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빙하의 녹는 속도는 1980년대 이후 6배가량 빨라졌다. 북극 주변 지역의 해빙과 눈이 녹아내리면 햇빛을 반사하는 양이 감소하면서 그만큼 기온이 상승하게 된다. 영구동토가 해빙되는 것도 문제다. 그 아래에 묻혀 있는 대량의 탄소와 메탄이 방출되어 온실효과를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북극은 세계 평균에 비해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영국 연구진에 의하면 북극권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21세기 말까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손실은 약 67조 달러에 달한다. 2016년도 전 세계 GDP 규모가 76조 달러였으니 얼마나 많은 금액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북극이 왜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 온난화가 그처럼 빨리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최근 북극 온난화의 원인을 새롭게 규명한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을 포함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프레온가스 같은 오존층 파괴 물질이 북극 온난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 최신호에 게재했다. 이에 의하면 대기 중의 오존층 파괴 화학물질은 1955년에서 2005년 사이 북극 온난화의 절반 정도를 유발했다.
냉장고와 에어컨, 헤어스프레이 등에 널리 사용되던 냉매인 프레온가스, 즉 염화불화탄소(CFCs)는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에 의해 생산이 금지됐다. 당시 남극 상공 성층권의 오존층에 큰 구멍이 발견됐고, 그 원인 물질로 프레온가스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국제 협약 중 하나로 인정받는 몬트리올 의정서 덕분에 극지방의 오존 구멍은 점차 회복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은 남극 및 북극의 오존 구멍이 2060년경 완전히 복원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북극 온난화 원인의 절반은 CFCs
이후 오존층 및 기후에 대한 연구는 손상된 오존층이 물리적으로 대기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즉, 프레온가스가 지닌 강력한 온실가스로서의 역할은 잘 이해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를 진행한 연구팀은 기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오존층을 파괴하는 CFCs가 그대로 생산되는 경우(1955년~2005년)와 생산이 중단된 경우(1995년~2005년) 등 두 가지 특정 시나리오를 비교했다.
그 결과 CFCs가 없는 시뮬레이션에서 북극은 기온 상승폭이 0.82℃에 그친 데 비해 CFCs가 계속 생산되는 경우에는 기온 상승폭이 1.59℃로 커진 것. 즉, 오존층 파괴 물질이 1955년 수준에서 일정하게 유지되었다면 북극은 2배 이상 덜 따뜻해졌다. 이는 같은 기간 북극 기온 상승폭의 절반은 오존층 파괴 물질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시뮬레이션을 지구 전체에 적용시켰을 때는 기온 상승폭이 각각 0.39℃와 0.59℃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지구 온난화의 1/3이 오존층 파괴 물질 덕분이라는 뜻이다. 만약 1955년부터 CFCs가 금지되었다면 북극은 지금보다 절반, 지구 전체는 1/3 정도 온난화가 덜 진행되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오존층 파괴 물질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오존 구멍을 유발하는 주범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왔다. 따라서 이 연구는 오존층 파괴 물질이 지구를 온난화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최초로 정량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체 물질 HFCs도 생산 중단 예정
또한 그동안 행해진 기후 정책 및 배출 규제가 지구 온난화의 방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도 이 연구 결과에서 규명됐다. 1987년에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되지 않았다면 북극은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해졌을 거라는 점에서 이 연구 결과는 분명히 긍정적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 고더드우주비행센터의 대기 과학자인 수잔 스트라한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연구 결과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고 밝혔다.
대기 중의 오존층 파괴 물질은 1990년대 중반 정점을 찍은 이후 20% 이상 감소했다. 이처럼 대기 중 오존을 배출하는 물질의 농도가 계속 감소함에 따라 북극의 온난화에 이 물질들이 미치는 영향도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지난해 1월 1일에는 수소불화탄소(HFCs)의 사용을 억제하자는 ‘키갈리 수정안(Kigali Amendment)’이 발효됐다. 프레온가스의 대체 물질로 냉장고 및 에어컨 등에 사용되는 HFCs는 오존층에는 해를 주지 않지만, 이산화탄소보다 지구 온난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온실가스다.
키갈리 수정안은 선진국부터 HFCs를 단계적으로 사용 중단해 향후 30년간 이 물질의 생산 및 소비를 8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6년 르완다 키갈리 몬트리올 의정서 당사국 회의에서 합의된 이 수정안이 순조롭게 시행될 경우 2050년까지 800억 톤 이상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하고 금세기 내 최대 0.5℃의 기온 상승을 피할 수 있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20-01-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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