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소통 능력이다. 따라서 자기 의사 표현 방식의 하나인 문장력의 중요성은 그것이 창의성의 궁극적 결과물이 때문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과학자, 의사, 예술가 등 직종에 관계없이 글 쓰는 능력이 없으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해 글을 올렸을 때, 의사 전달 속도는 일반 언론 매체보다 빠를 뿐 아니라 파급 효과도 더 크다. 또 자신의 독창성이 강조되는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에, 자기 자신을 이끄는 능력으로서의 글쓰기는 큰 의미를 지닌다.
글이란 사리가 명백하고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가 분명해야 설득력을 지닌다. 더불어 진정성이 담겨야 신뢰할 수 있는 글이 된다. 믿음이 있는 글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버 세계에서 건전한 댓글 즉 선플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난이나 비방의 말을 전해 듣는 것은 간접적이므로 그 충격이 크지 않다. 그러나 글로써 표현하는 비난이나 비방은 2인칭으로써 직접적으로 당사자에게 전달될 뿐만 아니라 시각을 통해 머릿속에 남기 때문에 충격이 크다.
결과적으로 글에 의해서 기분이 상하게 되면 창의적 사고를 차단시키는 역기능을 한다. 과거 인쇄물이란 책이나 신문 등 일부 출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메일로 자신의 글을 메일링 리스트의 전체 메일로 보낼 정도로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마음까지 움직이는 글의 위력
좋은 글은 좋은 음악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음악을 통해서 감흥을 받는 데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1단계로 연주자가 악보대로 연주할 때 감상할 가치가 있는 음악이 된다. 즉, 기본적인 테크닉을 갖추고 연습을 통해 악보에 나타난 지시(음정, 박자, 강약 등)를 정확히 연주할 때 감상이 가능하다.
2단계로 연주자가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곡을 연주할 때 청중은 감동하게 된다. 작품에 담긴 작곡가의 철학과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주하면 청중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 3단계로 지휘자 또는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연주할 때도 청중은 감동하게 된다. 곡에 담긴 작곡가의 의도를 재해석, 예술적으로 표현할 때 청중은 감동한다. 즉, 독창적 해석이 곁들여진 훌륭한 연주는 감흥을 일으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을 통해서 얻는 감흥에도 세 가지 단계가 있다. 1단계로 글이 주제에 맞는 서술과 논리적 구성으로 쓰였을 때 좋은 글로서 인정받는다. 주제에 맞는 서술을 위해서는 글 쓰는 이의 생각이 논리적으로 구성돼 나열되어야 하고 여러 차례 추고를 거쳐 문법적인 실수가 없도록 오탈자를 수정해야 한다. 즉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은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나열한 것이다.
2단계로 진솔하고 호소력 있는 글이 감동을 준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면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한다. 과도한 미사여구와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같은 맥락의 글을 반복하는 것을 피하며 꾸밈없이 서술될 때 독자는 감동을 받는다. 3단계로 1단계와 2단계의 특징을 더해,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표현을 사용한 문구는 읽는 사람의 시선과 감정을 사로잡는다. 독창적인 시적 감성을 표현하거나, 나아가 역사적 의의를 피력한 문장은 읽는 사람에게 큰 감흥을 일으킨다.
문장력 향상 방법
명문장을 쓰려면 영감이 필요하다. 보고 듣고 읽기를 통해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언어를 통해, 주제를 잡고 써 내려가는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악기 연주법을 손에 익히기까지 노력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문장력 향상에 왕도는 없다. 글은 연습을 통해 다듬어지고, 동시에 다양한 글을 읽음으로써 사용할 수 있는 표현도 풍부해진다.
덧붙여 글쓰기 능력을 늘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자세이다. 좋은 문장을 보면 한 번 더 읽고 적는다. 문자화된 글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관심을 끄는 시적인 표현, 새로운 정보, 새로운 시각을 담은 내용을 접할 때 메모하는 적극적인 태도는 문장력을 향상시킨다.
어떤 특정 주제에 따라 보고서나 에세이를 쓸 때 그것이 시사적인 것이라면 인터넷을 통한 전문 블로그, 토론방, 언론사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도 참고가 된다. 댓글 중에 그 기사와 직접 관련된 사람의 글도 있고, 관련은 없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는 이의 글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미국의 금융 위기를 주제로 한 원고 청탁이 있었을 때, 2008년 노벨 경제학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의 10월 26일자 ‘뉴욕 타임스’ 기고문이 참고가 되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기고문에서 ‘이번 금융 사태는 결코 잡을 수 없으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 금융 위기의 여파를 전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더불어 필자는 ‘뉴욕 타임스’의 금융 위기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서도 유용한 시사점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연금과 개인 저축을 다 잃은 피해자들의 글이었다.
개인의 피해의 정도를 짐작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한편, 미국 정부가 리먼 브러더스를 구제하지 않는 배경에 대해 일리가 있는 근거를 대며 비판한 글도 있었다. 중립성이나 객관성이 결여된 글이어서 직접 인용은 적절하지 않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 충분한 참고가 되었다. 결국 금융 위기를 다룬 이 기사가 단초가 되어 ‘우리만 모르는 5년 후 한국경제’를 출간하게 되었다.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볼 수 있다는 것은 마치 무대에서 연주 기회를 갖는 것과 같다. 연주자가 무대에 섬으로써 기량이 향상되는 것처럼, 독자가 있다는 것은 글쓴이에게 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써놓은 글을 수정할 때는 컴퓨터 모니터보다 종이에 출력한 인쇄물로 보아야 좀 더 효과적이다. 직접 인쇄물과 접촉하면 컴퓨터 자판으로 치고 모니터로 볼 때보다 오자나 탈자 등이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 조명진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전문역
- 저작권자 2011-04-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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