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이화여자대학교 ECC 이삼봉홀에서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이공계 여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을 위해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동으로 마련한 특별한 행사였다.
공식 타이틀은 ‘2011 과학기술 여성핵심인재 육성을 위한 학부모연수’. 처음 열리는 행사인만큼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홍달식 전 서울과학고등학교 교장은 특강을 통해 과학영재고와 과학고의 입학생 선발제도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강연을 마무리할 즈음에 심각한 이야기를 꺼냈다. 과학영재고와 과학고를 찾는 여학생의 수가 갈수록 적어진다는 것이었다.
과학영재고 여학생 진학률 급감
실제로 지난 수년간 여학생 수 감소는 우려할 정도였다.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에 따르면 과학고의 경우 지난 2005년 여학생 비율이 30.65%였으나 2007년 25.61%, 2009년 21.92%로 감소했다. 과학영재고의 경우 2005년 17.61%였던 여학생 비율이 2007년에 14.05%, 2009년에는 전년과 비교해 절반 수준인 7.46%로 급감했다.
결과적으로 과학고의 경우 열 명 중 두 명꼴로, 영재과학고의 경우는 열 명 중 한 명이 채 안 되는 여학생이 입학하고 있는 셈이었다.
홍달식 전 서울과학고 교장은 “(여학생들이) 이처럼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판단을 해볼 때 “여학생들이 과학 공부를 하면서 남학생들과 섞이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달식 전 교장은 과학에 있어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과거 영재학교에서 자신이 가르친 한 여학생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여학생은 학교에서 한 번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다는 것. 더 놀라운 것은 시험을 앞두고 다른 학생들처럼 벼락공부에 매달리지 않았다. 그동안 배웠던 책들을 한 번 그냥 독서하듯 훑어보는 정도였는데 시험을 치면 늘 1등을 독차지했다.
주변에서 이 여학생에 대해 주목했다. 그리고 이 여학생의 독서량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래 전부터 이 여학생은 대부분의 시간을 책 읽는 것으로 보내고 있었다. 홍달식 전 교장은 “이 여학생이 이처럼 엄청난 독서를 해온 결과 ‘학문의 눈’이 열린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어떤 과제가 주어지든지 그것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성(性)과 과학교육은 전혀 관계가 없다”
홍달식 전 교장은 이스라엘에서 최고 과학자 대우를 받고 있는 IAI(Israel Aerospace Industry)의 여성 책임자 리아 보엠 박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녀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복무 시절이었다(이스라엘에서는 여성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 탱크를 보고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 매우 뒤늦게 과학을 시작한 케이스이다.
그녀는 인터뷰 때마다 성공 비결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때마다 리아 보엠 박사는 과학자로서 여성의 탁월한 능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여성이 과학을 하는 데 있어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난 3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섬세함과 정교함, 그리고 집요함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여성이 이 세 가지 요소를 잘 발전시켜 나갈 경우 과학 분야에서 남성보다 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달식 전 교장은 행사장을 찾은 학부모들에게 “성(性)과 과학교육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여학생이 과학공부를 하는 데 있어 전혀 핸디캡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 여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놓고 과학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학부모들에게 “여학생이 곱게 자라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날 행사를 주최한 이혜숙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은 지난 수년간 과학고와 과학영재고로 진학하는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며, 여학생들의 이공계 진로를 돕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학부모와 학생 15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심미영 KAIST 입학사정관, 정광화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 신이섭 과학창의재단 영재교육정책실 실장, 문미옥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기획정책실장의 특강과 함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다음은 학부모들과 특강 참석자들 간의 질의응답을 요약한 내용이다.
Q : 과학공부를 하는 데 있어 독서의 힘이 크다고 보는가.
A : 과학영재고와 과학고에는 대부분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다. KAIST와 같은 대학에서 보았을 때 대부분 우수한 학생이다. 그동안 입학사정을 해오면서 학생들 간에 능력 편차가 매우 크며, 그 편차가 인문과학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생각했다. 인문과학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독서습관이 필수적이다.
수능시험에서도 독서능력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학, 과학에서 매우 우수한 학생이 언어영역에서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서는 훈련에 의한 것이다. 중학교 이전부터 독서에 익숙해질 경우 대학은 물론 향후 연구활동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Q : 과학영재고와 과학고에 입학하려고 하는데 특별히 정해놓은 성적 기준이 있는가.
A : 성적 기준은 전혀 없다. 어느 학교에 물어보든지 성적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단지 성적 수준만 있을 뿐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어느 정도 성적 수준이 돼야 하며, 학교가 원하는 학생 성향에 따라 가산점이 있을 수 있다.
Q : 고등학교와 대학을 입학하는 데 있어 수상경력이 필요한가.
A : 어떤 수상경력이 있든지 그 내용을 적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사교육 유발요인으로 인해 수상경력을 참조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다.
Q : 사설 영재교육원들로부터 등록하라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영재학교를 가는 데 과연 도움이 되겠는가.
A : 과학영재고를 가기 위해 사설 영재교육원에 다닌다면 도움이 전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학생의 영재성을 계발하기 위해 사설 기관들을 다닌다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겠다. 대학에 들어간 어떤 학생이 있었는데 수학, 과학 실력이 매우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너무 힘이 없었다. 토론 시간 등에서 매우 소극적이었다. 어릴 때 너무 많은 기운을 소진했기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어릴 때 학원 같은 데를 거의 안 다녀본 학생이 대학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어릴 때 지나치게 많은 사설 학원 등을 다니면서 너무 많은 기운을 소진하지 않았으면 한다.
- 이강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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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7-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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