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2백여년 동안 지구 기온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지구 기온이 1℃만 높아져도 해수면 상승, 강수량 증가, 토양의 변화 등으로 생태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럼 과연 ‘투모로우’라는 재난 영화가 그리는 내용처럼, 지구 온난화 이후에는 빙하기와 같은 기후 재앙이 밀어닥칠까.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결국 지구에 곧 빙하기가 닥칠 거라고 어느 기후학자가 경고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얼마 후 정말 그 기후학자의 주장대로 지구 곳곳에서 이상 기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홍수와 한파가 밀어닥치고 토네이도와 해일이 밀려오지만 거대한 재앙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일 뿐이다. 뉴욕을 비롯한 세계의 대도시들은 점차 빙하로 뒤덮여 버린다.
이상은 곧 개봉될 예정인 ‘투모로우’라는 할리우드 영화의 줄거리이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꽁꽁 얼어붙은 장면을 메인 포스터로 만든 이 영화는 전 세계 대도시들이 빙하와 해일에 휩싸인 모습을 각 나라별로 홍보 포스터에 담았다. 파리의 에펠탑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해 우리나라 서울은 남대문이 빙하에 뒤덮인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정말 그 포스터의 한 장면처럼 우리가 사는 지구에 다시 빙하기가 도래할까?
지난 3월 5일 충청도 지역에 내린 기습 폭설은 기상학적으로 각종 진기록을 쏟아내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또 2002년 8월 31일 강릉 지역에는 일최다강수량이 870.5mm를 기록하는 집중 호우가 내렸다. 우리나라의 연 강수량이 1,200mm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1년에 내릴 비가 거의 하루에 쏟아져 내린 셈. 이는 세계적인 기록으로 남을 만한 일강수량이다.
이와 같은 기상 이변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최근에 부쩍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굳이 ‘투모로우’라는 재난영화가 아니더라도 기상 이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질 만하다.
최초로 지구 온난화 현상을 구체적으로 예견한 과학자는 19세기 말 스웨덴 사람인 아레니우스였다. 전해질 용액의 설명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아레니우스는 일생을 거의 지구 온난화 계산에 다 바쳤다.
당시 한창 진행 중인 산업혁명의 여파로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축적될 것을 예견한 그는 3,000년 후의 지구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즉, 그가 계산한 수치상으로는 3,000년 후의 지구가 녹색식물이 번성하는 최적의 기후상태였던 것이다.
그 후 20세기 중엽 일본계 미국 과학자 마나베가 역시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나타난 지구 온난화를 계산,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100년 후의 지구를 평균 온도가 3~4℃ 상승하는 위험한 기후로 예측했다. 불과 몇 십 년만에 지구 기후의 예측 시점이 3,000년 후에서 100년 후로 대폭 줄어들고, 그 결과 또한 정반대가 되었다.
이 두 과학자가 예측한 지구 온난화 현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WMO(세계기상기구)가 지난 1,000년간의 지구 기온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서기 1000년부터 800년 넘게 조금씩 하강하던 기온이 서기 1900년 무렵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이다. 또한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보는 과학자들의 견해와도 일치하는 셈이다.
현재는 간빙기의 최정점 지난 상태
그러면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지난 800년 동안 기온이 점차 하강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지구의 빙하기와 간빙기는 수만년의 주기로 반복되어 왔다. 최근의 가장 추웠던 시기는 약 2만 2천년 전에 있었으며, 약 6천~4천년 전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였다. 즉, 약 2만 2천년 전에 빙하기가 있었고, 지금으로부터 약 6천~4천년 전을 간빙기의 최정점으로 본다.
따라서 지금은 간빙기의 최정점을 지나 서서히 빙하기로 향해가는 시점이다. 그러나 빙하기가 곧 인류의 멸망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4만년 전에 출현한 현생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그들에게 바로 닥친 최근의 빙하기를 겪어냈다. 때문에 그들보다 훨씬 발달한 문명을 지닌 현대인도 빙하기를 겪어낼 능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현재 지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온난화 현상이다. 이산화탄소의 분자는 대기 중 평균 체류 기간이 무려 150년이나 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화석 연료의 사용이 줄어든다고 가정해도, 이산화탄소로 인한 지구 온난화는 앞으로 최소 100년 이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 이산화탄소의 누적 증가율을 연 1%로 잡으면 70년 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2배가 된다. 그러면 지구 지표 기온은 약 1.5℃ 증가하고 해면 온도는 약 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평균 강수량도 약 3~4% 증가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럼 혹자는 그때가 되면 ‘투모로우’라는 영화처럼 정말 이상 기후 변화로 빙하기가 닥칠까 궁금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염려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연적으로 나타났던 빙하기는 수만년에 걸친 환경변화였기 때문에 단기간에 걸친 갑작스런 재앙으로 나타난 적이 없었다. 또 다른 천체와의 충돌에 의한 기후 변화라면 현대 천문학의 수준으로 볼 때 적어도 수십 년 정도는 미리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대규모의 핵전쟁으로 인한 핵겨울이 출현하지 않는 한 영화에서와 같은 갑작스런 기후 이상으로 인한 재앙은 일단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현대 과학으로도 기후 변화에 대한 이해와 예측은 아직 다 풀리지 않은 미완의 과제이다. 과거에 나타났던 많은 기후 변화들도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는 대부분이 아직 미스터리에 속한다.
현재 거의 완벽하게 이해되고 있는 기후 현상은 일 변동, 날씨 변동, 연 변동이고, 엘니뇨의 이해가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는 정도이다. 엘니뇨를 제외하면 기후의 구성과 변동에서 대기와 해양이 어떤 양식으로 서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이런 과학적 현실이 어쩌면 충격적인 영화의 상상력에서 우리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
기상청 장기예보기술 자문위원장
서울대 기후환경시스템연구센터 자문위원
@box1@
정리=이성규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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