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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예슬 리포터
2025-08-18

[광복절 특집] 대한의 여성과학자 만세 광복 80주년…달라진 여성과학기술인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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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을 맞아 기뻐하는 여성과학자들의 모습을 ChatGPT로 그렸다. ⒸChatGPT
광복을 맞아 기뻐하는 여성과학자들의 모습을 ChatGPT로 그렸다. ⒸChatGPT

‘이제는 아들보다 딸’

최근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기관 갤럽 인터내셔널은 한국인의 28%가 ‘아이를 한 명만 가질 경우 딸을 원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인 44개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1992년 같은 조사에서 한국인의 58%는 아들을, 10%만이 딸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30년 만에 강산이 정말로 변했다.

이와 달리, 과학기술계에서는 여전히 여성과학기술인은 비주류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이 2023년 발표한 ‘2023년 남녀 과학기술인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중 여성의 비율은 44%인데 반해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인력 중 여성의 비율은 23.1%에 불과하다. 자연‧공학계열 대학 신입생 중 32.2%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탈자가 많다는 의미다. 경력의 지속 측면에서는 더 처참하다. 연구과제 책임자를 맡는 여성의 비율은 12.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단 2명

일제강점기(1910~1945)에 이공계 대학을 마친 조선인은 약 400명으로 추정된다. 이중 여성은 단 2명뿐이다. 한국인 최초 여성과학자도 이때 나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과학자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대한민국 과학기술 유공자로 선정된 고(故) 김삼순 박사다. 

故 김삼순 박사. ⒸWikipedia
故 김삼순 박사. ⒸWikipedia

김 박사는 1928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現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생 중 가장 우수한 성적자만 진학 가능하다는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에 진학했다. 이 시기엔 여성이 국내 유일했던 경성제국대학으로 진학할 수 없어,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김 박사는 이곳에서 당대 일본 최고의 여성과학자들을 만나 세포학과 유기화학을 배웠다. 귀국 후엔 한국 첫 여성 이과선생님으로서 학생들에게 화학과 수학을 가르치다가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사표를 던졌다. 해방 후인 1946년 서울대 사범대 식물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하지만 김 박사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중단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서울대 교수직을 관두고 다시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 규슈대 농학부에서 학위를 이어갔고, 1965년 최고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논문을 두 편이나 게재했다. 이후 당시 관점으로는 ‘할머니’로 불리던 57세에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한국 여성 최초의 여성 박사가 됐다.

다른 여성과학자 ‘후배’들은 대부분 해방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과학기술 분야 박사학위를 받는 여성들이 등장했고, 이들이 국내 대학에서 활약하게 된 것은 10년이 지난 1960년대 후반부터다. 

 

패스트 팔로워 성장 속 잊혀진 여성과학기술인

광복과 6‧25 전쟁을 겪은 이후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에 힘입어 발전해 왔다. 1960~70년대의 과학기술 진흥 정책으로 양성된 과학기술자들이 외국의 선진기술을 도입‧보급하여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맏형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1966년 설립된 이후 대덕연구단지에 정부출연연구소들이 잇달아 설립됐다. 하지만 여성 과학자는 거의 없었다. 90년대 이후 석‧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 과학기술인력이 늘어났고, 출연연이나 대학 등에서 많은 인재를 채용하기 시작하며 여성 연구자의 숫자도 많아졌다. 

1993년 9월 열린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창립총회.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1993년 9월 열린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창립총회.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하지만 남성 위주의 과학기술계 문화에서 크고 작은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1993년 오세화 박사(한국화학연구원 명예연구원)와 정광화 박사(前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는 여성 과학자 단체의 필요성을 느껴 의기투합하여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를 만들었다. 당시 별도의 사무실 없이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는 여성과학기술인 인력현황조사, 어린이집 설립 추진, 소식지 발간, 학술대회 개최 등 많은 사업을 펼쳤다.

 

여성과학기술인 지원법 제정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는 2002년 과기부가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맹활약했다. 여성 과학계의 의견을 반영하여 초안도 만들고, 공청회도 열었다. 이후 마침내 2002년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여성과학기술인법)’이 제정됐다. 1990년대부터 여자대학을 중심으로 연구기반 확충을 위한 사업이 소규모로 추진되기는 했지만, 과학기술 분야 여성인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이 법의 제정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여성과학자의 연구 모습. ⒸGettyImages
여성과학자의 연구 모습. ⒸGettyImages

2003년 7월에는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제정되고, 이에 기반해 2004년 이후 5년마다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이 수립‧시행되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 이를 통해 여성과학기술인 관련 예산과 사업을 확보하고, 양적 성장을 이뤘으며,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現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라는 주용 수행 주체도 갖추게 됐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2025년 현재. 여성과학기술인의 현주소는 어떨까.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이 발표한 ‘2023년도 여성과학기술인력 활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전체 과학기술연구개발인력이 약 4만2,000여 명(19.8%) 증가했고, 이중 여성인력은 약 1만9,000여 명(45.1%) 증가했다. 여성 과학기술연구개발인력의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의미다.

연령대별 자연‧공학계열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추이(2014-2023). 지난 10년간 자연계열 35-39세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20.0%p 상승했다. 다만, 10년 전에 비해 경제활동참가율 그래프 모양은 M자형에서 L자형으로 바뀌는 경향을 보인다. Ⓒ2023 남녀 과학기술인력현황,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연령대별 자연‧공학계열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추이(2014-2023). 지난 10년간 자연계열 35-39세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20.0%p 상승했다.
다만, 10년 전에 ​​​비해 경제활동참가율 그래프 모양은 M자형에서 L자형으로 바뀌는 경향을 보인다. Ⓒ2023 남녀 과학기술인력현황,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다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았다. 이공계대학, 공공연구기관, 민간 연구기관 모두 근속 연수가 높아질수록 여성 과학자의 비율이 낮아진다. 일반적으로 여성 경력 단절의 주요 원인은 출산‧육아로 30~40대 고용률이 현저히 저하되었다가 회복되는 M자형 경력 곡선을 보인다. 하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기술적‧업무적 특성으로 인해 경력 단절 후 복귀가 거의 없는 L자형 경력 곡선을 나타낸다. 여성과학기술인력이 대개 고학력의 전문직인 점을 감안할 때, 그만큼 인적자본 투자의 손실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여성과학기술인들이 여전히 목마른 이유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저작권자 2025-08-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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