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지식재산권 침해로 피해를 입게 된 사례와 피해규모의 파악을 위한 실태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된다. 지식경제부 무역위원회는 26일 최근 선진국이 특허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중국 등 후발국으로부터 위조상품 유입이 늘고 있어 우리 기업의 피해를 방지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우선 그 피해 실태부터 파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6월부터 12월까지 7개월 동안 지식재산권 가운데 특허권, 실용신안권, 상표권, 디자인권 등 산업재산권 침해에 관해 심층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조사 방식은 지난 3년간 연평균 산업재산권 출원실적이 5건 이상인 기업체 1천여 곳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인다. 전수조사 대상이 아닌 기업체도 조사 기간 중 무역위원회 홈페이지 또는 공청회를 통해 조사 참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실태조사에는 특허청, 관세청 등 지재권 보호 유관부처가 공동 참여하며, 조사결과도 공동으로 활용함으로써 부처간 지재권 보호업무 공조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아울러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지재권 전문 변호사, 변리사, 학계 및 업계 관계자 등 18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이 오는 5월 28일 발족한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대상 기업에 대한 설문조사, 면담조사, 공청회, 시장조사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피해사례를 수집하게 되며, 통계목적 이외에 철저한 비밀이 유지된다. 설문조사는 조사대상 기업 전체에 대해 실시된다. 피해품목, 침해당한 지재권의 종류, 피해의 유형, 피해발생지역(국가), 피해규모(금액) 및 산출근거, 침해물품의 제조자 및 제조지역(국가), 침해물품의 유통경로, 침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대책 등 피해 관련 항목과 기업규모, 지재권 보유 현황 등 기업 현황 항목에 관한 조사가 이뤄진다.
심층 면담조사는 업종별 대표 기업과 설문조사 결과의 신뢰도가 낮은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피해사례 및 개선대책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가 개최된다. 조사대상 업체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아울러 지재권 침해물품의 유통경로 파악을 위해 업종별 주요 유통거점에 대한 시장조사도 실시된다.
조사결과에 대한 통계분석은 업종별 · 품목별 · 권리종류별 · 피해규모별 · 침해국가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뤄진다. 기업체 및 각급 단체의 지재권 관련 피해 방지 대책 수립에 활용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실태조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지재권 침해사례가 밝혀질 경우 피해 기업에 통보되며, 피해 기업의 의사에 따라 무역위, 특허청, 관세청 등 관계기관에 의해 시정조치, 검찰고발, 통관금지 등 다각적인 보호조치가 취해지게 된다.
‘주요 위조품 제조국’, ‘지재권 침해 감시대상국’ 오명 벗어나야
조사결과 분석을 바탕으로 향후 국가 전체적인 관점에서 지재권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 방향에 관한 연구도 함께 수행된다. 우리나라 기업의 ‘지재권 피해’에 관한 조사결과는 역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지재권 침해’에 관해서도 분석해, 이를 우리나라의 지재권 보호 수준에 관한 국제사회의 인식 개선에 활용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지재권 보호수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은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왔으나, 최근 OECD는 ‘위조 및 해적판의 경제적 충격’ 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주요 위조품 제조국’으로, 미국무역대표부는 ‘스페셜 301’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지재권 침해 감시대상국(Watch List)’으로 각각 지목하는 등 아직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최근 선진국의 특허공세 강화, 후발국으로부터 위조상품 수입 증가 및 한류 열풍 등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우리 기업이 지재권 침해로 인해 피해를 입는 지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가 전체적인 피해규모에 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통계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식경제부 조성균 불공정무역조사팀장은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지재권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게 될 의미 있는 통계자료가 제시될 것”으로 기대했다. 무역위원회 김호원 상임위원도 이날 “우리나라 기업의 지재권 관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실태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재권 침해 조사개시 기간 단축 등 제도 정비
무역위원회는 이날 지재권 침해 실태조사와 함께, 피해기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도 병행하여 추진한다고 밝혔다. 우선 지재권 침해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현행 30일이 소요되는 조사개시 결정기간을 20일로 단축하고, 지재권 침해에 관한 최종판정 기한을 조사개시 후 6개월로 제한한다. 지금까지는 무역위가 지재권 침해로 판정한 물품을 유통경로만을 변경하여 제3자가 수출입 및 판매․제조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조사과정을 다시 거침으로써 제재에 장기간이 소요됐다. 앞으로는 이러한 경우 동일 물품 여부에 관한 확인절차를 거치고 즉시 제재할 수 있도록 개선된다.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갖춰질 전망이다.
매출액 및 시장점유율 등에서 우위에 있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제소하는 경우 잠정조치의 시행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담보 제공액을 50% 감면하게 된다. 잠정조치란 무역위 최종판정 이전에 지재권 침해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고 있거나 그러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급박한 경우, 무역위에 일정 금액의 담보를 예치하고 수출입 및 제조․판매 등 침해행위를 제재하는 제도다. 이 같은 제도는 개정법령이 발효되는 오는 9월 2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제도 개선과는 별도로, 지재권 침해행위 발굴 활성화 및 무역위원회의 지재권에 관한 전문성 보강 대책도 추진된다. 현재 전자, 의류, 시계 등 지재권 침해 빈발 3대 업종에 지정돼 일선 산업현장에서 지재권 침해행위를 발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불공정무역행위 신고센터’는 오는 7월 5대 업종으로 확대된다.
또 무역위원회 위원 가운데 지재권 전문가를 주심위원으로 지정, 조사 · 판정 전 과정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주심위원제’도 오는 7월부터 시범 시행된다.
- 권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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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8-05-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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