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입을 쩍 벌리고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낸 하마. 매우 공격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성격 탓에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위험한 동물로 꼽힌다. 올해 3월경의 외신을 인용한 영상 보도를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사자가 하마들의 공격에 혼비백산 달아나는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사람에 대한 공격성도 높아서 보트를 뒤집어 침몰시키기도 하는 등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하마는 단단한 턱과 큰 이빨을 가진 사나운 전사이지만, 그에 비해 씹는 능력은 형편없어 ‘소식좌’로 살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퍼블릭 라이브러리 오브 사이언스 저널 PLOS ONE에 발표됐다.

하마, 거대한 입과 송곳니를 가진 맹수
하마는 코끼리, 코뿔소에 이어 육상 포유류 중 세 번째로 큰 우제목과(소과) 동물이다. 주로 강과 호수, 습지 등에 서식하는 반수생 동물로 ‘강(江)속의 말(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물에 잘 뜨지도 못하고 헤엄도 치지 못한다. 20~30마리씩 떼 지어 사는데 무리의 영역권을 침해당하면 상대를 무섭게 공격해 ‘아프리카의 맹수’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하마는 거대한 입과 날카로운 송곳니를 과시하면서 공격하는데, 수컷의 경우 송곳니 무게만 2kg에 이른다. 또 턱을 있는 대로 쩍 벌리면 보통 150도에서 최대 180도까지 벌릴 수 있어서 무척 위협적인 외형과 공격 무기를 갖춘 셈이다.
하마의 송곳니는 먹고, 씹고, 뜯는 데는 효율적이 않아
하지만 하마의 영역을 보호하는 든든한 이빨이 먹이를 먹는 데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수의학 교수와 연구진은 하마가 먹는 영상과 배설물, 박물관에 소장된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를 종합해 이같이 발표했다.
마커스 플라우스(Marcus Clauss) 교수는 포유류 200여 종의 배설물 입자 크기를 비교한 2009년 선행연구를 통해 하마가 초식동물 중 가장 ‘덜 씹는’ 동물에 속한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이에 대한 후속연구로서 하마가 덜 씹는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연구진은 먼저 코펜하겐 동물원에서 녹화된 하마의 영상을 분석했다. 주 관찰 대상은 일반하마 (Hippopotamus amphibius)와 피그미하마(Choeropsis liberiensis) 두 종인데, 이들이 먹이 먹을 때 아래턱과 혀를 어떻게 움직이고, 앞니와 송곳니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했다.
영상 분석 결과 두 종 모두 먹이를 씹는 동안 볼이 대칭적으로 튀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양쪽 볼이 입을 벌릴 때 안쪽으로 움직이고 반대로 입을 다물고 있을 때는 바깥쪽으로 움직였다. 일반적으로 이런 입 모양은 위·아래 이빨을 사용해 먹이를 으깨는 저작운동을 할 때 나온다. 초식동물이 크고 넓적하며 튼튼한 앞니와 어금니를 이용해 음식을 반복해서 씹을 때를 연상하면 쉽다.
하지만 하마는 긴 창 모양의 송곳니 때문에 위아래 앞니가 서로 부딪히기 어려운 구강구조를 가졌다. 같은 이유로 턱을 좌우로 움직여서 음식을 갈 수도 없다. 특히 수직으로 턱을 움직이는 일반하마에 비해 입을 좌우로 움직여 씹는 피그미하마 종은 씹는 행위가 매우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먹이를 절구로 으깬 듯 작게 부수지 못한 채 삼키기 일쑤고, 덜 소화된 형태가 배설물에 섞여 배출되는 것이다. 클라우스 교수는 “사슴이나 소 등 일부 초식동물이 진화과정에서 저작운동에 방해가 되는 앞니가 소실되었지만, 하마는 그렇지 않은 사례에 속한다.”고 말했다.

생김새는 이래도 씹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마가 ‘먹고, 뜯고, 즐기는’ 즐거움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하마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제한된 구강구조 상에서 어떻게든 잘게 씹어보려는 시도를 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바젤, 세인트 갈렌, 베를린, 슈튜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 자연사 박물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하마 두개골 100여 개에서 나타난 이빨의 마모 흔적을 토대로 저작운동의 범위와 경향성을 분석했다. 특히 긴 송곳니가 좌우로 씹는 저작운동을 어떻게 방해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 결과 일반하마와 피그미하마 모두 송곳니가 맞물리거나 측면 하악 운동을 방해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송곳니의 마모면을 보면 반대편 이빨이 서로 수직 및 수평으로 움직여 먹이를 부술 수 있도록 돌출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즉, 하마의 아래쪽 송곳니는 하악의 측면에 위치해 있고, 상악 주둥이는 아래쪽 그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좁은 생김새라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제 하마는 단단한 턱, 간격이 넓게 벌어진 이빨, 날카롭고 튼튼한 송곳니와 앞니를 부분적으로 사용하여 먹이를 먹고, 영토를 지키기 위해 포식자로부터 방어한다. 그러나 하마가 상대적으로 먹이를 덜 씹는 방식이 잠재적으로 동일 종에 전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하마는 소식좌?
하마는 생김새 때문에 먹이를 아주 작은 조각으로 쪼갤 수 없고, 소화하는 데도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때문에 하마는 거대 포유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먹는 ‘소식좌’ 신세가 됐다.
클라우스 교수는 “음식이 소화되기 위해 장에 더 오래 머물러 있다는 것은 더 빨리, 더 많이 먹을 수 없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하마는 충분한 먹이를 얻기 위해 육지를 누비는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하마는 반수생 종으로 낮에는 물속에 있다가 밤에 땅 위로 올라와서 하루에 약 50~60kg 정도의 풀을 먹는다. 코끼리가 하루 100kg 이상, 많게는 450kg의 먹이를 먹는 것에 비하면 하마는 ‘소식좌’인 셈이다.
공동연구자인 수잔 윌리엄스(Susan Williams) 오하이오대학교 비교생체역학자는 이번 연구가 유기체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하마의 화석 연구를 통해 하마의 좌우 저작운동이 멈춘 시기와 진화 이야기, 긴 송곳니가 생기기 전 어린 하마의 저작운동 경향성을 후속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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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10-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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