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의 원인이 되는 헬리코박터균을 조심해야 됩니다”

이 말은 헬리코박터(Helicobacter)균 연구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던 배리 마셜(Barry Marshall) 박사가 과거 모 유산균 음료 CF에 출연했을 때 했던 대사다. 그 덕분에 시청자들은 헬리코박터균이 얼마나 유해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이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해당 유산균 음료도 공전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정식 명칭은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licobacter Pylori)’인 헬리코박터균은 지난 1983년 마셜 박사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위궤양과 위염, 그리고 위암 및 십이지장 궤양 등을 일으키는 발병인자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유산균 음료만큼이나 헬리코박터균을 잘 억제할 수 있는 식품이 농촌진흥청 연구진의 노력으로 발견되어 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바로 국내 벌꿀 중에서도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아카시아 꿀’이다.

헬리코박터균 억제 효과는 아카시아 꿀 속의 아브시스산 때문

농촌진흥청은 벌꿀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생산량도 많은 아카시아 꿀이 헬리코박터균의 생장 억제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최근 발표했다.

농촌진흥청의 관계자는 “국내에서 생산한 아카시아 꿀에서 강력한 항 헬리코박터균 물질인 ‘아브시스산(abscisic acid)’을 분리했다”라고 설명하며 “국산 아카시아 꿀이 헬리코박터균의 생장을 억제한 현상은 아브시스산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아브시스산은 식물 대사과정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다. 기공을 조절하고, 꽃을 피우며, 뿌리의 발아를 억제하는 등의 대사과정에 작용한다. 특히 가뭄이 발생했을 시 식물이 생존할 수 있는 저항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아브시스산의 억제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헬리코박터균을 배지에 접종한 뒤, 배양기에서 대량으로 배양했다. 이후 헬리코박터균을 사멸시킬 수 있는 농도와 성장을 억제시킬 수 있는 농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아브시스산을 함량별로 투여했다. 그 결과 아브시스산은 매우 낮은 농도에서도 균의 생장과 사멸을 유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농촌진흥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아브시스산의 항균 효과는 아카시아 꿀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밤 꿀과 잡화 꿀에서도 항 헬리코박터균 효과가 확인되었지만, 아카시아 꿀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효과가 낮았다.

실제로 여러 꿀들을 대상으로 아브시스산의 함량을 분석해 본 결과, 아카시아 꿀에서는 kg당 20mg 가량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다른 꿀에서는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농촌진흥청의 관계자는 “우리나라 벌꿀 생산액 중 아카시아 꿀의 비중이 가장 높다”라고 전하며 “이번 기회를 통해 아카시아 꿀의 고부가가치 기능성이 제대로 규명된다면, 앞으로 양봉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카시아 꿀을 건강기능 식품으로 개발 예정

다음은 이번 연구의 실무를 담당했던 농촌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의 한상미 농업연구관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아카시아 꿀을 헬리코박터균 억제에 활용한 점이 상당히 독특해 보인다. 연구의 동기에 대해 설명해 달라

그동안 헬리코박터균 억제나 사멸을 위해서는 항생제가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지속적인 항생제 투여가 내성과 부작용 등을 초래 할 수 있어 식생활을 통해 헬리코박터균을 치료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결과는 그 같은 움직임의 일환이다. 벌꿀은 감미료로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배앓이나 숙취해소, 또는 감기 등 민간요법으로 활용되어 왔다. 따라서 유해균들에 대한 억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 이번 연구는 동물실험이나 인체시험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헬리코박터균을 배양한 뒤, 직접 아카시아 꿀을 투여하여 억제 정도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생체 내에서의 헬리코박터균 반응은 또 다를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맞다. 이번 연구는 in vitro(시험관내) 시험으로서, 헬리코박터균을 배양한 후 항균력 시험을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앞으로 아카시아 꿀을 건강기능식품이나 의약품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동물실험과 인체시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3년 단위로 시작되는 연구과제에서 다음 과제 추진 시 적용할 예정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헬리코박터균에 대한 동물실험이나 인체시험은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인 만큼, 현재 항 헬리코박터균에 대한 시험은 in vitro 형태로 수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주었으면 한다.

- 혹시 꿀만 비교한 것이 아니라 다른 억제 물질과의 효능 비교 같은 테스트는 이번 연구에서 병행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면 요구르트 같은 유산균 음료 등과의 비교 등을 추진했는지?

아쉽게도 이번 연구에서는 다른 식품과의 비교 테스트는 수행하지 못했다. 연구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진다는 점도 고려가 되었지만, 그보다는 꿀 자체에 연구를 집중하여 이를 건강기능 식품으로 연계하자는 취지 때문에 시작된 만큼, 여러 꿀들을 대상으로만 헬리코박터균 억제 연구를 진행했다.

- 기대효과 및 향후 계획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 달라

아카시아 꿀의 항 헬리코박터균 효능과 물질이 과학적으로 규명됨에 따라 앞으로 다양한 식품 소재와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이번 연구결과를 좀 더 보완하여 건강기능식품이나 신약 개발을 희망하는 산업체를 대상으로 기술 이전할 계획이다. 특히 철저한 품질관리와 우수성에 대한 홍보를 통해 국산 아카시아 꿀을 헬리코박터균을 억제하는 대표 식품으로 브랜드화 하는 것 까지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