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韓紙)는 그냥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비단보다 생명이 길고, 질기기가 가죽과 비슷하다. 이런 한지의 특성은 ‘인조실록’을 살펴 보면 잘 나타나 있다.
‘철갑은 무겁고 차서 입기에 불편하지만, 한지로 만든 옷은 가볍고 따뜻하며 부드럽다. 특히 여러 겹을 겹쳐 입으면 화살이 뚫지 못할 정도로 질기고 강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옷감이나 생활용품의 소재로 활용해도 전혀 손색없는 한지가, 최근 들어서는 과학기술과 접목되어 한 단계 더 향상된 기능의 신소재로 거듭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동물 희생과 환경오염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한지가죽
지난 10월 전주에 위치한 한국전통문화전당 한지산업지원센터에서는 ‘한지의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지가죽에 대한 전시회가 열렸다. 한지가죽은 가벼우면서도 강한 한지의 장점은 살리되, 물에 약하고 보풀이 발생하던 단점은 현대 과학기술로 보완한 신소재다.
가죽산업은 인류 문명에 있어 가장 오래된 분야 중 하나다. 인류는 가죽을 가지고 옷을 만들어 체온을 유지하거나, 질긴 성질을 이용하여 각종 생활용품 소재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가공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와 동물학대 문제 등으로 인해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아 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인공적으로 가죽의 질감을 내는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다양한 인조가죽들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인조피혁 역시 대부분 2차 오염을 유발하는 석유화학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환경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반면에 한지로 만든 가죽은 닥나무로 만든 한지와 면 같은 천연재료만을 사용한다. 따라서 동물의 희생이 없어도 기존 피혁의 느낌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고, 제조과정이나 폐기 시에 어떠한 오염물질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천연가죽과 인조가죽에서는 할 수 없는 다림질이 가능하며, 흠집이 나도 품질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가공 작업에 유리하다. 이처럼 한지가죽은 재단과 봉제 등의 가공이 편리하다는 장점 때문에 의류는 물론 가방, 모자, 재킷, 신발, 인테리어 자재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한지가죽은 우수한 통풍성과 함께 항균력 및 무독성을 겸비하고 있다. 한지의 주원료인 닥나무 인피에는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한지가죽의 경우 99.9%의 항균력을 지니고 있다.
무독성의 경우는 한지 자체가 천연재료여서 독성이 없을뿐더러, 후처리 과정에서도 무독성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공법의 코팅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기존의 피혁 코팅제 대신 수용성인 무독성 코팅제를 사용하는 것.
한지산업지원센터의 주용찬 연구원에게 한지가죽과 관련하여 궁금한 사항을 물어 보았다. 한지산업지원센터는 뛰어난 한지가죽의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민간 기업들의 한지관련 개발업무를 지원하고 있는 곳이다.
- 한지 가죽이 신소재임이 분명하지만, 예전 문헌을 보니 이미 조상들이 개발했던 소재가 존재하고 있던데?
그렇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옛 선조들이 ‘줌치공예’ 같은 기법을 통해 한지의 질감을 가죽처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줌치공예란 전체 종이면이 요철처럼 오톨도톨한 면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종이옷과 지갑류 등을 만드는 경우에 사용해 왔다.
- 그렇다면 현대 과학기술이 접목되어 한지가죽의 기능이 향상된 점은 무엇인지?
방수와 보풀 방지 기능이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다. 마치 한지 장판과 같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한지 장판을 처음 발랐을 때는 표면이 약간 꺼칠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끄러워지는 것처럼, 한지가죽도 후처리 가공이라는 기술을 통해 과거의 한지가죽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실제 가죽과 같은 매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 한지가죽의 본격적인 상용화 계획은?
한지산업지원센터가 공공기관이다 보니 직접적인 제품 개발보다는 민간 기업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한지 분야에 뛰어드는 민간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 센터는 이런 업체들을 위해 전시 공간도 제공하고 기술적인 애로사항들을 해결하는 역할에 전념할 계획이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소재 중 하나로 선정
한지의 가능성은 한지가죽에만 국한되지 않고, 최근 들어서는 첨단 산업 소재로 그 사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은 한지 종류의 하나인 ‘입체줌치지’가 글로벌 소재 정보 전문 기업인 머티리얼커넥션(Material ConneXion)사가 선정하는 가장 혁신적인 첨단 소재로 선정됐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이 회사는 현재 전 세계 200여국에 IT와 디자인, 그리고 건축 등 산업 전 분야에 소재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업체로서, 매 분기마다 가장 혁신적인 소재를 선정하여 ‘액티브 매터(Active Matter)’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액티브 매터에 선정되면 소재 전문가들 사이에서 ‘소재 선택의 바이블’로 평가를 받으면서, 산업 소재 분야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 김준래 객원기자
- stimes@naver.com
- 저작권자 2015-12-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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