한 조치를 취해도 체내 프탈레이트 수준이 현저히 감소할 수 있음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간단한 생활 방식 변화만으로도 건강을 개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책적 대응과 글로벌 노력
개인적인 예방 조치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프탈레이트와 같은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대응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UN은 플라스틱 오염과 유해 화학물질 사용을 줄이기 위한 플라스틱 협약을 협상 중이다. 유럽연합에서는 이미 장난감과 화장품을 제조할 때 DEHP와 같은 프탈레이트 성분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식품 첨가물의 사용 또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적 접근은 소비자들, 특히 사회적으로 취약한 인구 집단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플라스틱을 생산함에 있어 우려되는 화학물질 사용을 규제할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위협을 줄이기 위해 국제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아쉬운 점은 연구에서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 체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환경 불평등을 반영하는 결과이며 경제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들에서 프탈레이트 노출과 관련된 위험성이 더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연구는 환경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진전을 보여주고 있기에 향후 공중 보건 정책과 개인의 건강 관리 전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5-14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