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이라고 하면 몹시 추운 곳으로만 안다. 그러나 남극은 여러 가지 신기한 자연 현상이 존재하는 인류에게는 아주 소중한 곳이다. 도대체 남극이란 어떤 곳일까?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서 남극 세종기지 월동대장으로 활동한 장순근 박사가 진명여고 대강당에서 남극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소개한다.
알루미늄 캔도 부스러지는 영하의 추위
남극은 바다로만 되어 있는 북극과는 달리 거대한 대륙이다. 그 넓이는 빙붕을 포함해 약 1,360만㎢로서, 한반도의 60배가 넘으며 지구 육지 면적의 9.2%에 해당한다. 빙붕이란 1년 내내 얼음으로 덮인 대륙붕을 말하는데, 얼음의 두께가 300m에서 900m 정도이다.
남극 대륙은 해안과 남극 종단 산맥 같이 높은 곳을 제외한 98%가 평균 2,160m의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다. 그 얼음이 모두 녹는다면 전 세계의 해수면이 60m 이상 높아진다.
하지만 이처럼 가혹한 자연 환경을 지닌 남극에도 활화산과 온천이 있고 석유와 금속 같은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공룡 화석이 나온다. 단지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을 뿐이지 남극 대륙도 다른 대륙과 같은 땅이라고 생각하면 신기한 일도 아니다.
남극은 연평균 기온이 영하 23℃로 지상에서 기온이 가장 낮은 곳이다. 그 가운데서도 남극 대륙의 안쪽 고원지대에 위치한 러시아 보스토크 기지가 가장 추운데, 1983년 7월 21일 측정된 영하 89.6℃는 이제까지 지상에서 측정된 가장 낮은 기온이다.
그 기지의 높이는 3,480m로 백두산보다 더 높고, 평균 온도가 영하 55.4℃로 물이 없다. 수분으로 존재하는 것은 모두 얼음이나 눈뿐이기 때문이다. 기온이 영하 60℃ 아래로 떨어지면 사람이 만든 인공섬유는 모두 견디지 못하고 부스러진다. 단지 솜이나 양털, 낙타털, 늑대가죽, 곰가죽 같은 자연섬유만이 견딘다. 고무, 플라스틱이나 유리 같은 것도 견디지 못하며, 알루미늄 캔도 작은 충격에 쉽게 부스러질 정도이다.
남극에는 나무가 없고 꽃이 피는 풀도 남극잔디를 포함해 두 종류뿐이다. 한여름에 확대경으로 봐야 겨우 보일 정도의 작은 꽃을 피운다. 그러나 눈 위에는 붉은 빛깔의 눈조류가 서식하고, 바다가 얼 때에는 얼음 아리에 연갈색의 얼음조류가 발달한다.
남극에 있는 대부분의 식물이 이와 같은 지의류인데, 생장 속도가 아주 느려 100년에 1㎝ 정도 큰다고 한다. 때문에 남극에 있는 어떤 지의류는 수천 년을 성장했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지의류가 연갈색으로서 한 여름에는 기지 주변이 연갈색 카펫을 깔아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남극대륙에 제2기지 건설해야
남극에 사는 동물로는 물개류와 새가 있다. 물개류에는 해표와 남극 물개가 있는데, 머리가 크고 마치 중생대 공룡처럼 생긴 표범 해표가 펭귄이나 작은 해표를 먹고 살며 사람도 공격한다. 코끼리 해표는 기름 때문에 한때 많이 도살당했는데, 몸무게 3톤이 넘는 코끼리 해표 한 마리에서 세 드럼 반(약 700리터)의 기름이 나온다고 한다.
남극을 상징하는 새로 알려진 펭귄은 남극뿐만 아니라 적도 부근에도 서식한다. 남극과 아남극에는 키가 120㎝에 몸무게 40㎏ 정도 나가는 황제펭귄을 포함해 7종이 서식한다. 황제펭귄을 제외한 아델리, 젠투, 마카로니, 췬스트랩 등의 펭귄이 봄에 남극으로 와서 알을 부화하고 새끼를 키운다.
세종기지 부근에는 까만 머리에 주황색 부리가 선명한 남극제비갈매기와 남극에 사는 새 중 유일하게 물갈퀴가 없는 남극비둘기가 있다. 이들이 알을 부화해 새끼를 키우는 모습을 보면 남극에도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어 놀랍고 신비롭다. 또 펭귄 같은 다른 새의 알과 새끼를 노리는 남극의 매가 있는 걸 볼 때 먹고 먹히는 생존 경쟁이 남극도 예외가 아니다.
남극 대륙에 사람이 처음 상륙한 1895년부터 1922년에 이르는 남극 탐험시대에는 나무로 만든 고래잡이 배에 해도 한 장, 무전기 한 대 없이 오직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겠다는 숭고한 사명감과 불같은 용기만으로 남극을 탐험했다. 그러므로 탐험선이 얼음에 갇혀 침몰해 펭귄이나 해표 고기로 연명하는 생존 상황이 자주 일어났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는데, 그만큼 남극이 알려지고 탐험 장비와 운송 수단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88년 2월 17일 서남극 킹조지 섬에 세종기지를 준공해 남극의 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킹조지 섬은 남극의 변두리에 있는 자연 환경이 그리 가혹하지 않은 섬이다. 때문에 세종기지에서는 남극의 자연 환경을 밝히는 지질과학과 해양생물과학, 대기과학 위주의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도 남극대륙으로 올라가 남극 본연의 연구를 해야 한다. 남극 대륙에 제 2기지를 지어 대륙의 98%를 두꺼운 얼음으로 덮고 있는 빙상과 빙상 아래의 지질, 지형을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남극에 대한 더 많은 연구 재료와 더 나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장순근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정리: 이성규 사이언스타임즈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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