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권익이라고 하면 휠체어를 타고 투쟁하는 모습을 연상하기 쉽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기술을 통해 매우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정선애 서울시NPO지원센터 센터장)
"청각장애인은 못듣는 사람이 아니라 소리를 눈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작은 약점보다는 큰 장점에 주목해 기술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고요."(박원진 AUD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장애인을 위한 제품으로 이미 돈을 벌고 있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더 많이 버는 게 목표입니다. 장애인 사업도 비즈니스적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정성환 토도웍스 본부장)
12일 D캠프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공동으로 마련한 '에이블 테크(Able Tech)' 디파티 행사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IT혁신 기술을 사업에 접목하고 있는 기업들이 소개됐다. '에이블 테크'라는 이름으로 관련 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장애인을 위한 기술 및 제품들은 의료 용품, 재활 기기 등의 기능 관점에서 인식됐지만 최근 모빌리티, 인공지능, 센서 기술 등의 다양한 IT기술들이 결합되고 장애인의 사회 참여 요구가 높아지면서 '에이블 테크'라는 새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에이블 테크가 장애인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참여 기술이라는데 견해를 함께 했다.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의 강내영 대표는 "기존 장애인 프로그램은 대부분 장애인만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기술들이 많이 나오면서 소통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가지 신체적 어려움으로 직장생활, 타인과의 소통, 문화체험 등에서 매우 제한된 기회만을 가졌던 장애인들이 사회 참여의 폭을 넓히고 더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도록 돕는 것이 에이블 테크의 지향점이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에이블 테크
이날 행사에는 총 6개의 에이블 테크 업체가 참여했다. 지체 장애와 시청각 장애 분야의 기술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4년째 에이블 테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AUD사회적협동조합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서비스 쉐어타이핑으로 유명한 곳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글래스만 있으면 청각 장애인들이 앱을 통해 음성을 문자로 받아볼 수 있도록 타이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2일부터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이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지난 8월부터는 사람이 타이핑하지 않고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통역해주는 에이브릴 서비스를 시작했다. 다양한 목소리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서비스를 수준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본인 역시 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박원진 이사장은 "청각 장애인들은 수화로만 의사소통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처럼 구화로 하거나 글로 하는 필담도 있다"며 "청각 장애인을 잘 듣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고 잘 보는 사람으로 관점을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또 다른 에이블 테크 기업으로는 팀설리번이 참여했다. 청각 장애인은 국가로부터 수화통역사 지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활용면에서 관할 구역 등이 지나치게 경직돼있고 신청하고 싶어도 정작 청각 장애인은 직접 하기가 어려운 애로사항이 있었다. 팀설리번은 통역사들의 비는 시간을 확인하고 필요할 때 가장 가까운 통역사를 신청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다.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이다. 강내영 대표 본인이 저시력의 시각 장애인으로 작가 활동을 하다가 창업한 케이스. 강 대표는 "이제까지 장애인을 위한 콘텐츠는 정작 비장애인이 만든 경우가 많아 장애인의 입장과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며 "장애인이 여러가지 제약을 극복하고 콘텐츠 기획, 제작의 주체로 등장하도록 하는 것이 설립 취지"라고 말했다. 일례로 '권반장이 간다'는 실제 시각 장애인인 권반장이 비장애인 진행자와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는 내용인데 시각 장애인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매우 상세한 안내를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지체 장애인을 위한 에이블 테크
신체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휠체어나 주변 사람들에 의존해야 하는 지체 장애인을 위한 에이블 테크도 다양하게 소개됐다.
토도웍스는 수동과 전동으로 양분된 100년 휠체어 시장의 룰을 바꾼 업체다. 수동은 가볍고 저렴하지만 장애인에게 많은 수고를 요한다. 전동은 편리하지만 지나치게 무겁고 비싸다. 어느 캠프 현장에서 친구와 같이 놀지 못하고 혼자 휠체어에 앉아 있는 민준이라는 학생이 토도 드라이브 개발의 계기가 됐다.
