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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김현정 리포터
2025-05-30

“내 입 냄새 어때?” 곤충을 유혹하는 꽃의 진화 SBP1 효소의 아미노산 치환을 통한 신기능 획득이 곤충 유인 황화합물 생성으로 이어진 진화 메커니즘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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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는 향기로움의 대명사다. 하지만 모든 꽃이 사람이 느끼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2009년 과학저널 Functional Ecology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식물 중 약 88%는 사람에게 기분 좋은 향으로 인식되지만, 나머지 12%는 썩은 고기나 배설물 냄새처럼 불쾌한 향기를 풍기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심지어 사람의 입 냄새와 유사한 냄새를 만들어 내는 꽃도 있다. 

이처럼 소수의 꽃이 내는 악취는 단순한 부패의 신호일까, 아니면 진화가 설계한 정교한 메시지일까?

최근 이 질문에 답을 던지는 흥미로운 연구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모든 꽃이 사람이 느끼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니다 ⒸScience

모든 꽃이 사람이 느끼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니다 ⒸScience


“음~ 꽃향기 좋다” vs “우웩~ 꽃 냄새가 왜 이래?”

자연은 기묘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설계한다. 사람에게는 불쾌하게 느껴지는 냄새도 그중 하나다. 

일부 꽃들은 사람에게 악취로 느껴지는 냄새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족도리풀(Asarum), 라플레시아(Rafflesia), 앉은부채(Symplocarpus) 등에 속하는 꽃들은 썩은 고기 냄새와 유사한 냄새를 풍기며 부패한 유기물을 찾는 파리나 딱정벌레 같은 곤충을 유인한다. 곤충들은 썩은 고기로 착각해 꽃에 접근하지만 꿀이나 꽃가루 등 실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식물의 수분을 매개하게 된다. 비록 사람에게는 ‘불호(不好)’인 냄새지만 곤충의 후각을 정밀하게 겨냥한 생태적 전략, 이른바 ‘후각적 기만 전략’인 셈이다.

이 냄새의 주요 성분은 디메틸디설파이드(이하 DMDS)와 같은 황화합물이다. 사람의 구취 원인으로도 알려진 메탄티올이 산화되며 생성되는 분자인데 일부 식물은 이를 능동적으로 조절하여 곤충을 유혹하는 데 활용한다. 

식물이 악취를 통해 후각적 기만 전략을 활용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냄새가 어떤 생화학적 경로를 통해 생성되는지, 또 특정 식물에서만 이러한 전략이 발현되는 이유는 오랫동안 규명되지 않은 채 관찰 가능한 생태 현상에 머물러 있었다. 

고기 썩는 냄새를 풍겨 곤충을 유인하는 꽃 Ⓒ일본국립과학박물관 drawn by Yoh Izumori

고기 썩는 냄새를 풍겨 곤충을 유인하는 꽃 Ⓒ일본국립과학박물관 drawn by Yoh Izumori


꽃의 후각 전략을 바꾼 효소 하나

일본 국립과학박물관 식물분류학자 오큐야마 유키히사(Yukihisa Okuyama) 박사를 중심으로 한 국제 공동 연구팀은 ‘썩은 냄새’의 기원을 찾기 위해 나섰다. 

오쿠야마 박사는 수년간 꽃향기와 식물-곤충 상호작용을 연구해 온 전문가로 이번 연구에서 악취를 내는 식물에 대해 유전자 진화와 생태 전략을 잇는 분자 생물학적 연결고리를 규명하고자 했다. 특히 황화합물 생성에 관여하며 사람의 구취와 간 대사과정에서도 생성되는 메탄티올에 주목했다. 사람에게는 불쾌한 구취 원인 물질이지만, 일부 식물에서는 진화적으로 활용한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먼저 족도리풀 종에 속한 여러 꽃에서 방출되는 DMDS 양을 정략 측정한 뒤 이 수치와 상관관계를 보이는 유전자군을 찾았다. 셀레늄 결합 단백질(Selenium-Binding Protein, SBP) 계열의 유전자군이 주요 후보로 떠오른 가운데 SBP1이라 명명된 유전자의 발현 수준이 높을수록 DMDS가 많이 생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나머지 11속을 추가로 분석해 총 12속의 식물을 대상으로 SBP 유전자와 효소 활성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이 중 족도리풀속(Asarum), 앉은부채속(Symplocarpus), 유리아속(Eurya)에서만 DMDS 합성 효소 활성이 확인되었다.

