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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김현정 리포터
2025-11-19

2025 기후 행동 성적표 ‘45개 전 항목 미달’… 1.5°C 목표 사실상 경보음 파리협정 10년, 석탄·산림·금융 모두 목표 실종… 열사망·식량 불안은 사상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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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가 합의한 파리협정 1.5°C 목표가 사실상 ‘경보 구간’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자원연구소(WRI)가 10월 22일 발표한 ‘기후행동 현황 2025’(State of Climate Action 2025 보고서 따르면 지구 온난화를 1.5°C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설정한 45개 기후행동 지표 가운데 2030년 목표 달성 궤도에 진입한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 공동 저자인 클레아 슈머는 "모든 시스템이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10년간의 지연으로 1.5°C 경로는 위험할 정도로 좁아졌다"며 "이제 꾸준한 진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속도를 높이지 못하는 매년, 격차는 더 벌어지고 오르막은 더 가파라진다"는 그의 말은 현재 상황의 긴박함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평가는 전력, 건물, 산업, 운송, 산림·토지, 식량·농업 등 주요 배출 부문은 물론 탄소 제거 기술과 기후 금융까지 망라했다. 그 결과 45개 지표 중 6개가 '궤도 이탈(off track)' 판정을 받았고, 29개는 '심각한 궤도 이탈(well off track)'로 분류됐다. 더 심각한 것은 5개 지표가 아예 목표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나머지 5개는 데이터가 충분치 않아 평가 자체가 불가능했다.

석탄 감축부터 산림 보전, 기후 금융까지 45개 지표가 모두 목표에 미달한 ‘결정적 5년’의 경고를 담은 2025년 기후행동 성적표가 발표됐다. ⒸGettyImagesBank
석탄 감축부터 산림 보전, 기후 금융까지 45개 지표가 모두 목표에 미달한 ‘결정적 5년’의 경고를 담은 2025년 기후행동 성적표가 발표됐다. ⒸGettyImagesBank


수치로 보는 ‘속도전’의 긴급성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얼마나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석탄 발전 퇴출이 대표적이다. 현재 속도보다 10배 이상 빨라져야 하는데, 이는 매년 평균 360개의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동시에 건설 계획 중인 모든 프로젝트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전력 부문 최대 배출원인 석탄 발전의 감축은 여전히 더디고,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진행 중이다.

산림 보호도 마찬가지로 시급하다. 2024년 기준으로 매분 축구장 22개 면적의 산림이 영구적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현재 이 속도를 9배 빠르게 줄여야 한다. 산림 전환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10% 이상을 차지할 뿐 아니라 생물다양성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대중교통 확충 역시 가속화가 필요하다. 경전철, 지하철, 버스 전용차로 건설을 5배 빠르게 진행해 연간 최소 1,400km의 대중교통망을 구축해야 한다. 육류 소비도 변화의 대상이다. 남북 아메리카, 호주, 뉴질랜드 같은 고소비 지역에서 소·양·염소 고기 소비를 5배 빠르게 줄여 주당 2회분 이하로 낮춰야 한다.

기술적 해법도 현재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직접 공기 포집(DAC) 같은 탄소 제거 기술을 10배 이상 확대해야 하는데, 이는 현재 건설 중인 최대 규모 DAC 시설을 매달 9개씩 짓는 것과 같은 속도다.

무엇보다 돈이 문제다. 기후 금융은 연간 거의 1조 달러가 추가로 필요하다. 이는 2023년 공공 화석연료 금융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현재 민간 기후 금융은 1조 3,000억 달러 수준까지 증가했지만, 2030년까지 최소 3조 1,000억 달러가 필요한 상황이다. 공공 기후 금융의 동원도 여전히 '심각한 궤도 이탈' 상태로, 충분한 자금 확보 실패는 모든 부문의 기후행동을 제약하는 결정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전력·건물·산업·운송·농업 등 주요 부문에서 과거 변화율(주황색)이 2030·2050년 목표 달성을 위해 요구되는 가속도(파란색)에 크게 미치지 못함을 보여준다. ⒸWRI
전력·건물·산업·운송·농업 등 주요 부문에서 과거 변화율(주황색)이 2030·2050년 목표 달성을 위해 요구되는 가속도(파란색)에 크게 미치지 못함을 보여준다. ⒸWRI


희망의 신호, 그러나 좌절의 반전도

물론 모든 것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보고서는 몇 가지 고무적인 변화도 포착했다. 민간 기후 금융이 대표적이다. 

2022년 약 8,700억 달러였던 민간 기후 금융은 2023년 1조 3,000억 달러로 급증했다. 중국과 서유럽의 개인 소비자, 기업, 기관 투자자들이 주도한 이 변화 덕분에 민간 기후 금융은 '심각한 궤도 이탈'에서 '궤도 이탈'로 한 단계 개선됐다.

태양광 발전의 성장세도 인상적이다.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전력원답게 2024년 한 해에만 프랑스 전체 전력 수요에 맞먹는 태양광 발전 용량이 전 세계적으로 추가됐다.