'기존 수동 휠체어에 모터, 조이스틱, 배터리만 달면 전동 역할을 할 수 있을텐데...'라는 아이디어가 생겨났고, 카카오 스토리 펀딩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토도 드라이브는 자체 무게 4.5kg으로, 휄체어에 장착해도 전체 중량이 18kg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 10kg 이하의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또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수동 휠체어 94%와 호환 가능한데 100%까지 끌어올리는 한편 무선 조종과 자율 주행까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토도웍스의 목표이다. 정성환 본부장은 "추석 연휴 기간동안 독일의 장애인 관련 전시회에 참여했는데 사용자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아 매우 기뻤다"며 "글로벌 시장 가능성도 충분히 확인했다"고 말했다.
무의(Muui)는 장애를 무의미하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설립된 협동조합 기업이다. 장애가 있는 딸을 지하철로 데리고 다니면서 느낀 불편함과 부당함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올려 많은 공감을 자아냈던 홍윤희 이사장이 아예 직접 나서 장애인을 위한 지하철 맵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홍 이사장은 "서울 지하철은 사업자가 10개나 되는데 사업자가 다르면 환승 정보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정보 공유도 안되는 실정"이라며 "직접 나서지 않고도 공공기관에서 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정착될 때까지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무의는 옥션 케어플러스라는 장애인 전문 몰을 열어 토도 드라이브 휠체어를 비롯해 점자 시계, 휠체어 이동을 위한 경사로 등을 판매하고 있다.
위에이블은 장애인들을 위한 관광 명소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해 장애인들이 갈만한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장애인용 코스를 개발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네이버와 제주관광공사가 선정한 휠체어 여행 크리에이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회적 실험과 비즈니스 가능성 타진
에이블 테크의 특징 중 하나는 비장애인도 장애인을 위한 기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의 문호를 크게 열었다는 점이다. AUD는 인공지능 문자통역 서비스 에이브릴을 위해 목소리 기부를 해줄 사람들을 찾았는데 한달만에 무려 2만 8900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앱을 켜고 제시된 문장을 읽고 번역 버튼을 누르는 간단한 행위만으로 기부가 가능한 것이 비결이었다. 목소리 DB가 늘어나면 인공지능의 통역 인식률이 좋아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여를 통해 장애-비장애의 장벽을 허무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위에이블의 경우도 비장애인의 참여를 통해 전반적인 인식 개선까지 유도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은 장소나 여행하기에 괜찮은 명소를 비장애인이 사진을 찍어 보내는 방식이다. 이를 1차적인 DB로 활용해 실제 장애인의 여행 코스를 짤 때 참조한다.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역시 비장애인들이 시각 장애인 콘텐츠 기획, 개발, 검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즈니스적인 가능성도 언급됐다. 토도웍스는 이미 500명의 국내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AUD는 첫해 매출이 300만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운영자금이 4억원에 이르고 매출도 10월 현재 지난해 6900만원을 이미 훨씬 넘어섰다. 무의의 홍 이사장은 "휠체어 눈높이에서 보면 시장이 보인다"며 "일본 디즈니씨 테마파크가 에이블 설계로 많은 장애인들을 고객으로 불러모으고 있는 것처럼 사업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이블 테크가 정착되기 위한 과제들도 제시됐다.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은 "장애인은 대기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아마도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18시간 정도밖에 안될 것"이라며 "장애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이 객관적으로처한 상황을 제대로 조사해 데이터 기반의 장애인 정책, 기술 도출됐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토도웍스 정성환 본부장은 "수동 휠체어는 의료기기 1급, 전동 휠체어는 2급으로 정해졌는데 토도드라이브는 그 중 어디에도 못끼고 공산품 규정에 적용을 받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의료보험 적용이 안돼 제품 구매를 하려면 100% 자가부담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언급했다. AUD 박원진 이사장은 "수화서비스는 공공 서비스로 인정받고 있지만 문자 통역 서비스는 아직 해당이 안된다"며 "청각 장애인들의 의사소통 방식이 다양한 점을 감안해 이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조인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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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10-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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