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로 드러난 우리 산업의 소재부품 분야 취약성을 극복하고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경제 생태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글로벌 산업패권 전쟁과 한국의 기술주도권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우리의 소재부품 분야 취약성 극복하려면
이날 김용석 한국화학연구원 고기능고분자연구센터장이 ‘소재부품 분야 취약성 극복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소재산업이 부품과 완제품의 경쟁력을 결정하기 때문에 부가가치 창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데, 소수 글로벌 기업들이 특허와 표준장벽으로 독과점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 소재 연구개발이 오랜 시간과 막대한 투자비가 들기 때문에 일반 기업들의 진입이 어렵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소재 분야에 경쟁력을 갖게 됐을까. 김용석 센터장은 “1995년 주류였던 8인치 웨이퍼의 4배 면적을 가진 16인치 웨이퍼를 개발할 때 일본의 경제산업성과 실리콘 업계에서는 기초와 응용연구단계에서 위험부담이 크지만, 일본 전자산업계를 위해서 첨단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아 공동출자로 슈퍼실리콘연구소를 설립했고 이를 통해 지금과 같은 소재분야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도 당장의 이익이 보이지 않더라도 국가와 기업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연구개발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꾸준한 연구개발로 기술을 축적하다 보면 이번과 같은 위기도 얼마든지 기회로 만들 수 있다”며 경제 환경의 변화를 이용해 우리나라가 시장 진입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했다.
연성인쇄회로기판의 핵심 소재인 연성동박적층판은 전통적으로 일본이 강세를 보인 분야였는데, 2008년 엔화 가치가 오르며 일본 업체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자 우리 기업들은 화학연구원이 공동 연구로 이미 확보한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수요업체와 부품업체, 소재업체가 합작사를 만들어 국내 시장 점유율을 절반 이상으로 높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에 김 센터장은 경제 환경 급변 시 시장 진입을 위해서 핵심소재 개발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운용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고난도 소재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부 R&D와 설비 투자를 강화하여 기술자립도를 높이고 해외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며 “소재, 공정, 장비 등 공급망을 하나의 패키지와 같은 생태계로 구축할 수 있도록 포괄하는, 통합적 관점의 연구개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향후 일본과 이슈가 될 수 있는 파급효과가 큰 소재를 먼저 찾아내서 선제적으로 개발을 추진해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미연에 차단하는 것과, 국책 연구소 주도로 고위험 소재 개발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며 이처럼 국가적으로 시급한 연구개발에 필요한 가용조직으로 출연연을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고분자, 화학, 섬유 분야의 경우에는 주요 기술 분야들과 다양한 관련 기술들이 상호 연계되어 유기적 연구개발이 가능하다. 따라서 김 센터장은 “연결 중심성이 높은 기술뿐 아니라 첨단 융합소재 개발을 위해 여러 기술 분야 간에 확장이 일어날 수 있도록 네트워크 구조를 만들어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기술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경쟁력 강화 위한 기술주도권 확보하려면
이날 ‘한국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주도권 확보 방안’에 대해 발표한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단기 전략으로 △국가 전략물자의 모니터링‧관리 체계 정비 △경제적 충격 완화를 위한 중소기업 비상지원대책 시행 △경쟁형 R&D 확대를 통한 연구개발 효과성 강화 △민간의 시행착오를 선도하는 혁신형 공공구매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중장기 전략으로는 ‘창의‧선도형 R&D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하 부원장은 “미국의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처럼 연구자의 도전적 실패에 책임을 묻지 않는 연구 분위가 조성되어야 하고, 연구자들이 High risk-High return의 모험적 연구를 하면서 직면하고 있는 기술개발 위험을 사회가 공유할 수 있도록 기술금융과 공공조달 등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다”고 피력했다.
이 밖에 패널토론을 통해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의 소재, 부품, 기계 산업의 강점이 아날로그 기술에 뒷받침된 모노즈쿠리에 있지만, 이들 분야에도 디지털화의 파고가 올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이런 새로운 기술 흐름을 선도하는 파괴적인 혁신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노즈쿠리는 장인 정신으로, 숙련 근로자의 노하우에 의존하는 일본의 공정을 우리는 AI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기술로 이겨내자는 것.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모노즈쿠리 기반과 함께 AI 관련 인력의 육성 등을 통해 AI 전문 스타트업이 활발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혁신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전정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미래전략부장은 “오랜 기간 효율성을 바탕으로 정착된 글로벌 공급체인이 정치, 외교적 이슈로 무너지면서 발생한 이번 사태는 단기간에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며 “긴 안목을 가지고 새로운 국가 산업‧기술 전략을 수립하고 체질을 재건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 국가적 재원을 집중 투자할 전략물자와 기술을 설정하고 관련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특히 출연연은 과학기술의 싱크탱크로서, 미래산업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데 적극적인 역할 수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김순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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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8-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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