하지만 희망의 상징이었던 전기차마저 주춤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스럽다. 전기차 산업은 분명 성장하고 있다. 2024년 전 세계 승용차 판매의 22%를 차지해 2020년의 4.4%에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성장 속도다.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전기차 점유율 증가 속도는 2023~2024년 연평균 약 20%로 떨어졌다. 이는 그 이전 3년간 매년 60% 이상 성장하던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감속이다.

이 같은 변화는 평가에도 반영됐다. 2023년 보고서에서 유일하게 '정상 궤도(on track)' 판정을 받았던 전기차가 2025년에는 '궤도 이탈'로 강등됐다. 가장 빠르게 달리던 주자마저 속도를 잃기 시작한 것이다.

2023년 연 150만 톤 수준인 기술적 탄소 제거량을 2030년까지 연 3,000만~6,900만 톤으로 확대하려면 현재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가 요구된다. ⒸWRI
2023년 연 150만 톤 수준인 기술적 탄소 제거량을 2030년까지 연 3,000만~6,900만 톤으로 확대하려면 현재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가 요구된다. ⒸWRI


건강 위기로 번진 기후 위기

WRI 보고서가 발표되고 일주일 뒤인 10월 29일, 랜싯(The Lancet)의 '2025 건강과 기후변화 카운트다운' 보고서는 기후 불행동이 인간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건강 위협을 추적하는 20개 지표 중 12개가 역대 최악 수준을 기록했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는 열 관련 사망의 증가다. 1990년대 이후 열 관련 사망률은 23% 증가해 현재 연평균 54만 6,000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2024년에는 평균적으로 모든 사람이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경험하지 않았을 16일의 위험한 더위에 노출됐다. 특히 취약한 것은 영유아와 노인이다. 이들은 1인당 20일 이상의 폭염일을 겪었는데, 이는 지난 20년간 4배나 증가한 수치다.

식량 안보도 위협받고 있다. 2023년 가뭄과 폭염으로 인해 추가로 1억 2,400만 명이 중등도 이상의 식량 불안정에 직면했다. 기후변화가 식탁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타격도 상당하다. 열 노출로 인해 2024년 잠재적 노동시간 6,400억 시간이 손실됐고, 이로 인한 생산성 손실액은 1조 900억 달러에 달했다. 여기에 노인의 열 관련 사망으로 인한 비용만 2,610억 달러에 이른다. 기후변화는 이제 경제 생산성을 직접적으로 갉아먹고 있다.

한편 화석연료 보조금의 역설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2023년 각국 정부는 화석연료 순보조금으로 9,560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이는 기후 취약국 지원을 위해 약속된 연간 금액의 3배가 넘는다. 심지어 15개국은 화석연료 보조금에 자국 전체 보건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한 손으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화석연료에 막대한 지원을 쏟아붓는 모순적 상황이다.

WHO의 제레미 파라 차관보는 "기후 위기는 곧 건강 위기다. 기후 불행동이 지금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이 보고서는 분명히 보여준다.“고 경고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 피해가 심화되는 가운데 전 세계 의료 현장은 폭염·감염병·대기오염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공중보건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GettyImagesBank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 피해가 심화되는 가운데 전 세계 의료 현장은 폭염·감염병·대기오염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공중보건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GettyImagesBank

 

행동하는 사람들, 주저하는 정부들

흥미롭게도 기후행동의 최전선에는 정부가 아닌 다른 주체들이 서 있다. 일부 정부가 기후 공약을 후퇴시키는 동안, 도시와 지역사회, 그리고 보건 부문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수치가 있다. 보고한 도시 858곳 중 834곳이 기후 위험 평가를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다. 이들 도시는 기후변화를 추상적 위협이 아닌 구체적으로 대응해야 할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이미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더 깨끗한 공기, 더 건강한 일자리, 측정 가능한 경제 성장과 투자 유치가 그것이다. 특히 보건 부문의 리더십은 눈부시다. 2021년에서 2022년 사이 보건 관련 온실가스 배출을 16%나 줄이면서도 진료 품질은 오히려 개선했다. 환경과 건강이 양립 가능함을 몸소 증명한 셈이다.

기후행동의 건강 편익은 이미 입증되고 있다. 2010년에서 2022년 사이 석탄 유래 대기오염 감소만으로도 매년 16만 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이제 전 세계 전력의 12%를 차지하며 1,6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미래 세대도 준비되고 있다. 2024년 의대생의 3분의 2가 기후와 건강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UCL 랜싯 카운트다운의 마리나 로마넬로 국장은 해법이 이미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화석연료를 빠르게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청정 재생에너지와 효율적 에너지 사용으로 전환하는 것이 기후변화를 늦추고 생명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남아있다." 그는 또한 "더 건강하고 기후친화적인 식단으로 전환하고 더 지속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구축하면 오염과 온실가스, 산림 파괴를 대폭 줄이면서 잠재적으로 연간 1,0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파리에서 시작된 약속이 10년이 지난 지금, 시험대에 올랐다. 문제는 이제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속도전이 시작됐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11-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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