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생태계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몸속에 100조 개가 넘는 미생물이 살고 있어 소화, 면역, 심지어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처럼, 다른 생명체들도 복잡한 미생물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식물계에서는 뿌리와 균류가 만드는 지하 네트워크인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나무 내부에 어떤 미생물들이 살고 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팀이 네이처(Nature) 저널에 발표한 최신 연구는 이러한 지식의 공백을 메우는 놀라운 발견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건강한 나무 한 그루에는 무려 1조 개에 달하는 미생물이 서식하며, 이들이 나무의 각 부위에 특화된 고유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나무를 단순한 개별 생명체가 아닌 복잡하고 통합된 생태계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하는 발견이다.
나무 내부의 숨겨진 무려 1조 개의 미생물 세계
연구팀은 미국 코네티컷주의 예일-마이어스 숲에서 참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 16종 150그루의 나무에서 다중 샘플을 채취했다. 나무 내부와 주변 토양에서 DNA를 추출하여 세균, 진균,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나무 한 그루에는 평균적으로 1,000억 개에서 1조 개의 미생물 세포가 서식하고 있었다. 이는 식물 세포 20개당 미생물 1개 꼴로, 인간 몸속의 39조 개보다는 적지만 여전히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연구의 공동저자인 예일대학교의 존 게비르츠만(Jon Gewirtzman)은 이를 두고 지구상의 3조 그루 나무는 세계 최대의 바이오매스 저장고이며, 그 대부분이 우리가 연구한 적 없는 독특한 생태계를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견은 나무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꾼다고 평가받는데, 영국 셰필드대학교의 식물생물학자 케이티 필드(Katie Field)는 이 연구는 나무를 독립적인 생명체가 아닌 방대한 미생물 생명 네트워크를 포함하는 복잡하고 통합된 생태계로 재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미생물군집이 건강에 중요한 것처럼, 나무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부위별·종별로 특화된 미생물 공동체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견 중 하나는 나무 내부의 미생물들이 무작위로 분포하지 않고 각 부위에 특화된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나무의 중심부인 심재(heartwood)와 외곽의 변재(sapwood)는 완전히 다른 미생물군집을 보유하고 있었다. 밀도가 높은 심재는 산소가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혐기성 미생물이 지배적이었던 반면, 변재에는 산소를 필요로 하는 호기성 미생물이 더 많이 서식했다.
나무 종류에 따른 차이도 뚜렷했다. 예를 들어 단풍나무는 당분 분해에 특화된 미생물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었다. 이는 각 나무 종이 자신만의 고유한 미생물 공동체를 진화 과정에서 함께 발달시켜 왔음을 의미한다. 게비르츠만은 "우리 연구는 각 나무 종이 나무와 함께 진화해온 고유한 미생물 공동체를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추가 실험에서는 이러한 서로 다른 미생물 공동체들이 나무 내부의 가스 농도를 변화시킨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미생물들이 단순히 나무에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생리적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산림 건강과 나무 미생물군집의 연관성
이번 연구가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이러한 특화된 미생물군집이 나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다. 비록 명확한 인과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진들은 강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비르츠만은 특정 미생물들이 주요 곡물 작물과 포플러 나무를 포함한 특정 모델 식물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기능을 모르는 수천 종의 미생물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나무 미생물군집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인데, 필드 교수는 이 연구가 나무의 노화, 방어, 부패에서 미생물군집이 담당하는 역할을 조사할 새로운 질문들을 열어준다고 평가했다. 또한, 목재 미생물군집을 관리하거나 수정하여 산림의 회복력이나 탄소 순환을 개선할 수 있는지 탐구할 명확한 잠재력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접근은 산림 관리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 산림 건강은 주로 외적 징후나 환경 요인으로 평가되지만, 미래에는 나무 내부의 미생물군집 상태를 통해 더 정확하고 조기에 산림 건강을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연구 방향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 강수 패턴 변화, 극한 기후 현상의 증가가 나무 내부의 미생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미래 산림 보전 전략 수립에 핵심적이다. 특히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미생물군집이 어떻게 변화하고, 이것이 나무의 생존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번 발견은 기후변화가 산림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공할 수 있다. 게비르츠만은 "기후변화가 이러한 내부 생태계와 산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이런 미생물들을 새로운 산림 관리나 생명공학 응용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거시적 질문들을 제기했다.
필드 교수는 이 연구가 환경 미생물학, 산림 과학, 심지어 생명공학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열어준다고 평가하며, 미래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앞선 설명처럼 나무 미생물군집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해당 연구가 제시하는 결과는 기후변화 시대에 산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모든 전문가가 이러한 응용에 대해 낙관적이지는 않다. 현재 초원에서 종자와 묘목의 미생물군집에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독일 마르틴 루터 대학교의 식물학자 미하엘 쾰러(Michael Köhler)는 기후 영향과 산림 건강을 측정하기 위해 나무 미생물군집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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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8-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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