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쓰레기가 생긴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 지역은 더하다. 땅속에 매립하는 것으로는 막대한 양의 도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기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쓰레기 소각로다.
그러나 소각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와 유독가스 때문에 누구든 자기 집 근처에 소각로를 짓는 결정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어느 도시든 ‘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 현상과 계속 쌓여가는 쓰레기 처리 사이에서 골치를 앓는다.이렇듯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쓰레기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에너지를 얻어내고 일자리까지 창출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속속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최대한 줄인 형태다. 최근 런던은 2013년까지 8천만파운드(우리돈 약 1천500억원)를 들여 영국에서 가장 큰 쓰레기 소각 발전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브라질과 방글라데시 등 많은 국가에서 쓰레기 소각 발전소를 짓고 있다. 서울시도 상암발전소를 운영 중이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를 거대한 녹지로 발바꿈시키고 거기서 발생한 메탄가스를 전기로 전환시키는 방식이다. 배출가스도 이산화탄소가 아닌 수증기다.
이렇듯 소각로가 유독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쓰레기에서 석유와 가스 등 유용한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으며, 동네 미관을 해치지도 않는 외모를 갖춘다면 반대표가 줄어들까?
2016년에 덴마크 코펜하겐에 지어질 쓰레기 소각 발전소는 이러한 생각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주민들의 생활에 즐거움까지 더한다는 계획이다.
스키 타고 내려올 수 있는 소각발전소
올해 초 열린 코펜하겐 발전소의 설계 공모전에서 신예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의 설계가 최종안으로 확정되었다. 아마게르 섬에 지어질 이 열병합발전소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임과 동시에 랜드마크로서의 기능도 담당할 예정이다.그러나 발전소에 숨겨진 가장 큰 매력은 꼭대기에서 스키를 탄 채 1층까지 1천500미터 길이의 슬로프를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키장 발전소’다. 여름에는 조경전문가가 설치한 녹색 외벽에 온갖 식물이 만발하고, 봄가을에는 주변 항구와 연계해 카약경기장으로 쓰이며,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 있는 다목적 레저타운이 된다.
설계자 잉겔스는 가디언(Guardian)지와의 인터뷰에서 “도시 한가운데 35억크로네(우리돈 약 7천억원)을 들여 발전소를 지을 때는 도시경관을 해치거나 주민들이 반대할 만큼 못생겨서는 안 된다”며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원이자 놀이동산을 만드는 것이 설계의 목표”라고 밝혔다.
코펜하겐은 최근 선정된 ‘유럽의 녹색도시’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을 만큼 환경 보호에 민감하다.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시내의 항구에서 마음대로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202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발표도 했다. 아마게르 섬의 발전소는 도시 외곽 산업지구에서 운영 중인 40개의 기존 소각로를 대체하기 위한 작업의 핵심이다.
그러나 잉겔스는 여기에 ‘자발성’과 ‘즐거움’을 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경 보호를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해를 유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친구를 방문하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운전을 한다”고 지적하며 “일상적인 행동을 바꾸지 않고도 더 스마트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디자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의성과 현실성 결합시킨 건축 아이디어들
그의 철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마운틴 드웰링스(Mountain Dwellings)’라는 아파트는 여러 채의 아파트를 계단 모양으로 쌓고 평평한 옥상에는 개별적인 정원을 만들어 마치 하나의 언덕처럼 보이게 했다. 기능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즐거움까지 하나로 합친 것이다.지난해 열린 상하이 엑스포에서도 그의 설계는 큰 인기를 얻었다. 유명한 관광물로 코펜하겐 항구에 세워진 인어공주상을 중국 상하이로 옮겨서 전용 수영장을 지어주었다. 엑스포 덴마크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내부의 사이클 경기장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인어공주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동유럽 국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새 시청사 설계안도 기발하다. 시의회 건물 지붕과 맞은편 탑에 거울을 비스듬하게 설치해서 잠망경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정치가들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할 때 지붕을 올려다보면 탈린시 전체의 풍경이 반사되어 보인다. 언제나 시민을 생각하고 정치를 하라는 의미다.
반대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시민들이 밖에서 거울을 올려다보면 어느 정치인이 회의에 출석했는지 조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볼 수 있다. 배율도 높아서 회의록의 글씨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이 장치를 ‘민주주의의 잠망경’이라 부르며 “정치의 투명성을 건축으로 해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발전소 설계에도 창의성은 이어진다. 이산화탄소 방출량이 1톤을 넘을 때마다 굴뚝에서 지름 30미터의 고리 모양 연기가 피어오른다. 동그란 반지 모양 연기의 숫자를 세기만 하면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알 수 있다.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던 대기오염을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바꾼 것이다. “장난스러운 디자인을 통해 친숙함을 심어주고 싶었다”는 게 설계자의 의도다.
‘환경 보호는 번거롭고 불편하다’는 기존의 통념을 깬 젊은 건축가 잉겔스. ‘지속가능성’과 ‘즐거움’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 임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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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7-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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