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 발전의 성과에는 과학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70년간 국가 경제발전을 견인해 온 과학기술의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대표성과 70선을 선정했다. 본지에서는 이번 70선에 대한 시대별 선정결과를 연대별로 7회에 걸쳐 소개한다.
우리나라가 이동통신 산업에 처음 뛰어든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1984년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처음으로 차량 전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1세대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됐다.
이동통신 수요가 급증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다. 1988년 말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2만 명, 1990년 말에는 8만 명에 도달하는 등 가입자 수가 매년 100% 이상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 이동전화 가입률은 매우 낮았다. 1990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이동전화 보급률은 1.72대에 불과했다. 스웨덴 53.53대, 미국 20.76대, 일본 5.56대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였다.
90년대 작은 벤처기업 퀄컴 CDMA에 주목
더 심각한 것은 낮은 기술력이었다. 시스템이나 단말기 등을 전부 수입에 의존했다. 한국 상표를 붙였다 하더라도 수입품을 들여와 약간의 개조를 거친 것이 대다수였다. 서비스 질도 매우 낮았다. 통화 중에 끊어지거나 혼선이 일어나는 등 소비자 불만도가 매우 높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기존 아날로그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요구됐다. 해답은 2세대 이동통신인 디지털 이동통신시스템이었다. 당시 선진국들은 이미 디지털 방식을 도입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시간분할방식(TDMA)을, 유럽에서는 GSM(Group Special Mobile) 방식을, 일본에서는 PDC방식을 상용화해놓고, 저마다 자국 시스템을 세계 표준방식으로 채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처음 연구 목표로 삼은 기술은 TDMA였다. 그러나 TDMA방식을 선택하는 데 있어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됐다. 가입자 증가 추세를 감안했을 때 1996년 개발 완료시점에서 TDMA의 수용 용량이 크게 부족할 것으로 예측됐다.
더구나 유럽에서 GSM이 개발돼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북미식 시간분할방식(TDMA)도 개발 완료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 기술을 이용해 시스템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선진국에 종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에 성공
그러던 중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당시 미국의 작은 벤처기업이었던 퀄컴(Qualcomm)을 주목하게 된다. 이 기업에서 개발한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의 가입자 용량은 아날로그 방식의 10배, TDMA 방식의 3배를 넘었다.
또 전파 효율성과 기지국 배치 면에서도 TDMA 방식보다 뛰어났다. 무엇보다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CDMA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발할 경우 선진국의 시스템 기술 종속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시장 진출에도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국책 연구기관인 ETRI로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선택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게다가 정부와 학계, 산업계 등을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ETRI는 CDMA 방식을 선택할 경우 최신의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하고 상용화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논리로 정부와 학계, 산업계를 설득했다.
1991년 5월 6일 퀄컴사와 CDMA 기술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한다. 대한민국 이동통신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에 성공한다. 이후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동통신 산업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CDMA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동통신 가입자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거뜬히 해결해나갔다.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발전은 거의 비약적이었다. 많은 기업들이 이동통신 장비와 단말기 사업에 뛰어들면서 대외 의존도도 급격히 감소했다.
리튬이온전지 등 세계 최강 기술 등장
1990년대는 그동안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술들이 다수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LG화학의 리튬이온전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LG화학은 1996년부터 모두 270억 원의 개발비를 투자해 1997년 말 리튬이온전지를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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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리튬이온전지 시장은 일본 업체들이 석권하고 있었다. 일본 업체들끼리 경쟁하면서 다른 나라 경쟁자들을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휴대폰 등 전자제품 용으로 리튬이온전지 시장이 크게 팽창할 것으로 예상됐다.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를 내다본 기술개발이었다. LG화학의 예상은 적중했다. LG화학, 삼성SDI는 리튬이온전지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다. 그리고 지금 일본 기업들부터 세계 최강의 자리를 넘겨받은 상태다.
2년 후에는 한국 최초의 신약이 탄생했다. 1999년 9월1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항암제 ‘선플라’ 제조 판매를 승인했다.
SK케미컬에서 개발한 백금착화합물 항암제 ‘선플라’는 기존의 항암제에 비해 항암 효과과 매우 우수하고, 신경독성·신장독성 등 부작용을 크게 낮춘 신약이었다. 한국은 ‘선플라’ 이후 21개에 신약 개발에 성공하는 등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국가가 됐다.
이밖에 CJ제일제당에서는 세계 최초로 라이신·핵산 발효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통해 CJ제일제당은 조미료 등의 원료인 라이신과 핵산 시장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그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다.
KIST와 일진다이아몬드에서 공동개발한 ‘공업용 다이아몬드’, 대림산업의 ‘폴리뷰텐 생산기술’,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한국 표준형 원전 설계기술’ 등도 1990년대 큰 주목을 받은 기술들이다.
한국산 최초 군용기, 인공위성 개발도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공군은 비행기 제작에 몰두하고 있었다.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군용기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1988년 2월부터 시작된 ‘한국형 훈련기 개발사업’이 시작한다.
군용기 개발을 주도한 것은 국방과학연구소였다. 제작과 생산은 한국항공(주)이 맡았다. 그리고 3년여의 공동 개발을 통해 1991년 12월12일 국산 훈련기 ‘KTX-1' 1호기의 초도비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이전까지 한국산 군용기를 제작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 이원복 소령이 제작한 ‘부활호’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조립 수준에 머물렀고,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KTX-1'은 경우가 달랐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체계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힘 있게 추진한 사업이었다. 1992년 초 이 훈련기는 공모를 통해 ’여명(黎明)‘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같은 해 2월에는 ’KTX-1' 2호기의 초도 비행에 성공한다.
초창기 이렇게 진행된 훈련기 개발 사업은 이후 컴퓨터 설계를 적용한 ‘KT-1'을 거쳐 2014년 ’KT-1P‘를 해외에 수출하는 데까지 이른다. 이처럼 한반도 상공에서 한국형 훈련기가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1992년 8월10일 국산 위성이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인공위성의 이름은 ‘우리별 1호’였다. 남미 기아나 쿠루기지에서 ‘아리안 V52’ 발사체에 실려 고도 1,300km, 궤도 경사각 66.042°의 우주궤도상에 안착했다. 이 인공위성은 KAIST가 영국 서레이 대학(University of surrey)의 도움을 받으며 제작했다.
1989년부터 10명의 KAIST 졸업생들이 유학생의 신분으로 영국에 거주하면서 서레이 대학 시설을 활용해 ‘우리별 1호'를 공동 제작했는데 이로 인해 '우리별은 남의별'이라는 힐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우주과학을 위한 기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은 매우 생소하기만 했던 위성기술을 이전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위성 제작은 이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1993년 9월26일 ‘우리별 3호’를, 1999년 5월26일 ‘우리별 3호’를 개발, 우주 상공에 띄워 올릴 수 있었다. 1990년대는 지금의 첨단 위성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착실하게 구축해나갔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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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7-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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