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 선진국일 수 있는 힘, 그것은 바로 사회적으로 성숙한 문화의 존재 유무에 달려 있습니다. 평생교육기관인 박물관과 과학관을 바로 이웃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적 성숙은 오늘날 선진국을 있게 만든 힘입니다.”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에서 만난 조한희 부관장(대전보건대 디지털 박물관과 교수)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자연사 박물관이 건립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수려한 산세를 지닌 계룡산 국립공원 산자락 아래 위치한 개관한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은 개관한지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되었을 뿐이지만, 벌써 여기저기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고 있다. 개인이 사회에서 모은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기부 문화가 아직은 생소한 우리나라에서, 평생을 걸려 모은 소장품을 박물관으로 전시해 대중에게 아낌없이 공개하는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은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에 조한희 계룡산 박물관 부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물관은 평생 교육 시설입니다. 사람들이 집 근처에서 쉽게 박물관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선진국을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라는 것은 그것이 제가 여러 선진국의 자연사 박물관을 찾아다니면서 얻은 깨달음이었습니다.”라며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자연사 박물관 건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조 부관장은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50여년간 과거에 비해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루면서 어느 정도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성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 문화적 성숙은 뒤처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박물관은 기형적으로 역사나 고고학 분야에 치우쳐 있어 국가적인 규모의 자연과 과학에 대한 박물관이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저희 관장님께서는 이에 대한 박물관 건립 구상을 오래전부터 하셨고, 청운문화재단을 설립하셔서 지난 9월 21일 첫 개관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 관장인 이기석 관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 부관장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안과의사이자 대전보건대학 설립자인 이기석 관장(82)은 바로 조 부관장의 시아버지 되시는 분이시다.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이 사회에서 벌어들인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방법을 고심하던 이 관장은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자연사 박물관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수 년의 세월 동안 며느리인 조 부관장에게 해외 각국의 유명 자연사 박물관을 둘러보게 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이런 이기석 관장의 박물관 건립에 대한 노력과 열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기에 조 부관장은 자연사 박물관에 더욱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세계에서 이름난 자연사 박물관은 거의 빼놓지 않고 다 가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각 자연사 박물관마나 4주에서 8주 정도의 시간을 두고 꼼꼼히 전시 시설, 기획 방향, 운영 및 홍보 방법, 전시물의 종류 등을 파악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박물관과 캐나타의 오타와 박물관입니다.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은 규모 면에서는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나 영국의 자연사 박물관에 못 미치지만, 3개 이상의 전공을 가진 박물관 직원들이 여러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오타와 박물관의 전시 시스템은 놀랄만큼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었고,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도 오타와 박물관의 시스템을 모델로 구상되었습니다.”
이렇게 조 부관장의 정성이 깊이 배어 있는 계룡사 자연사 박물관은 계룡산 산자락 아래 대지 1만 2천평, 건평 4천평에 3층 규모의 시설이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는 높이 16m, 길이 30여 미터의 대형 공룡 화석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화석은 우리 박물관의 자랑이자 우리나라의 귀한 보물입니다. ‘계룡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이 공룡 화석은 쥐라기 시대에 살던 브라키오사우르스의 일종으로 지난 2002년 미국 와이오밍 주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이 종류는 전세계적으로 3마리 밖에 발굴되지 않은데다가 ‘계룡이’의 경우 한 마리의 골격 보존률이 85%로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을 우리가 들여오게 된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또한 조 부관장은 “정밀 분석 결과 계룡이의 경우, 브라키오사우르스와는 조금 다른 종으로 밝혀져 이기석 관장님의 호인 ‘청운’을 본따 천우호연사우르스 청운엔시스(Chunwoohoyeonsaurs Chungwoonensis)라는 정식 명칭을 부여받았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총 3층의 관람실에는 계룡이를 비롯한 공룡관, 우주관, 지구관, 보석관, 화석관, 수중관, 곤충관, 인간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약 4,000여점의 전시물들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원래 저희가 수집한 물품은 약 40,000여점입니다. 그 중에서 일부를 전시에 사용하는 중이며, 3~6개월에 한 번씩 전시품들을 교체할 예정입니다.”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에서 계룡이에 버금가는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학봉장군의 미라 전시이다. “이 자연사 박물관이 다른 자연사 박물관과 다른 점은 ‘사후의 세계’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지구상 모든 생물 중에 죽음 이후의 시간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600여년 동안 지하에 묻혀 있던 학봉 장군과 그 손자의 미라와 함께 사후 세계에 대한 영상물 상영관을 만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박물관은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전시되어 있으나, 시설에 비해 이를 찾는 사람들은 적은 편이었다.
“아직은 개관 두 달 밖에 되지 않아서 아직 인지도가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박물관 자체에 대해서 국민적 관심이 높지 않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두고 꾸준히 홍보에 노력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KTX의 열차 내 방송과 특별전, 시도 교육청을 통한 교육적 가치 홍보, 특별 경연대회 등을 준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여러 가지 다양한 행사를 통해 이슈화를 시킬 예정입니다.”
현재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기획은 매달 마지막주 일요일에 개최하는 학술 세미나로 지난 10월 29일에는 한국생명공학연구소 정혁 단장의 ‘씨감자’ 강연이 있었고, 이번 11월 28일 오후 4시에는 고대 안암병원 병리과 전문의 김한겸 박사의 ‘현대 의학이 밝혀낸 600년 전 학봉 장군의 죽음’에 대한 세미나가 개최될 예정이다. 처음 열렸던 10월의 세미나 반응이 매우 좋아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하여 박물관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갈 예정이다.
“진정한 선진국이란 단지 경제적으로만 부유한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양질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이 현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인 ‘과학’에 대해 더 많이, 더 폭넓게, 더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시설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과학관과 박물관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이를 높일 수 있는 정부의 뒷받침이 이제는 필요한 시기입니다.”
- 이은희 기자
- 저작권자 2004-11-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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