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중한 내 집이, 내 집이 아니었으면 하는 순간이 있다. 반갑지 않은 손님 바퀴벌레 때문이다. 바퀴벌레를 때려잡으면 알이 여기저기 퍼진다는 이야기에 살충제를 잔뜩 뿌리게 된다. 그런데 슬픈 소식이 있다. 뿌리는 살충제가 바퀴벌레를 잡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물 건너온 반갑지 않은 손님
세계적으로 바퀴벌레는 4,000종이 넘는다. 이 중 99%는 집 안이 아닌 야외에서 산다. 하지만 하수구, 문틈, 화분, 택배 상자 심지어는 긴 옷자락을 붙잡고 바퀴벌레가 집 안으로 침입한다. 집 안에서는 바퀴벌레가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싱크대 안쪽이나 에어컨 속 등 바퀴벌레가 좋아하는 어둡고 습한 환경도 많다.
바퀴벌레는 약 3억 년 전 고생대 때 나타난 생물이다. 원래는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만 살았지만, 교통과 무역의 발달에 힘입어 전 세계로 널리 퍼졌다. 4,000종 중 우리나라에서 사는 바퀴벌레는 약 10종. 그중에서도 실내에 사는 바퀴벌레의 약 83%는 독일바퀴(Blattella germanica)다.

혐오스러운 외형만큼이나 유해하기도 하다. 바퀴벌레가 전파할 수 있는 병원체는 100종류가 넘으며, 사람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 바퀴벌레는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 뱃속에 있던 것을 토해내는데, 이때 음식물을 오염시킨다. 또, 벗어 놓은 허물이 먼지처럼 날릴 때 호흡기관을 통해 들어와 염증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과거 지구의 소행성 충돌은 물론 빙하기도 이겨낼 정도로 번식력이 좋다. 한 번의 교미로 평생 알을 낳을 수 있다. 심지어 단성생식을 한다. 수컷 없이 암컷끼리도 번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뿌리는 살충제 뿌렸더니, 단 20%만 제거
미국 연구진은 지난달 14일 더 무서운 연구 결과를 미국곤충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경제곤충학회지(Journal of Economic Entomology)’에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사용하는 소비자용 살충 스프레이가 바퀴벌레 제거에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결과다.
살충제는 바퀴벌레가 출몰할 가능성이 높은 표면에 뿌려두고, 향후 바퀴벌레가 해당 표면을 지나갈 때 독성 성분에 노출되는 식으로 작동한다. 연구진은 전 세계 가정과 건물에 주로 서식하는 독일바퀴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실제 바퀴벌레 감염 지역에서 채집된 독일바퀴들을 채집했다.

이후, 살충 성분인 ‘피레스로이드’ 계열 살충제를 뿌린 표면에 독일바퀴를 노출시켰다. 30분 동안 살충 표면에 노출되었음에도 죽은 바퀴벌레의 수는 20%도 되지 않았다. 실제 서식 환경과 달리 갇힌 공간에 살충제를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제품이 바퀴벌레를 죽이는 데까지 최소 8시간에서 최대 24시간이 소요됐다.
연구의 주 저자인 조날린 고든 미국 플로리다대 박사는 “실제 환경에서 바퀴벌레가 살충제가 처리된 표면에서 오랜 시간 동안 머무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바퀴벌레는 자주, 빠르게 움직이고 살충제가 처리된 표면을 적극적으로 피한다”고 말했다.
또한, 연구진은 표면의 종류에 따라 살충 효과가 달라진다는 점도 확인했다. 페인트를 칠한 석고보드, 세라믹 타일, 스테인리스 스틸 등에 살충제를 뿌려 실험을 진행했는데, 석고보드에서 성능이 크게 저하됐다. 심지어 피레스로이드에 대한 내성을 가지지 않은 독일바퀴 개체군 조차도 석고보드 위에서는 살충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고든 박사는 “표면의 다공성이 제품의 효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살충제가 일반적으로 걸레받이 등에 적용된다는 점에 감안할 때, 석고보드에서 효능이 감소한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한 발견”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미끼로 바퀴벌레를 유인해 서서히 작용하는 먹이형 살충제가 바퀴벌레 방제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전문가를 통한 해충 방제나 소비자용 솔루션이 필요해 경제적 장벽이 있다.
고든 박사는 “우리는 바퀴벌레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이미 있지만 경제적 및 절차적 장벽으로 인해 모두가 활용하긴 어렵다”며 “이러한 관리 격차를 해소할 수 있도록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개선된 방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 연구진의 일차적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소한 시판 가정용 살충제의 포장재(라벨)에 방제 수준을 정확하게 반영하여, 소비자들의 오해를 없애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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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09-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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