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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는 어떻게 미리 산사태를 미리 막을까? 선제적 대피로 생명을 구한 경보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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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아름다움 뒤에 숨은 엄청난 위험들

지난 5월 28일, 스위스 남부 발레주의 작은 마을 블라텐이 거대한 산사태에 휩쓸렸다. 버치 빙하가 전체적으로 붕괴하면서 얼음과 암석, 진흙이 뒤섞인 물질이 계곡으로 쏟아져 내렸으며 마을의 90%가 파괴되는 엄청난 대재앙이었다. 다행인 점은 대부분의 주민들은 무사했다는 점인데, 이는 당국이 미리 위험을 감지하고 300여 명의 주민들을 사전 대피시킨 덕분이었다. 이번 사건은 스위스가 왜 자연재해 예측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스위스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을까?

스위스는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자연재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나라다. 스위스는 전체 국토의 6% 이상이 사면 불안정 지역에 해당한다. 가파른 경사면과 불안정한 지형, 높은 강수량과 영구동토층 융해가 결합되면서 산악 지역은 산사태와 눈사태에 특히 취약하다. 하지만 스위스는 이런 위험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수십 년에 걸쳐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자연재해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현재 스위스는 지형 매핑, 강수량 지속 모니터링, 영구동토층 융해 추적, 지하수위 측정, 지각 변동 감지, 지반 이동 관측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위험 요소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 이 모든 데이터는 전국의 재해 위험 지도로 종합되어 관리된다.

스위스는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자연재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나라다 ©Getty Images
스위스는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자연재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나라다 ©Getty Images

스위스연방산림눈경관연구소(WSL)의 지형학자 브라이언 맥아델은 스위스에서 자연재해 위험이 있는 모든 지역 공동체는 재해 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이러한 행동이 연방 정부 차원에서 의무화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블라텐 사태: 조기경보 시스템의 성공 사례

스위스 당국은 이미 5월 초부터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빙하의 움직임이 가속화되자 5월 19일 주민 대피 명령을 내렸다. 300여 명의 주민뿐만 아니라 가축들까지 헬리콥터를 이용해 안전한 곳으로 피난했다. 5월 28일 버치 빙하가 전체적으로 붕괴하면서 수백만 입방미터의 얼음과 암석, 진흙이 계곡으로 쏟아져 내렸다.

스위스 당국은 5월 초부터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했다 ©Getty Images
스위스 당국은 5월 초부터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했다 ©Getty Images

블라텐 마을의 산사태는 몹시 위험한 상황이었으며 스위스에서도 이례적인 규모였다. 당시 움직인 빙하의 양은 10년에 한 번 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으로 남을 수준이었다. 이런 대규모 이동이 발생한 원인은 근처 클라이네 네스트호른 산에서 발생한 거대한 낙석이 버치 빙하 위에 쌓이면서 빙하를 불안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약 900만 톤에 달하는 암석 더미가 빙하에 가해진 압력과 함께 여름철 기온 상승이 맞물리면서 빙하가 하루에 10미터씩 움직이게 되었다.

블라텐 마을의 산사태는 특히 더 위험한 상황이었으며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례적인 규모였다 ©Getty Images
블라텐 마을의 산사태는 특히 더 위험한 상황이었으며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례적인 규모였다 ©Getty Images

ETH 취리히의 빙하학자 다니엘 파리노티는 암석이 얼음 위로 떨어지면 얼음의 일부가 액화된다고 설명하며 얼음이 녹으면서 그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미끄럽게 만들어 더욱 빠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고 밝혔다. 

 

예측의 한계와 도전 과제들

물론 산사태 예측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일반적으로 발생 가능한 지역은 예측할 수 있으나, 정확한 시점과 위치를 특정하는 것은 어렵다. 이탈리아 응용수학정보기술연구소의 은퇴한 지형학자 파우스토 구제티는 산사태 예측이 정확하기보다는 '확률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한다.

지진이나 홍수와 달리 산사태 모니터링은 훨씬 복잡하다 ©Getty Images
지진이나 홍수와 달리 산사태 모니터링은 훨씬 복잡하다 ©Getty Images

지진이나 홍수와 달리 산사태 모니터링은 훨씬 복잡하다. 지진은 지진계로 감지할 수 있고, 홍수는 육안으로도 빠르게 확인이 가능하지만 산사태는 조용히 진행되다가 갑작스럽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만 건의 산사태가 그냥 보고되지 않은 채로 지나간다. 과학자들이 산사태 발생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몇 미터 길이의 작은 산사태라도 큰 파편을 동반하거나 집이나 도로 근처에서 발생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자동차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치는 자갈 하나도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그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라고 구제티는 강조했다.

 

브리엔츠 마을의 계속되는 위험

블라텐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브리엔츠 마을도 비슷한 위험에 처해 있다. 브리엔츠 마을은 마지막 빙하기 이후 1만 1천 년 동안 서서히 계곡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 마을은 2023년 5월부터 반복적인 대피 명령을 받아왔다. 마을 위쪽에 있는 200만 입방미터 규모의 암석 덩어리가 붕괴될 위험이 높아지면서 주민 80여 명이 여러 차례 대피해야 했다. 2023년 6월에는 실제로 거대한 낙석이 발생했지만 다행히 마을을 간신히 비껴갔다. 하지만 위험은 계속되고 있어 2024년 11월에도 또다시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주민들은 이번이 세 번째 대피라며 지쳐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이 암석의 안정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실제로 기후변화는 스위스와 같은 산악 지역에 더 큰 어려움을 야기시키고 있다. 기온 상승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지반이 불안정해지고 극한 강수 현상이 증가하면서 소규모 산사태의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영구동토층 사이의 암석 덩어리가 느슨해지면서 붕괴를 촉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Getty Images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영구동토층 사이의 암석 덩어리가 느슨해지면서 붕괴를 촉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Getty Images

스위스 빙하 모니터링 책임자 마티아스 후스는 "기후변화로 인해 영구동토층 사이의 암석 덩어리가 느슨해지면서 붕괴를 촉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는데, 이를 두고 "수백 년 동안 보지 못했던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대부분 기후변화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최근 타지키스탄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빙하보존회의에서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부터 빙하를 보호하기 위한 더 큰 조치를 촉구하는 '빙하 선언문'이 발표된 바 있다. 

 

전 세계로 확산되어야 할 교훈

전 세계적으로 산사태 관련 사망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히말라야, 중남미 일부, 이탈리아, 이란 등이다. 스위스 같은 부유한 국가들은 지역사회에 잠재적 재해를 경고하는 신뢰할 만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아직 기본적인 조기경보 시스템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2024년 기준으로 '다중 재해 조기경보 시스템' 역량을 갖춘 국가는 108개국에 불과했다 ©Getty Images
2024년 기준으로 '다중 재해 조기경보 시스템' 역량을 갖춘 국가는 108개국에 불과했다 ©Getty Images

유엔 자료에 따르면 2015년의 두 배가 넘는 숫자로 개선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2024년 기준으로 '다중 재해 조기경보 시스템' 역량을 갖춘 국가는 108개국에 불과했다. 참고로 유엔은 2027년까지 전 세계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조기경보'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달성된다면 자연재해로부터 생명을 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구제티는 블라텐 사례를 언급하며 "스위스 당국은 제때 마을을 대피시키는 데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망자가 거의 없었어요. 이것은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스위스의 성공 사례는 첨단 기술과 체계적인 준비,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들의 신뢰와 협조가 어우러졌을 때 자연재해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 지금 스위스의 경험은 생명을 구하는 소중한 교훈이 되고 있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06-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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