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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만 마리의 사슴, 영국이 선택한 해법 영국의 숲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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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만 마리의 사슴, 그리고 영국이 선택한 해법

영국의 숲이 사라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도끼와 톱 때문이 아니라, 사슴 때문이다. 영국에는 현재 약 200만 마리 이상의 사슴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 약 45만 마리에서 반세기 만에 네 배 이상 불어난 수치이며, 이는 지난 1,000년 사이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낳는 결과는 조용하지만 매우 심각하다.

농경지의 피해도 크다. 당근밭을 뒤지고 감자를 땅에서 파내는 사슴 떼로 인해 일부 농장은 연간 수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Getty Images
농경지의 피해도 크다. 당근밭을 뒤지고 감자를 땅에서 파내는 사슴 떼로 인해 일부 농장은 연간 수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Getty Images

영국 전체 삼림의 3분의 1이 사슴의 과도한 답압(trampling: 사람, 가축, 기계 등에 의해 잔디밭 지면이 눌리는 압력으로, 토양 공극 감소와 고결화를 유발하여 뿌리 생육 저하 및 잔디 밀도 감소를 일으킴)과 식엽(Leaf Feeding: 해충 등이 잎을 갉아 먹는 현상으로, 광합성 능력 저하와 물리적 스트레스를 초래함)으로 인해 '불량 상태'로 분류됐으며, 이 비율은 2000년대 초 24%에서 현재 33%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농경지의 피해도 크다. 당근밭을 뒤지고 감자를 땅에서 파내는 사슴 떼로 인해 일부 농장은 연간 수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매년 7만 4,000건 이상의 차량 충돌 사고에도 사슴이 연루되며, 이로 인해 연간 10~20명이 목숨을 잃고 700명 이상이 부상을 입는다. 이에 영국 정부는 10년 단위 국가 사슴 관리 전략을 공개하며, 사슴 개체 수 조절을 위한 대규모 정책 전환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 전략의 핵심인 '개체 살처분(culling)'을 둘러싸고 생태학적 필요성과 동물 복지 사이의 논쟁은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왜 지금 사슴이 문제인가

영국에는 여섯 종의 사슴이 서식한다. 붉은사슴(red deer), 시카사슴(sika), 다마사슴(fallow), 노루(roe), 문착(muntjac), 그리고 중국 수사슴(Chinese water deer)이다. 이 중 붉은사슴과 노루만이 영국 고유 토착종으로, 나머지 종들은 과거 공원 전시나 수입 등을 통해 도입된 뒤 야생화한 경우다. 특히 문착(muntjac)은 원래 중국과 동남아시아 원산으로, 영국 생태계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외래 도입종이다. 개체 수가 이처럼 급격히 늘어난 데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천적의 부재가 가장 근본적이다. ©Getty Images
천적의 부재가 가장 근본적이다. ©Getty Images

천적의 부재가 가장 근본적이다. 영국에서는 늑대와 스라소니 등 사슴의 자연 포식자가 이미 수백 년 전에 멸종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온화한 겨울은 먹이 부족으로 인한 자연 감소를 억제했고, 코로나19 봉쇄 기간 수렵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것도 개체 수 증가를 가속화했다. 서퍽(Suffolk)의 엘브던(Elveden) 농장을 운영하는 앤드류 블렌키런은 "코로나 봉쇄 이후 사슴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지금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문착 사슴을 관리하는 것은 거의 토끼와 싸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장의 사슴으로 인한 연간 피해 규모가 최대 10만 파운드(한화 약 1억 7,000만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10년 전략: 야간 사격부터 내수 시장 육성까지

영국 정부가 공개한 10년 계획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가 우선 살처분 지역(national priority culling areas)'을 지정해 사슴 피해가 집중된 구역에 자원과 인력을 집중 투입한다. 둘째, 현재까지 엄격하게 제한된 야간 사격과 '금렵 기간(closed season)' 내 사격에 대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한다. 야간 사격은 열화상 조준경 등 특수 장비를 필요로 하며, 현재는 면허 취득과 허가 절차가 복잡해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 셋째, 농민에게 작물 보호를 위한 새로운 법적 사격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자연부 장관 메리 크리아는 "삼림이 번성하고 작물이 더 잘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주와 농민이 사슴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헌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Getty Images
자연부 장관 메리 크리아는 "삼림이 번성하고 작물이 더 잘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주와 농민이 사슴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헌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Getty Images

