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로벌 부동산 개발회사인 커블러(Kerbler)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고층 목조 건물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84m 높이로 지어질 이 건물에는 호텔과 아파트, 그리고 사무실 등이 입주할 예정이다.
이 회사의 관계자는 “환경적인 이점 때문에 콘크리트 대신 목조를 건축재로 선택했다”고 말하며 “나무가 오래 전부터 건축 재료의 하나로 사용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고층 건물에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는데, 이는 잘못된 선입견”이라고 강조했다.
커블러사의 사례에서 보듯, 강철과 콘크리트로만 연상되던 고층 건물을 나무로 지으려는 시도가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조금은 생소하게 여겨지는 나무로 짓는 고층 건물, 과연 몇 층까지 지을 수 있을까?
고층 건물의 소재 영역을 넘보는 목재
고층빌딩 탄생에는 강철과 콘크리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88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10층짜리 고층빌딩은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최초의 건물로도 유명한데, 이 건물이 세워진 이후 철근과 콘크리트 조합은 고층빌딩의 ‘공식’이 되다시피 했다.
이 같은 공식은 100여년이 넘게 건축업계를 지배해 왔지만, 최근 들어 목재가 철근·콘크리트의 자리를 넘보면서, 나무로 고층빌딩을 지으려는 사례가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목재의 경우, 친환경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설계기법의 낙후 및 구조성능에 대한 의구심으로 인해 대부분 소규모 주택이나 실내외 마감재로만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고층빌딩의 소재로는 생소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대형 건축물에 사용되는 재료로서의 내구성 및 생산성이 2000년대부터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건축 소재로서의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120m의 높이까지 목조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는데, 실제로 2년 전에는 호주 멜버른에 10층 높이 아파트가 선을 보이기도 했다.
나무가 차세대 건축 재료로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친환경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친환경 건축가로 유명한 캐나다의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나무는 1㎥당 이산화탄소 1톤(t)을 저장한다”고 설명하며 “콘크리트로 20층 건물을 지으면 1200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반면 나무로 같은 높이의 건물을 지으면 이산화탄소 3100톤을 흡수할 수 있는데, 이는 연간 자동차 900대를 도로에서 없애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무리 친환경 건물이라 하더라도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콘크리트보다 강도가 30~40배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나무로 과연 고층빌딩을 지어 올려도 괜찮을까?
이 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지난 2009년 일본에서는 목조 빌딩의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대규모 실험이 진행됐다. 총 23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7층 목조 아파트를 실물 크기로 짓고 이 아파트를 거대한 진동판 위에 올려 상하좌우로 흔들어대는 모의 테스트가 진행된 것.
연구진이 목조 아파트에 리히터 규모 6.5~7.3의 진동을 40초간 수차례 가하자, 엄청난 진동이 아파트를 때릴 때마다 벽체는 흔들렸고, 안에 있던 가구와 식기도 모두 쏟아졌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는 한 마디로 의외였다. 강력한 진동에도 불구하고 목조 아파트는 벽에 살짝 금이 간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립산림과학원 재료공학과의 박문재 과장은 “목조 건물이라고 해서 일반 목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압축한 특수 목재를 사용한다”라고 설명하면서 “다공질성이어서 진동 흡수 능력이 뛰어난 만큼, 지진에는 오히려 콘크리트보다 잘 견딜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나무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화재에는 괜찮을까? 이에 대해서는 호주 연방과학원(CSIRO)의 저스틴 레너드(Justine Renard) 박사가 “일반적으로 나무는 불에 잘 타는 게 맞지만, 목조 건물에 사용하는 목재는 강하게 압축돼 있어 불에 쉽게 타지 않는다”라고 밝히며 “마치 성냥개비 하나에는 불이 붙기 쉽지만, 굵은 통나무에는 불이 잘 붙지 않는 현상과 비슷한 원리”라고 덧붙였다.
국내도 목재로 된 연구소 건물 신축 중
다른 나라보다 출발은 좀 늦었지만, 국내에서도 나무로 고층빌딩을 짓는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산림청 산하 기관인 국립산림과학원이 오는 2018년과 2022년까지 각각 5층의 목조빌딩과 10층 규모의 목조아파트 건설을 목표로 목조건축 기술 개발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그 같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에서 개발된 목조 건축기술로는 ‘구조용 면재료(CLT) 제조 기술’과 ‘목조빌딩 에너지성능 향상기술’, 그리고 ‘목구조 설계기술’ 등이 있다. 이 중 구조용 면재료 기술은 직교로 배치하여 집성한 첨단 공학목재로서 고층 목조건축에 적합하다.
이 같은 기술을 활용하여 국립산림과학원은 현재 과학원 내에 위치한 산림유전자원부 연구동을 목재로 짓고 있다. 지상4층, 면적 4,500㎡ 규모로 건설 중인 이 건물은 국내최초의 대형 목재구조 건축으로서, 올해 4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박 과장은 “신기후체제에서 탄소를 저장하는 목재를 도심의 건설재료로 사용하는 도시의 목조화는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이라고 강조하면서 “계획에 따라 연구가 차질 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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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2-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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