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을 벗어나고 낮 최고기온이 18도에 이르면서 겨울옷을 벗고 봄옷으로 갈아입은 행인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나들이객으로 북적이는 주말임에도 외출을 포기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늘을 가득 메운 ‘미세먼지’ 때문이다. 특히 중국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봄철에는 맑은 하늘보다 뿌옇게 먼지로 뒤덮인 하늘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최근 며칠 동안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미세먼지 수치가 ‘나쁨’을 기록하고 있다. 미세먼지는 입자의 크기에 따라 PM10과 PM2.5로 구분된다. 지름이 10μm 이하이면 PM10, 그중에서 2.5마이크로미터(μm) 이하이면 PM2.5라 한다. 둘 다 머리카락 굵기의 1/5보다 작다.
미세먼지 예보는 PM10의 농도가 1세제곱미터당 30마이크로그램(μg)을 넘지 않으면 ‘좋음’, 31~80은 ‘보통’, 81~150은 ‘나쁨’, 151 이상은 ‘매우나쁨’으로 구분한다. PM2.5는 15μg 이하가 ‘좋음’, 16~50이 ‘보통’, 51~100이 나쁨, 101 이상이 ‘매우나쁨’이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지면 하늘이 뿌얘지면서 가시거리가 짧아지고 숨쉬기가 불편해진다. 우리 몸에 실제로 주는 피해는 생각보다 크다. 기관지를 거쳐 몸으로 흡수된 후에는 다시 빠져나가지 않고 폐에 들러붙어 기능을 저하시킨다.
게다가 초미세먼지는 혈관으로 흡수돼 온몸을 돌며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후각신경을 타고 뇌에 들어가 세포손상을 일으켜 알츠하이머를 유발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3년 미세먼지를 1군 발암물질(Group 1)로 규정한 바 있다.
미세먼지는 자연재난, 사회재난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미세먼지가 심해지면 ‘재난’ 수준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법률상으로는 정식 재난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는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크게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나누고 있다.
자연재난은 자연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해를 가리킨다. 예전에는 자연재해라는 표현을 썼지만 지금은 법적으로 ‘자연재난’으로 통일해 사용 중이다. 사회재난은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하거나 대비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겪는 피해가 이에 해당한다.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자연재난으로 호우, 대설, 낙뢰, 지진, 태풍, 황사, 홍수, 가뭄, 강풍, 풍랑, 폭염, 해빙기, 한파가 있고 사회재난으로 교통사고, 붕괴, 폭발, 화재, 산불, 사이버테러, 감염병, 조류독감(AI)을 꼽았다. 미세먼지는 엄밀히 말하면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미세먼지는 자연재난 중 ‘황사’와 비슷하지만 동일한 물질로 볼 수 없다. 황사는 중국 내륙에 위치한 내몽골 사막에서 강한 바람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래와 흙먼지를 가리킨다. 칼륨, 철분 등 토양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자체만으로 유해성이 높지는 않다. 주로 봄철에 발생한다.
물론 황사가 심해지면 호흡 곤란이 발생한다. 황사로 인해 PM10 농도가 2시간 이상 세제곱미터당 400μg을 넘어서 지속될 경우 황사주의보가 발령되고, 800μg을 넘을 경우 황사경보를 발령한다. 공장이나 도시 등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을 통과할 경우 중금속이나 화합물질과 결합해 위험성이 커진다.
그런데 황사보다 위험성이 큰 미세먼지는 아직 정식 재난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자연재난에 속하는지 사회재난에 속하는지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미세먼지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사람은 많지만 원인 규명과 해결책 마련은 더디기만 하다.
중국발 미세먼지 이외에 국내 법규도 필요
우리나라의 대기질 수준은 세계 180개국 중 173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그 원인으로 중국이 지목되곤 한다.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미세먼지는 크게 국내에 생긴 것과 해외에서 넘어들어온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해외에서 넘어온 미세먼지는 주로 중국 북부의 공업지대가 출발점이다.
실제로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베이징에서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가 한꺼번에 열리는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 양회(兩會)가 진행되었다. 이 기간 동안 수도권의 공장들이 영업을 중지하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났고 대기오염도 급감했다. 양회가 끝나고 공장 가동이 재개되면서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수치도 평균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중국 대도시들은 우리보다 대기오염이 심하다. 베이징의 경우 미세먼지 수치가 500을 기록하는 일이 잦다. 측정 최대치가 500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 시민들은 방독면 수준의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연구에 따르면 중국 38개 대도시에서 극심한 대기오염으로 인해 조기 사망하는 사람은 연간 300만 명을 넘는다.
중국에 항의하거나 협의를 거쳐 미세먼지를 줄이면 한반도의 대기오염 문제는 해결될까. 시민들 사이에서는 “미세먼지의 원인은 중국”이라는 등식이 굳혀졌지만 국내에도 화력발전소,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시설 등 미세먼지 유발원인이 존재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500곳이 넘는 대기오염 측정소가 있지만 서해를 넘어들어오는 중국발 미세먼지의 정확한 수치를 잴 수 있는 시설이 충분하지 않다. 역추적을 하는 기법도 과학적으로 신뢰도가 낮아서 중국 정부에 항의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5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한반도 인근의 대기환경을 정밀 측정한 바 있다.
명확한 결과가 도출될 때까지는 국내의 미세먼지 원인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화력발전의 비중을 줄이고 공장이 무단으로 배출하는 오염물질도 강력한 규제를 가해야 한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일 방법을 강구해서 실천하는 것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적이지 못한 측정방법과 해결책은 사회적 혼란을 높일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가스렌지를 켜고 기름으로 요리할 때 실내의 미세먼지 수치가 급증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해 6월 환경부가 고등어 구이를 문제 삼았다가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실내와 실외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은 재난 수준으로 치닫고 있지만 아직 법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명쾌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다.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체계적인 연구와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 임동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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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3-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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