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나면서 포근한 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겨우내 입었던 칙칙한 겨울옷을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서고 싶은 계절이다.
봄의 전령인 산수유와 매화가 예년보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려 ‘계절의 여왕’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유난히 춥고 눈도 많았던 지난 겨울 때문인지 동네 어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봄꽃이 감동스럽게 느껴진다.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꽃망울이 움트는 초목의 모습에 코로나19로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다.
인공 건축물을 자연에 연결하는 예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예전 큰 인기를 끌었던 국민가요의 가사다. 사람은 자연을 개발해 수십 층으로 높이 쌓은 인공적인 건축물 안에 살면서 자연 속의 삶을 꿈꾸는 이율배반적 존재다. 여기서 인공물인 건축물과 자연을 서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조경’이다.
사전적으로 조경(造景)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를 계획·설계·시공·관리하는 예술로 정의된다. 조경을 통해 바쁜 현대인은 자연과 만나며 삭막한 도시는 생태적 기반을 갖추게 된다.
한국인이 살아가는 아파트에서 조경은 단지 안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빈공간을 채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단지형 아파트 탄생한 후 수십 년 동안 아파트는 건물 위주로 발전했으며 남는 지상공간은 대부분 주차장으로 사용됐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주차장을 지하에 설치하면서부터 조경공간이 대폭 늘어나며 변화가 시작됐다. 요즘 아파트에서 조경은 소위 가장 힙하고 핫한 요소가 되고 있다.
건설사들은 아파트를 분양할 때 반드시 친환경이나 녹색 또는 그린, 생태, 공원형, 조경 프리미엄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소비자들이 조경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올해 2월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선호하는 아파트 유형을 묻는 질문에 친환경 자재, 환기, 헬스케어 시스템을 적용한 ‘건강아파트’가 1위(34%)를 차지한 데 이어 조화로운 경관과 다양한 휴식공간을 강화한 ‘조경특화아파트’가 간발의 차로 2위(33%)를 차지했다.

아파트를 선택할 때 사람들이 조경을 따지는 이유는 경관, 생태, 환경, 건강, 가치 등 무려 다섯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조경을 통해 아파트는 획일적인 성냥갑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갖게 되며 외부 경관이 향상된다. 둘째 조경은 건축으로 파괴된 토양생태계를 복원하고 다양한 생물에게 서식공간을 제공하는 등 생태적 기능을 한다.
셋째 조경을 통해 우리 주변에 심어지는 식물들은 자동차 배기가스 등 오염물질을 흡수해 공기를 정화하고,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등 아파트의 물리 환경을 개선한다. 넷째 조경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하는 등 치유 효과가 입증돼 있다. 다섯째 조경이 잘 돼 있으면 아파트 가치가 상승하고 냉난방 에너지가 절약되는 등 경제적 이득이 상당하다.
아파트에서 나무를 잘 골라 잘 심는 법
조경은 크게 식물을 활용하는 식재와 그 외 조경시설물로 나눌 수 있다. 식재는 주변 환경에 맞는 식물을 적절하게 골라 잘 배치하여 심는 일로 조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식물을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조경이 인접 분야인 건축, 토목 등과 근본적으로 차별성을 갖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파트 조경에서 식재는 식물 수종의 질감과 색감, 형태에 의한 공간감을 고려해 계획한다. 식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계속 성장하며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따라서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식물의 변화를 고려해야 하고 특정 계절에 치우치지 않도록 수목 간 조화도 신경 써야 한다.
아름다운 외양만큼 중요한 게 생태적인 내실이다. 성공한 식재는 적절한 생육환경이 조성돼 식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잘 자라나며 관리도 쉬워야 한다. 이 때문에 조경에서 식재는 예술이며 과학으로 불린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식재를 어떻게 하는지 주인공으로 사용되는 조경수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교목’은 높이가 2m 이상인 키 큰 나무인데, 사시사철 푸른 상록침엽교목 중에서는 소나무와 스트로브잣나무가 단연 인기이고, 주목과 전나무, 반송, 서양측백나무, 섬잣나무, 가이즈까향나무 등을 많이 사용한다.
특히 소나무는 조경수의 제왕으로 불리는데 모양이 좋은 자연산은 한 그루에 수천만 원에 달하기도 한다. 나무는 공장에서 뚝딱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최소 10년, 때에 따라 100년 이상 걸려 형태를 갖추기 때문에 보기 좋은 조경수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비싸다. 이 외 상록활엽교목 중에서는 동백나무가 인기 있는 편이다.
