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캐나다에 진출한 인도의 기술기업 대표들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서신을 보내 인도인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요청했다. 그 인도인들은 다름 아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등으로 인해 미국 입국이 거절된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외신이 전한 서신 내용을 보면 그들의 요청은 단순한 일회성 부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지닌 인도 인재들을 고용하는 것이 캐나다 경제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서신에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개편을 추진 중인 취업비자(H1-B) 프로그램에 대한 인도 기술기업들의 대응책이 담겨 있다.
H1-B 비자란 전문 기술을 지닌 외국인이 미국 기업에 취업하려고 할 때 단기 체류를 허용하는 취업 비자다. 발급 대상은 학사 학위 이상의 엔지니어 및 컴퓨터 프로그래머, 대학 교수, 의사, 회계사 등의 전문직이며, 체류 허용 기간은 최고 6년이다. 미국의 IT 기업에 취업한 외국인 기술자들 대부분은 H-1B 비자를 이용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취업비자 프로그램을 개편하려는 데엔 이유가 있다. 원래 H-1B 비자는 연봉 1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 외국 전문인력을 미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하지만 기준이 연봉 6만 달러로 낮아진 것.
따라서 이 제도가 그동안 외국에서 낮은 비용으로 전문 인력을 유입하게 함으로써 미국인 전문직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민 개혁의 일환으로 비자 프로그램 개혁 의지를 밝힌 바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H-1B 비자 프로그램의 축소도 추진 중이다.
미국 취업비자 발급 30%가 인도인
그렇게 되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국가는 단연 인도다. 지난 2015년 미국이 발급한 H-1B 비자 중 30% 이상은 인도 국민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국토안보부의 자료에 의하면 H-1B 비자 취득 국가별 비교 인구수에서 인도는 압도적이다. 2009년에서 2011년까지 3년간 인도는 12만 762명으로서, 2위 중국의 2만581명에 비해 약 6배나 많았던 것.
미국에 유학 가는 인도 학생들의 숫자도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공부한 외국인 유학생은 총 100만명이었는데, 그중 15% 이상이 인도 국적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행정부의 취업비자 제한 정책이 시행될 경우 인도가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이 약 1460억 달러(한화 약 167조 535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인도 정부를 비롯해 인도 IT업계는 벌써부터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인도 외교부에서 미국 의회 및 행정부에 H-1B 비자 강화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인도 IT기업 협회인 나스콤은 미국의 취업비자 강화 정책이 오히려 미국의 기술 후퇴 및 노동력 부족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H-1B 프로그램의 개편에 반대하고 나선 건 인도 뿐만이 아니라 실리콘밸리도 포함되어 있다.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이 잇달아 반대 성명을 내고 있는 것. 또한 아마존도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제소한 워싱턴 주를 지지하며, 다른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기술기업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인력난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미국 전체 노동력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 업계의 일자리만 놓고 보면 그 비중이 12%에 달할 만큼 외국인 전문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취업비자 강화되면 실리콘밸리도 손해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이처럼 다양한 외국 인재들을 채용하는 까닭은 글로벌 시장의 공략을 위해서다. 그들을 통해 각 국가들이 지닌 고유한 문화를 파악함으로써 거기에 맞춰 국가별로 출시되는 IT 서비스를 현지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고민하는 것은 취업비자 요건이 까다로워질 경우 미국으로 오는 외국인 유학생 자체가 줄어듦으로써, 외국의 인재가 아예 자기 조국을 벗어나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도의 경우 기술 분야의 투자 및 성장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여서 더욱 고민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도의 이커머스 업체 스냅딜을 창업한 쿠날 바흘 같은 경우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바흘은 H-1B 비자를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인도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스냅딜을 창업함으로써 이제는 아마존과 함께 인도 온라인쇼핑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것.
이처럼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취직까지 했으나 비자 문제 때문에 인도로 귀국한 인재들이 창업한 기업 중에는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스타트업이 여럿 있다.
H-1B 비자가 강화되고 인도 IT 시장의 성장이 지속되면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앞으로 그 같은 기업들과 더욱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한다. 또한 실리콘밸리에 설립되는 스타트업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H-1B 비자 제한이 시행될 경우 미국도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인도 IT기업 협회 나스콤의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닌 셈이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7-02-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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