자연부 장관 메리 크리아는 "삼림이 번성하고 작물이 더 잘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주와 농민이 사슴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헌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살처분된 사슴에서 나오는 고기, 즉 베니슨(venison)의 국내 소비 시장을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포함했다. 학교, 교도소, 병원 급식에 베니슨을 적극 도입하겠다는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정부의 계획에 정면으로 맞서는 목소리도 있다. ©Getty Images
정부의 계획에 정면으로 맞서는 목소리도 있다. ©Getty Images

이미 '컨트리 푸드 트러스트(Country Food Trust)'라는 식품 빈곤 자선단체는 전국 1,500개의 식품 은행, 노숙인 쉼터, 지역 공동 식당에 농장과 사유지에서 포획된 사슴 고기를 공급하고 있다. 단체의 최고경영자 SJ 헌트는 베니슨이 콜레스테롤이 낮고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고영양 식품임을 강조하며, 살처분 사슴 개체를 식품 자원으로 전환하는 사업에 대한 추가 재정 지원을 촉구했다.

 

"살처분은 해결책이 아니다" — 동물권 단체의 반론

정부의 계획에 정면으로 맞서는 목소리도 있다. 동물권 단체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의 대변인은 살처분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야생 사슴을 제거한다고 해서 개체 수 반등이 멈추지 않는다. 개체 수가 일시적으로 줄어들면 개체당 가용 식량이 늘어나 생존한 사슴들의 번식률이 오히려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밀도 의존적 조절(density-dependent regulation)이라는 생태학적 원리로도 설명된다. 개체군 생태학에서는 먹이 자원 등 환경 저항이 개체 수에 반비례해 작용하기 때문에, 단순한 숫자 감소만으로는 장기적인 개체 수 억제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PETA는 대안으로 서식지 조건 변경, 적절한 울타리 설치, 인공 먹이 공급원 차단 등의 방법을 제안한다.

PETA는 대안으로 서식지 조건 변경, 적절한 울타리 설치, 인공 먹이 공급원 차단 등의 방법을 제안한다. ©Getty Images
PETA는 대안으로 서식지 조건 변경, 적절한 울타리 설치, 인공 먹이 공급원 차단 등의 방법을 제안한다. ©Getty Images

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접근이 현실적으로 광대한 농경지와 삼림 전체에 적용하기 어렵고, 비용 면에서도 장기적인 수렵 관리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한다. 영국사격및보전협회(British Association for Shooting and Conservation)의 사슴 및 삼림 관리 책임자 마틴 에드워즈는 정부 계획을 환영하며, "자원봉사자와 전문 사슴 관리자들이 쌓아온 성과를 바탕으로 영국의 팽창하는 사슴 개체 수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인 기회"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생태계 복원과 식탁 위의 해법 사이에서

사슴 문제는 단순히 농업 피해나 교통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수백 년에 걸쳐 영국 생태계의 균형을 어떻게 바꿔왔는가라는 더 큰 질문이 놓여 있다. 천적의 부재, 외래종 도입, 그리고 현대적 토지 이용 방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늘의 과잉 개체 수를 만들어냈다. 일부 생태학자들은 장기적으로 늑대나 스라소니 같은 포식자를 재도입하는 '재야생화(rewilding)' 접근법이 보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 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장의 현실에서 영국 정부는 보다 실용적인 경로를 선택했다. ©Getty Images
당장의 현실에서 영국 정부는 보다 실용적인 경로를 선택했다. ©Getty Images

그러나 이는 현재 영국 정부 전략의 범위 밖에 있는 논의로 분석된다. 당장의 현실에서 영국 정부는 보다 실용적인 경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집중된 구역에서의 통제된 포획, 그 결과물을 낭비 없이 식탁으로 연결하는 유통 구조, 그리고 이를 식품 빈곤 문제와 연결하는 사회적 접근이 그것이다. 블렌키런 농장에서 포획된 사슴 고기가 인근 초등학교 급식으로 공급되는 사례는, 문제를 자원으로 바꾸는 이 전략의 작동 방식을 잘 보여준다.

완벽한 해답은 없다. 살처분 반대론자들의 우려도, 생태 파괴 앞 현실론자들의 요구도 모두 정당한 근거를 갖는다. 영국의 10년 계획이 실질적인 삼림 회복과 농업 피해 감소로 이어질지, 아니면 사슴 개체 수 반등이라는 생태학적 역설에 부딪힐지, 그 결과는 앞으로의 10년이 말해줄 것이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6-03-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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