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논란이 됐던 부실 학회 참가 문제에 이어 최근 지식재산권 편취, 연구비 유용과 횡령, 논문 부당 저자 표시 등 연구 윤리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 특히 한국연구재단에서 매년 시행하는 대학의 연구 윤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에서 판정하는 연구 부정의 유형 중 표절이 37%, 부당한 저자 표기가 2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부실 학술활동을 예방하고 연구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회 변재일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주관한 연구부정 방지 대토론회가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연구윤리, 자율과 규제의 경계’를 주제로 열렸다.
연구윤리, 자율과 규제의 경계는?
이날 문미옥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과학기술이 우리나라의 미래라는 믿음에 걸맞게, 과학기술계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며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과학기술계 자체적으로 자정의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정부는 연구현장에 혼란이 없도록, 변해가는 사회적 인식에 맞도록 법과 규정을 정비하여 과학기술계의 자정 노력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과기정통부 산하 연구부정방지위원회 신설 계획이 발표됐다. 이날 ‘연구윤리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발제한 이석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과장은 “연구 윤리 확보와 연구부정 방지를 위한 시책 수립, 전문기관과 연구기관의 연구 윤리 시책 점검, 다양한 형태의 연구부정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심의하게 될 것”이라고 연구부정방지위원회의 기능을 설명했다.
위원장 1명(민간)을 포함한 15명 내외의 심의위원과 10명 이상의 분야별 자문위원으로 구성되는 연구부정방지위원회는 과기정통부 1차관실 내에 신설하여 운영된다. 아울러 사회적 요구에 맞게 연구 윤리 개념과 유형을 재정립하여 범부처 연구 윤리 규범 마련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범부처 연구윤리위원회 신설도 검토 중이다.
연구부정방지위원회 신설 계획 발표
이석래 과장은 “기존 연구부정행위 범위가 연구 진실성 위주였으나 이제는 점차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증대하고 있는데 비해 특히 연구부정행위의 개연성이 높은 이해 상충에 대한 규정이 미비하다”며 이를 위한 연구 윤리 규범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해 상충이란 한 개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개인이나 가족의 사적 혹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종류의 행위나 행동을 포함하는 법적 용어다. 예를 들면 연구자가 기업 등이 지원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연구결과가 기업에 유리하도록 편향되게 연구를 수행하여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경우나, 교수 자녀와 지인 등을 논문 공저자로 등재시켜 연구자가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연구 윤리 교육 위해 전문가 양성 필요
또 연구 윤리 개념 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엄창섭 대학연구윤리협의회장은 “과거에는 책임 있는 연구 활동과 관련된 인식 규범으로서의 연구 윤리였다면 이제는 연구성과의 활용과 관련된 가치 실천으로서의 연구 윤리로 바뀌고 있다”며 “연구 윤리가 실천윤리로 전환되어야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효율적인 연구 윤리 교육의 실시가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전문가 양성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엄 회장은 “연구책임자급 이상에 대한 연구 윤리 교육을 강화할 뿐 아니라 연령별, 세대별 연구윤리 교육 내용도 특화해야 하고 표절 예방 프로그램 등 연구부정행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활동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해 논란이 됐던 부실 학회와 학술지 출판과 관련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7월 31일부터 시범 서비스 중인 학술정보공유시스템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김완종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학술정보공유센터 책임연구원은 “투명하고 건전한 국제적 학술출판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기 위해 학술정보공유시스템이 구축됐다”고 그 목적을 설명했다.
학술정보공유시스템, 내년 10월 말 정식 오픈
학술정보공유시스템(https://safe.koar.kr)에는 부실 학술지와 학술행사의 개념과 특징, 체크리스트와 관련 동향을 소개하고 있으며 문제 될만한 학술지와 학술행사에 대한 정보 목록이 제공되고 있다. 여기에 부실 학술 의심 신고 기능이 추가되어 있으며 이에 관한 정보 교류가 가능한 부실 학술활동 토론방도 마련되어 있다.
김 책임연구원은 “내년 10월 말쯤 학술정보공유시스템이 정식으로 오픈될 것”이라며 “학술지와 학술행사 정보 수집기를 개발하여 연간 약 20만 건 정도로 신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부실 학술지와 학술행사 체크리스트 개선을 통해 안전성 등급 신뢰도를 향상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나친 규제 연구 발전 저해 우려
이처럼 연구 윤리를 도덕적 책임이 아니라 법적 규제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날 패널토론에 참석한 김진수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부회장은 “지나친 규제는 연구 발전과 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기존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연구 윤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부실 학회 문제도 리스트를 제공해서 연구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고, 부실 학회에 참석한 것이 부끄러워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되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다”며 “안정적인 연구환경이 보장되어야 연구 윤리 제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육소영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나서서 해외 학회에 대해 부실 여부를 판단해서 리스트를 공개하게 되면 법적으로 많은 분쟁의 소지가 있고, 검증기관을 만드는 문제도 얼마나 그 기관이 내린 결론을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서 법적으로 많은 분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김순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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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10-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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