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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80년 만의 귀환이다 갈라파고스에 되살아난 거대 거북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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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년 만의 귀환: 갈라파고스에 되살아난 거대 거북의 발자국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군도 중 하나인 갈라파고스 제도는 찰스 다윈에게 진화론의 영감을 준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섬들은 19세기부터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서 빠르게 훼손되어 갔다. 선원들은 장기 항해 중 식량으로 삼기 위해 거대 거북을 수천 마리씩 배에 실어 갔고, 외래 종이 유입되면서 섬의 생태계는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그 결과 플로레아나(Floreana) 섬에서는 1840년대에 이 섬 고유의 거대 거북 아종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 결과 플로레아나(Floreana) 섬에서는 1840년대에 이 섬 고유의 거대 거북 아종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Getty Images
그 결과 플로레아나(Floreana) 섬에서는 1840년대에 이 섬 고유의 거대 거북 아종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Getty Images

그리고 18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25년, 158마리의 거대 거북이 마침내 플로레아나 섬 땅을 다시 밟았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관리국이 주도하는 '플로레아나 생태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이번 방류는, 과학자와 보전 단체, 그리고 지역 사회가 20년 넘게 공들여온 협력의 결실이다. 갈라파고스 보전 신탁(GCT: Galápagos Conservation Trust)은 이를 "거대한 이정표"라고 불렀고, 세계 각지의 보전 생물학자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성공 사례를 넘어, 멸종 직전 종 복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혔다고 평가한다.

 

어떻게 사라졌는가: 선원들이 지운 아종

플로레아나 섬의 거대 거북 (학명 Chelonoidis niger niger; 혹은 갈라파고스땅거북이라고도 불림)는 19세기 포경선과 탐험선 선원들의 손에 멸종되었다. 거대 거북이는 물과 먹이 없이도 수개월을 생존할 수 있어, 장기 항해 중 살아있는 신선 식량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존재였다.

하지만 냉장 기술이 없던 시대에 거대 거북은 그 자체가 '걸어 다니는 통조림'이었다고 한다. 수천 마리가 배 안에 뒤집혀 실린 채 대양을 건넜고, 필요할 때마다 도축됐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갈라파고스 전역에서 19세기 동안 약 10만 마리 이상의 거대 거북이 포획된 것으로 역사 기록은 전한다. 플로레아나는 특히 일찍부터 선박의 기항지로 이용됐기 때문에 피해가 극심했다. 1840년대에 이르러 플로레아나의 고유 아종은 사실상 씨가 마르고 말았다.

이 아종의 유전자는, 아무도 몰랐던 방식으로, 먼 섬의 후손들 안에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Getty Images
이 아종의 유전자는, 아무도 몰랐던 방식으로, 먼 섬의 후손들 안에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Getty Images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아종의 유전자는, 아무도 몰랐던 방식으로, 먼 섬의 후손들 안에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열어낸 실마리: 유전자에 남은 기억

이 복원 프로젝트의 과학적 출발점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자들이 이사벨라(Isabela) 섬의 볼프 화산(Wolf Volcano) 인근에서 서식하던 거북들을 유전자 분석한 결과, 일부 개체가 플로레아나 고유 아종인 C. niger niger의 유전적 계보를 보유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19세기 선원들이 항해 도중 배에서 거북을 버리거나, 무역 과정에서 개체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교잡의 흔적이었다. 즉, 멸종한 줄 알았던 아종의 유전 물질이 혼혈 후손의 몸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복원 프로젝트의 과학적 출발점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Getty Images
이 복원 프로젝트의 과학적 출발점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Getty Images

연구팀은 플로레아나 아종과 가장 가까운 유전적 연결고리를 지닌 혼혈 거북 23마리를 선별해, 2017년부터 산타크루스(Santa Cruz) 섬의 사육 시설에서 '역교배(back-breeding)'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역교배란 현존하는 혼혈 개체들을 체계적으로 교배시켜 원래 아종에 가까운 유전형을 세대를 거듭하며 복원하는 기법이다. 이는 완전한 원종의 부활이 아니라 원종에 최대한 근접한 유전적 대리물(genetic proxy)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2025년까지 600마리 이상의 부화 개체가 생산되었고, 이 중 야생 생존이 가능한 크기로 성장한 158마리가 이번에 플로레아나로 방류되었다.

 

거대 거북이 돌아온 이유: '생태계 엔지니어'의 귀환

158마리의 방류가 단순한 상징적 제스처가 아닌 이유는, 거대 거북이 갈라파고스 생태계에서 수행하는 역할의 크기 때문이다. GCT는 거대 거북을 '생태계 엔지니어(ecosystem engineer)'로 규정했다. 거대 거북은 이동하면서 씨앗을 소화관을 거쳐 먼 거리로 운반·산포하며, 이는 식물의 분포와 식생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거북이 지나는 길은 자연스럽게 초지 통로가 형성되고, 이는 다른 동물들의 이동과 서식을 돕는다. 거북의 배설물은 토양 영양분을 순환시키고, 큰 몸집으로 식물을 누르거나 먹으면서 특정 식물종의 과점을 억제해 식생 다양성을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즉, 거대 거북의 존재 자체가 섬 전체의 경관을 형성하고 생태계의 복잡성을 유지하는 핵심 동력인 셈이다. 이러한 종을 생태학에서는 핵심종(keystone species) 또는 생태계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플로레아나에서 이들이 사라진 180년 동안, 섬의 생태계는 이 '설계자' 없이 서서히 단순화되고 훼손됐다. 158마리의 귀환은 그 공백을 조금씩 메우는 첫걸음이다.

 

이정표의 의미: 과학, 지역사회, 그리고 전 세계 섬들에 주는 희망

GCT 최고경영자 젠 존스 박사는 이번 방류의 순간을 "정말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이라고 표현하며, 과학자, 자선단체, 지역 주민이 20년 이상 협력해온 결과물이 눈앞에 현실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한다. GCT는 성명에서 "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은 플로레아나의 미래뿐 아니라 전 세계 섬들의 미래 복원에 희망을 준다"고 밝혔다. 이 언급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18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25년, 158마리의 거대 거북이 마침내 플로레아나 섬 땅을 다시 밟았다. ©Getty Images
그리고 18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25년, 158마리의 거대 거북이 마침내 플로레아나 섬 땅을 다시 밟았다. ©Getty Images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지구상 멸종 사례의 약 80%는 섬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외래종 유입, 서식지 훼손, 과도한 포획이 맞물리면서 섬 생태계는 특히 취약했다. 갈라파고스의 플로레아나 사례는 유전 기술, 장기 사육 번식, 그리고 생태 복원 공학이 결합될 때 한때 불가능해 보이던 복원이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 세계적으로 드문 성공 모델이다.

물론 158마리의 방류는 시작일 뿐이다. 방류된 어린 거북이 성체로 자라 번식을 시작하려면 최소 20~3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거대 거북은 성 성숙에만 20년 이상이 걸리는 극단적으로 느린 생활사를 가진 동물이기 때문이다.

지금 방류된 158마리의 후손이 플로레아나의 경관을 바꾸기 시작하는 것은 이 세기의 중반이 지나서야 가시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0년의 침묵을 깨고 다시 섬 땅을 밟은 거북의 발자국은, 인류가 과거에 저지른 파괴를 과학과 인내로 조금씩 되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6-03-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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