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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김민재 리포터
2025-12-16

화산 폭발이 촉발했던 흑사병? 기후·무역·전염병의 치명적 연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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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5년의 기후 재앙

최근 14세기 유럽을 초토화한 흑사병의 시작에 대한 놀라운 연구가 발표되었다. 2025년 12월 4일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게재된 연구 논문에 따르면 1345년경 화산 폭발이 기후를 냉각시켜 지중해의 농작물을 파괴했고, 기근을 피하려던 이탈리아 도시들이 흑해 곡물 수입과 함께 페스트균도 들여왔다고 한다. 독일 라이프니츠 동유럽역사문화연구소의 마틴 바우흐 박사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울프 뷘트겐 교수는 나무 나이테, 극지 얼음 코어, 역사 기록을 종합해 기후 재앙이 최악의 팬데믹으로 이어진 과정을 추적했다.

먼저 연구팀은 유럽 8개 지역 나무 나이테를 분석했는데, 스페인 피레네 산맥의 나무들은 1345~1346년 여름 성장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나이테의 청색 얼룩은 한랭기 증거가 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흑사병이 1347년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직전, 유럽은 거의 한 세기 만에 가장 심각한 한랭기를 겪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연구팀에 따르면 1345~1349년 햇빛 감소, 구름 증가, 어두운 월식이 보고되었고, 여름은 추웠으며 가을은 습했다고 한다. © Getty Images
연구팀에 따르면 1345~1349년 햇빛 감소, 구름 증가, 어두운 월식이 보고되었고, 여름은 추웠으며 가을은 습했다고 한다. © Getty Images

그린란드와 남극 얼음 코어에서 1345년 지난 2000년 중 18번째로 강한 황 신호가 검출되었다. 성층권 주입량은 1991년 피나투보 화산을 초과했다. 양극 모두에서 거의 동일한 양이 발견되어 열대 화산 폭발이 확실하다. 1345~1349년 햇빛 감소, 구름 증가, 어두운 월식이 보고되었고, 여름은 추웠으며 가을은 습했다고 한다. 

 

곡물 선박에 숨어든 죽음

기후 냉각은 이어서 지중해 전역에서 농작물 실패를 초래했다. 1345~1347년 스페인, 남부 프랑스, 이탈리아, 동부 지중해에서 심각한 기근이 보고되었는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곡물 저장 시스템과 무역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었으나 기근이 깊어지면서 선택지는 점점 사라져갔다.

흑사병은 여전히 마다가스카르, 콩고민주공화국, 페루등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 Getty Images
흑사병은 여전히 마다가스카르, 콩고민주공화국, 페루 등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 Getty Images

1347년 그들은 식량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를 흑해에서 수입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에 이탈리아 도시들은 몽골 골든 호드와의 무역을 재개했지만 곡물과 함께 선박은 치명적인 페스트균(Yersinia pestis, 포자가 없는 그람 음성, 비이동성, 그리고 막대 모양의 구간균)도 운반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쥐벼룩에 감염된 페스트균은 쥐를 찾고, 감염된 쥐가 죽으면 벼룩은 인간을 문다. 이 때문에 곡물 선박 도착 후 몇 주 만에 베니스에서 첫 페스트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는 수입 곡물에 의존하는 베니스와 제노아에 먼저 도착하고, 자체 식량을 재배하는 로마와 밀라노에는 나중에 나타난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유럽을 휩쓴 검은 죽음

흑사병은 1347년부터 1351년 정도까지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를 휩쓸며 무려 최대 60%의 목숨을 앗아갔다. 가장 흔한 선페스트는 벼룩에 물려 발생하며 림프절이 부어오르는 '부보' 증상을 보인다. 치료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30~60%에 달한다. 폐페스트는 사람 간 전파가 빠르고 거의 항상 치명적이었다. 이처럼 흑사병은 말그대로 사회를 뒤흔들었다. 노동력 부족으로 농업과 경제가 중단되었고 사회 질서가 붕괴되었다. 예술은 죽음과 사후 세계에 집착하게 되었다.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급증했다.

참고로 페스트는 현대 항생제로 조기 치료 시 완치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마다가스카르, 콩고민주공화국, 페루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2010~2019년 전 세계적으로 4,547건이 발생해 786명이 사망했다.

 

텐산 산맥에서 시작된 팬데믹

반면, 2022년 Nature에 발표된 연구는 페스트의 기원을 밝힌 바 있다. 튀빙겐대학교의 마리아 스피루 박사 연구팀은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근처 14세기 묘지를 조사했는데, 1880년대 발굴된 묘비들은 1338~1339년 비정상적으로 많은 매장을 보여주었고, 일부는 사망 원인이 "역병"이라 명시되어 있었다.

비극은 바로 이 텐산 산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 Getty Images
비극은 바로 이 텐산 산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 Getty Images

7명의 치아에서 페스트 DNA를 발견해 유전체를 재구성한 결과, 이 고대 변종은 페스트 계통수에서 "유전적 다양성의 폭발" 바로 기저에 위치했다. 흑사병을 일으킨 변종들의 대량 분화 지점이다. 현대의 가장 가까운 변종은 텐산 지역 마멋이 보유하고 있어 현지 발생으로 보인다.

스피루 박사팀은 흑사병의 원천 변종을 찾았고 정확한 날짜를 찾았다. 바로 1338년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중요한 경유지였고, 페스트는 인간과 함께 이동하는 벼룩을 통해 유럽으로 운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역병은 대한민국 역사에서도 낯선 존재가 아니다. 삼국시대부터 역병 기록이 존재하며, 조선시대에는 천연두, 홍역, 콜레라 등이 유행했다. 1612년부터 1613년 온역으로 함경도에서만 2,900여 명이 사망했고, 조정은 허준에게 <신찬벽온방>(1613)을 편찬하게 했다. 1786년 정조는 홍역 유행 시 환자 집계, 의사의 가정 방문, 처방 전국 보급 등 체계적 대응을 명했다. 1919~1920년 콜레라로 2만 명 이상, 1918년~1921년 스페인 독감으로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이가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들을 통해서 미래 팬데믹 대비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앞선 설명처럼 환경 변화, 식량 안보, 무역, 질병 전파는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자연 재해가 전 세계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관련 연구 바로 가기

"Climate-driven changes in Mediterranean grain trade mitigated famine but introduced the Black Death to medieval Europe (지중해 곡물 무역의 기후 주도적 변화가 기근을 완화했으나 중세 유럽에 흑사병을 유입시켰다)", Bauch & Büntgen 2025

"The source of the Black Death in fourteenth-century central Eurasia (14세기 중앙 유라시아의 흑사병 원천)", Spyrou et al. 2022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12-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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