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대저기압에서 한랭전선이 지나가면 소나기가 내린 후 온도는 내려가고 기압은 높아지며 풍향은 남서풍에서 북서풍으로 변한다.”
중학교 과학교과에 나오는 내용을 단순히 정리한 것이다. 시험을 보기 위해 학생들은 이런 단편적 지식들을 수십 가지씩 외우고 또 외운다. 외운 것이 기억나면 정답, 기억나지 않거나 잘못 외웠다면 오답이다. 또한 완벽히 외워서 정답을 맞혔다 하더라도 며칠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런 학습 방법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 뇌는 기억을 할 수 있는 용량이 무한하지만, 그만큼 잘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꾸준한 복습을 통해 기억의 조각을 수집
학습으로 인지하고 기억한 내용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잊는 것을 망각이라고 한다. 이 망각이라는 것은 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지는 정보의 정도를 나타낸 그래프로,복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연구결과다.
단 한 번의 학습으로 기억된 정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는 정도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따라서 최초 학습 후 10분 안에, 다음은 하루, 일주일, 한 달 순서로 복습을 함으로써 망각곡선을 위로 끌어올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복하다보면 최종적으로 망각되는 정도가 줄어들어 매우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하다.
뒤죽박죽 상자에서 퍼즐조각 찾기
하지만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복습을 통해 장기기억으로 저장된 정보를 다시 끄집어내는 능력도 중요하다. 그것을 기억의 단계 중 재생이라고 한다.
인간이 뇌에 정보를 저장하는 활동을 기억이라고 하며, 이는 기명, 보유, 재생, 재인의 네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명은 특별한 일을 기억하는 것, 보유는 이 기명들을 축척해 놓는 것, 재생은 보유해 놓은 기명들을 생각해 내는 것이며, 재인은 그 과거의 경험들이 자신의 것임을 인지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바로 재생이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학습해서 머리에 꾹꾹 담아놓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재생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게다가 많은 양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을수록 재생 과정은 더욱 힘들어진다. 유사한 정보는 기명과 보유가 확실히 됐다 하더라도 재생단계에서 서로 상호 간섭을 일으켜 재생을 방해한다. 뒤죽박죽 정리가 안 된 책장에서 얇은 공책 하나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생을 하는 데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적극적으로 기억을 해내려 노력해 재생되는 경우, 두 번째가 의도적이지 않게 갑자기 재생되는 경우다. 세 번째는 기억해 내려는 것 자체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억이나 상황이 계기가 돼 재생되는 경우다.
연쇄적 연상 통한 학습의 효과
세 번째 방법은 다른 재생 방법에 비해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학습에 필요한 내용들이 항상 영어 단어처럼 짧은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 학습의 경우 전체적인 모습과 개념들을 파악해야 할 때가 많다. 이런 경우 단어 외우듯이 긴 문장의 내용들을 외우기도 힘들 뿐더러 재생해 내기에는 더욱 무리가 있다. 이럴 때 연상을 통한 재생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멜로디도 가사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첫 음절이 기억나게 되면 신기하게도 뒷 부분의 멜로디와 가사가 술술 흘러나온다. 첫 음절이 계기가 되어 의도적으로는 재생이 힘들었던 정보들이 연상을 통해 재생된 것이다.
이런 연상법은 과학 학습에서 큰 효과가 있다. 하나의 기본적 개념을 학습할 땐 그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어떤 현상을 학습 할 땐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확실히 기억해 둔다. 그럼 나중에 하나의 개념만 떠올리면 그와 관계된 현상들이 줄줄이 따라 나온다.
즉 A이면 B이다. B 때문에 C가 생기고, C이므로 D이다는 식의 학습이 가능하다. 다음은 중학교 교과에 나오는 구름의 생성원리를 연쇄적 연상을 통해 설명한 것이다.
1) 지표면이 불균등하게 가열된다.
2) 가열되어 찬 공기 더운 공기의 구분이 생긴다.
3) 더운 공기는 밀도가 작아 찬 공기 위로 올라간다.
4) 상승하는 더운 공기는 주변 기압이 낮아져서 팽창한다.
5) 팽창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해 온도가 낮아진다.
6) 온도가 이슬점까지 내려가면 응결현상이 나타난다.
7) 응결된 물방울들이 모이면 구름이 된다.
이와 같이 밀도, 기압, 이슬점, 응결과 같은 단편적이고 기본적인 개념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표면이 가열된다’에서 시작하여 ‘구름이 만들어진다’라는 결과에 도달하게 됐다.
이 과정들을 외울 필요는 없다.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따져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것을 단순히 외우려고만 시도하다보니 효율이 떨어지고, 결국 과학은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퍼즐을 맞추듯이 하나하나 따져가고 원인과 결과를 이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지식은 어느 새 완성돼 있다.
내 맘대로 퍼즐을 맞춰본다
이런 연쇄적 연상을 통한 학습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개념과 그들의 상관관계 속에 다른 개념들을 추가하거나 조합을 변경함으로써 또 다른 학습을 할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는 것만으로 새로운 학습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학습방법은 학습효율을 높여주는데다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달시키는 도구가 된다.
우리 머리 속에는 수천 개의 퍼즐조각들이 있다. 퍼즐의 답은 없다. 서로 잘 맞는 퍼즐을 끼워 맞추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게 된다.
- 조재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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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0-06-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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