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사바나의 거대한 초식동물들은 생태계의 설계자와 같다. 코끼리와 코뿔소처럼 몸무게가 수 톤에 달하는 동물들은 숲과 초원을 오가며 나무를 쓰러뜨리고 길을 내며, 양분을 먼 곳까지 옮겨 다른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하지만 인간의 농경지와 도시가 확장되고, 불법 사냥과 기후 변화로 먹이가 줄어들면서 거대한 초식동물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큰 동물 한 종이 사라지면 그 동물에 의존하던 다른 생물들도 함께 위험해진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공동 멸종(coextinction)이라고 부르는데, 건물의 기둥 하나를 뽑으면 그 기둥에 기대고 있던 여러 층의 구조물이 함께 흔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개체 수는 많지 않아도 생태계의 균형과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핵심종(keystone species)이 사라지면, 숨어 있던 연쇄 반응이 시작되어 생물다양성뿐 아니라 양분 순환과 서식지 유지처럼 생태계가 제공하던 중요한 기능까지 무너질 수 있다.
사바나 생태계에서 연결되어 있는 코끼리와 쇠똥구리
지난 5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는 아프리카코끼리가 생태계에서 왜 중요한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프링글 박사 연구팀은 동아프리카 초원의 작지만 중요한 주인공인 쇠똥구리와 코끼리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관찰하였다. 쇠똥구리는 이름처럼 다른 동물이 남긴 배설물을 굴리거나 땅에 묻으며 살아간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이 활동은 똥을 빠르게 땅속으로 옮겨 토양의 양분 순환을 돕고, 배설물에 섞여 나온 식물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파리와 같은 해충의 번식을 줄여 가축과 사람에게 질병이 퍼질 위험도 낮춘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쇠똥구리는 사바나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하는 숨은 일꾼인 셈이다.
연구팀은 코끼리 같은 거대한 동물이 줄어들면 쇠똥구리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지 확인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초원 위에 일종의 ‘똥 뷔페’를 차렸다. 연구자들은 코끼리, 기린, 버펄로, 소 등 아프리카 초원을 대표하는 포유류 여덟 종의 배설물과 채식하는 사람의 배설물을 일정량씩 놓아두고, 그곳을 찾아오는 쇠똥구리의 종류와 수를 기록했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쇠똥구리는 여러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하는 잡식성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중에서도 코끼리 똥을 압도적으로 선호하였다. 코끼리 똥은 다른 동물의 배설물보다 1.5배에서 24배 더 많은 쇠똥구리를 불러 모았고, 2배에서 6배 더 많은 종을 끌어들였다. 전체 쇠똥구리 개체의 44%가 코끼리 똥에서 발견되었으며, 조사된 쇠똥구리 종의 67%가 코끼리 똥과 연결되어 있었다.
쇠똥구리가 코끼리 똥에 특히 많이 모여드는 이유는 코끼리 배설물이 양과 질 모두에서 독특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몸집이 큰 쇠똥구리는 번식과 먹이 활동을 위해 많은 양의 배설물이 필요한데, 코끼리는 한 번에 매우 많은 똥을 남긴다. 또 코끼리 똥은 섬유질이 풍부하고 수분을 오래 머금어, 쇠똥구리들이 비교적 오랫동안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이는 경쟁에서 밀리기 쉬운 작은 종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한다.
쇠똥구리의 인기 메뉴는 코끼리 똥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거대한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 네트워크에서 각 동물이 사라질 때 쇠똥구리 공동체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코끼리가 먼저 사라지는 경우, 쇠똥구리의 공동 멸종은 다른 동물이 무작위로 사라질 때보다 2~8배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몸집이 큰 포유류부터 차례로 사라지는 시나리오에서는 무작위 시나리오보다 25~50% 더 많은 공동 멸종이 발생했다. 반면 코끼리가 아닌 다른 초식동물들은 먹이망 안에서 연결된 쇠똥구리 종이 상대적으로 적어, 코끼리만큼 큰 연쇄 멸종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컴퓨터 속 모의실험만으로는 실제 자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2008년부터 케냐 사바나에 약 1만m2(축구장 1.5개 크기)의 대형 울타리 실험 구역을 설치하였다. 일부 구역에서는 코끼리와 기린만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다른 구역에서는 5kg 이상 초식동물을 모두 막았으며, 비교를 위해 어떤 동물도 막지 않은 구역도 함께 운영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조건을 15년 동안 유지한 뒤, 2023년에 각 구역의 쇠똥구리 군집을 조사했다.
결과는 컴퓨터 모델의 예측과 높은 수준으로 일치했다. 코끼리와 기린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은 구역에서는 쇠똥구리 개체 수가 67% 감소했고, 총 생물량은 51%, 종 다양성은 23% 줄었다. 물론 이 구역은 코끼리와 기린을 함께 제외한 조건이었지만 앞선 실험에서 기린 배설물은 쇠똥구리를 거의 끌어들이지 못해서, 연구진은 관찰된 변화의 대부분이 코끼리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작은 초식동물들까지 모두 차단한 구역에서도 결과는 거의 비슷했는데, 이는 코끼리의 부재가 쇠똥구리 군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결국 코끼리는 단순히 큰 동물이 아니라, 사바나에서 수많은 쇠똥구리의 생존과 다양성을 떠받치는 핵심종이라고 할 수 있다.
코끼리가 사라지자 쇠똥구리도 감소
이번 연구의 의의는 이론과 현장 실험을 결합해 코끼리가 사바나 생태계의 진정한 핵심종이라는 오랜 가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는 데 있다. 연구팀은 컴퓨터 모델에만 머무르지 않고, 15년 동안 이어진 대형 울타리 실험을 통해 예측 결과가 실제 자연에서도 나타나는지 검증했다. 또한 네트워크 분석을 활용해 특정 동물이 사라졌을 때 쇠똥구리 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정량화하고, 어떤 쇠똥구리 종이 더 큰 위험에 놓이는지도 찾아냈다. 거대한 코끼리의 발자국 아래 손톱만 한 쇠똥구리의 삶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자연의 연결망이 얼마나 촘촘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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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6-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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