이 발견은 생화학적,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모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족도리풀속(Asarum) 속 식물에서 악취를 유발하는 주요 휘발성 화합물은 꽃 전체 중에서도 꽃받침에서 가장 많이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Science

족도리풀속(Asarum) 속 식물에서 악취를 유발하는 주요 휘발성 화합물은 꽃 전체 중에서도 꽃받침에서 가장 많이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Science

우선 SBP1 유전자가 기존의 메탄티올 산화효소와는 전혀 다른 경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메탄티올은 포름알데히드, 황화수소, 과산화수소 등으로 분해되는 경로를 따른다. 하지만 SBP1은 이 물질을 분해하지 않고 오히려 결합시켜 새로운 냄새 분자인 DMDS를 만들어 냈다. DMDS의 생성은 곤충의 감각기관을 정밀하게 자극하는 생태학적 신호물질로 작용하기 때문에 식물 입장에서 ‘후각적 유인’ 전략의 핵심이다. 

이 과정은 유전자 중복과 변이의 전형적인 진화 메커니즘인 ‘신기능 획득(neofunctionalization)’을 따랐다. 기존 유전자는 본래 기능을 유지하면서 복제본은 돌연변이를 축적하고, 결국 새로운 기능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또한 흥미로운 사실은 DMDS을 생성하는 SBP1 효소를 보유하고 있는 세 개 속이 계통적으로 서로 거리가 먼 식물군이라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 세 식물군이 동일한 DMDS 생성 능력을 각각의 진화 경로에서 독립적으로 획득했음을 분자 계통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 

이는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의 전형적 사례로 서로 다른 생물군이 유사한 생태적 압력에 적응하기 위해 비슷한 생리적 또는 분자적 해결책을 선택한 결과다. 구체적으로는 이들 세 속 모두 SBP1 유전자의 특정 아미노산 위치(75번 히스티딘, 191번 타이로신 등)에서 유사한 방식의 치환을 거쳐 기존 메탄티올 산화효소의 기능을 새로운 DMDS 합성 기능으로 전환시켰다. 연구진은 이러한 유사한 아미노산 치환이 유전자의 중복과 돌연변이 후 축적된 점진적 변화에 의해 각각의 식물군에서 별도로 일어났음을 밝혔다. 이는 단백질 진화 경로가 예측 가능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생물학적 통찰이다. 

SBP1 효소의 진화 과정에서 발견된 특정 아미노산이 단백질 내부 구조의 기능적 영역에 집중되며(A), 이들 위치에서 일어난 유사한 아미노산 치환이 독립적으로 여러 식물 속에서 반복되었음(B)을 보여준다. ⒸScience

SBP1 효소의 진화 과정에서 발견된 특정 아미노산이 단백질 내부 구조의 기능적 영역에 집중되며(A), 이들 위치에서 일어난 유사한 아미노산 치환이 독립적으로 여러 식물 속에서 반복되었음(B)을 보여준다. ⒸScience

 

‘악취’가 전략, 생태적 함의는?

이 연구는 단 세 개의 아미노산 변화만으로 효소 기능이 전환되고, 그 결과 특정 곤충과의 후각적 상호작용을 진화시킨 분자 진화의 사례로 평가된다. 

공동저자인 로렌조 카푸티 박사와 세라 오코너 박사(독일 막스플랑스 화학생태연구소)는 “단 몇 개의 아미노산 변화만으로 식물이 새로운 생태적 틈새를 개척하고, 특정 곤충과의 후각적 커뮤니케이션을 확립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진화생물학에서 매우 강력한 사례”라고 말했다.

사람과 식물이 동일한 대사물질인 메탄티올을 생성하지만, 식물만이 이를 생태 전략으로 진화시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세라 오코너 박사는 “식물은 끊임없이 주변 생물과의 화학적 상호작용을 진화시켜야 하는 압력을 받는다”며 “이번 연구는 단일 효소의 기능 변화가 어떻게 생태적 적응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05-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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