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 강해서 주방용품 제조에 많이 사용되는 폴리에틸렌(polyethylene)은 양면성을 가진 소재다. 가공이 쉽고 장시간 햇빛에 노출돼도 변색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비교적 안전한 소재로 알려져 있어서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비닐의 주원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환경을 오염시키는 공해 물질이라는 점은 부정적인 면이라 할 수 있다. 썩지 않기 때문에 지구상에는 수십억 개의 폴리에틸렌 비닐이 방치된 채 존재하면서, 토양과 하수의 새로운 오염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폴리에틸렌은 적당하게 사용하다가 소멸시키는 것이 사람에게도 좋고 환경에도 좋은 방법인데, 불행하게도 현재까지는 효과적인 소멸 방법이 나와있지 않다. 또 다른 공해를 유발하는 소각이나, 땅에다 매립하는 방법으로 폴리에틸렌 비닐을 처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최근 캐나다의 과학자들이 폴리에틸렌 기반의 비닐을 먹어서 분해하는 한 나방의 애벌레를 발견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환경업계는 이들이 발견한 애벌레가 앞으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벌집 구성 성분과 비슷한 폴리에틸렌 분해 애벌레
폴리에틸렌 기반의 비닐을 먹어서 분해하는 애벌레는 ‘꿀벌부채명나방(학명 Galleria mellonella)’의 애벌레다. 꿀벌에 기생하면서 생존하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나방 성충이 벌집에 알을 낳으면, 애벌레가 부화하여 벌집을 갉아먹으며 사는 방식으로 기생한다.
꿀벌 집은 왁스(wax)와 비슷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가 먹어치운다 하여 왁스웜(waxworm)으로 불리기도 한다. 왁스는 폴리에틸렌과 화학적 구조가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다.
캐나다 브랜던대의 연구진은 이 같은 사실에 주목했다. 왁스웜이 왁스를 먹어치운다면 비슷한 구조를 가진 폴리에틸렌도 분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
이들 연구진을 이끌고 있는 브랜던대의 ‘크리스토퍼 르모인(Christopher LeMoine)’ 교수는 본격적인 실험에 앞서 왁스웜의 소화과정을 연구했다. 그리고 왁스웜의 장내에는 폴리에틸렌을 분해할 수 있는 세균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왁스웜의 소화 능력에 확신을 가진 연구진은 왁스웜 60마리를 폴리에틸렌 성분의 비닐이 들어 있는 상자에 집어넣었다. 왁스웜의 대사 작용이 가장 활발할 수 있도록 온도와 습도, 밝기 등을 최적화한 후 분해 정도를 관찰했다.

그 결과 왁스웜은 불과 일주일 만에 넓이 30㎠의 폴리에틸렌 비닐을 먹어치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점은 연구진이 왁스웜에게 별도의 먹이를 주지 않고 오로지 폴리에틸렌 성분의 비닐만 제공했는데도 1년 넘게 생존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르모인 교수는 “애벌레 60마리가 일주일간 먹는 비닐 크기가 30㎠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분해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하면서 “실제로 폴리에틸렌 비닐을 분해하는 것은 장내 세균인 만큼, 이들 장내 세균을 따로 분리하여 배양할 수 있다면 분해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연구진은 왁스웜의 원래 먹이인 왁스를 이용하여 장내 세균 1종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 세균은 숙주인 왁스웜의 장내에서 분리되어 배양된 후 폴리에틸렌 분해 실험에 투입됐는데, 일주일 정도 생존하면서 폴리에틸렌을 분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폴리에틸렌 성분의 비닐이나 플라스틱 분해에 왁스웜이 효과적이라는 실험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사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왁스웜이 폴리에틸렌을 분해할 때 독성 물질인 에텔렌글리콜(ethylene glycol)을 동시에 생성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르모인 교수는 “독성 물질 생성을 억제하거나, 생성된 독성 물질을 화학반응을 통해 다른 물질로 만드는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다”라고 밝히며 “이런 점만 해결된다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플라스틱과 비닐에 의한 환경 오염 문제에 돌파구가 생길 수 있다”라고 기대했다.
또 다른 오염원인 스티로폼 분해 애벌레도 등장
왁스웜이 폴리에틸렌 성분의 플라스틱과 비닐을 분해하는 애벌레라면 ‘갈색거저리(tenebrio molitor)’의 애벌레인 밀웜(mealworm)은 또 다른 환경 오염 소재인 스티로폼(styrofoam) 분해할 수 있다.
갈색거저리는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거저리과의 곤충이다. 몸은 어두운 갈색이며 성충이 되면 길이가 약 15mm 정도로 자란다. 이들의 애벌레인 밀웜(mealworm)은 그동안 주로 애완동물의 먹이로 많이 사용되었다.
미 스탠포드대와 중국 베이항대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밀웜 100마리에게 한 달 동안 매일 34~39㎎의 스티로폼을 투여했다. 그 결과 밀웜은 스티로폼의 절반을 이산화탄소로 바꿔 배출했으며, 나머지는 대변으로 배설했다.

이처럼 획기적인 결과에 놀란 공동 연구진은 밀웜의 스티로폼 분해 기전을 찾기 위해 다양한 항생제를 밀웜에게 먹이면서 밀웜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러자 항생제를 먹여 장내 세균을 죽이면 스티로폼 분해 능력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의 주요 참여자인 '웨이민 우(Wei Min Wu)' 박사는 “항생제 투여에 의해 죽는 장내 세군이 스티로폼 분해의 주역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전하며 “따라서 장내 세균의 기전을 모방한 스티로폼 분해용 인공 효소가 개발되면 스티로폼에 의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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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03-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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