낙엽교목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여름에는 청록을 자랑하고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이 물들며 열매로 경관에 포인트를 줄 수 있다. 낙엽교목 가운데서는 느티나무가 단연 최고 인기이며, 산수유와 청단풍, 모과나무, 감나무, 산딸나무, 살구나무, 배롱나무, 이팝나무, 왕벗나무, 매실나무 등을 자주 사용한다. 느티나무의 경우 수령에 따라 호가가 수억 원을 넘기도 한다.
높이가 2m 이하인 키 작은 ‘관목’은 교목을 뒷받침하는 데 제격이다. 상록관목 중에서는 회양목을 주로 울타리로 사용하고 영산홍, 사철나무 등이 이용된다. 낙엽관목 중에서는 백철쭉, 자산홍, 산철쭉, 수수꽃다리, 조팝나무 등을 사용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주차장이 지하화하면서 조경에 쓰이는 상당수 나무가 주차장 위에 만들어진 인공지반에 심어지고 있다. 인공지반은 토양 깊이가 얕고, 생육공간이 협소하며, 배수가 잘 안 되는 등 상당히 불리한 환경 여건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비싼 나무가 고사하는 등 조경수 하자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인공지반에 식재할 때는 더욱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 필요한 토심(토양 깊이)이 부족할 경우 흙을 쌓아 구릉을 만들거나 대형화분 형태로 설치하는 등 조처를 한다.
아파트 단지의 바람직한 식재 구조에 대해 전문가들은 도심 녹지가 부족한 우리나라 특성을 고려해 주차장을 완전히 지하화하고 녹지율은 40% 이상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보행을 위한 포장 공간, 어린이놀이터 등 최소한의 공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공간은 수목식재 중심으로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인공지반 아파트의 경우 건물의 전면녹지와 후면녹지는 폭 5m 이상, 측면녹지는 폭 3.2m 이상 확보한다. 완충녹지는 폭을 15m 이상으로 조성해 단지 내부의 녹지와 연결하고 외부의 도심 녹지축에 이어지도록 한다. 식재 수종은 가능한 자생종 식재 비율을 높이고 다층구조 식재 기법을 적용한다.(이동욱 외 『서울시 아파트단지의 녹지배치 및 식재구조 변화 연구』 참고)
체험형 시설물에서 예술작품까지 설치
아파트의 조경은 식재와 함께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조경시설물로 완성된다. 아파트의 조경시설물에는 놀이터와 휴게시설, 운동시설, 수경시설, 안내시설, 환경조형물 등이 있다. 조경시설물은 기능적 구성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 통일돼야 하며 주변과의 조화가 필수다. 예전에 조경시설물은 전시형, 관조형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참여형, 체험형으로 발전하는 추세다.
놀이터는 예전에는 구색 맞추기 형태로 천편일률적인 철재 놀이시설을 모랫바닥 위에 설치했는데, 요즘에는 복합적 기능의 다양한 놀이기구를 모래와 고무매트 위에 설치하는 추세다.
휴게시설은 옥상과 필로티, 햇빛이 드는 지하공간인 썬큰(Sunken), 중앙광장 등 다양한 공간에 단순 휴게기능이 아닌 복합 다목적 공간으로 조성되고 있다. 자연학습장, 캠핑 가든, 숲속 영화관 등이 들어서 아파트 입주민에게 여유를 선사한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 내 중앙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건물 위치를 옮기고 크기까지 줄이는 형국이다.
운동시설로는 한동안 테니스장, 베드민턴장을 많이 설치했는데, 최근에는 체력단력시설을 기본으로 설치하고 아파트 곳곳에 다목적 운동공간과 순환조깅 코스, 골프 연습시설 등을 다양하게 설치한다.

조경시설물 중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수경시설이다. 물의 움직임과 투영, 소리 등 요소는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하며 시원스러움과 함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을 제공한다. 요즘 아파트 단지들은 자연형 계류와 생태 연못, 폭포, 물놀이장 등 다양한 형태와 소리를 갖는 수경 요소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환경조형물도 최근 아파트에서 나타나는 눈에 띄는 특징이다. 유명작가의 대형 조형 작품을 설치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대형 환경조형물은 예술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아파트 단지에 정체성을 부여한다. 환경조경물은 주변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관건이다.
- 김홍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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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3-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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