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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김준래 객원기자
2015-02-27

건축가이자 환경 지킴이인 '흰개미' 초원 사막화 방지···집 모방한 건축물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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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갉아먹는 흰개미(termite)는 목조건축물을 손상시키는 주범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대표적 해충으로만 여겨져 왔던 흰개미가 사실은 초원 사막화를 방지하는 환경 지킴이이자, 사람도 감탄시킬만한 천재적 건축가라는 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초원 사막화의 방지를 위해 흰개미 군락을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원 사막화의 방지를 위해 흰개미 군락을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Wikipedia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아프리카 현지 조사를 통해 흰개미가 사막화를 방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보도하면서, 이것이 사실이라면 초원 사막화의 방지를 위해 흰개미 군락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 링크)

흰개미 집 주위의 식물이 더 잘 자라

흰개미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사실 개미 보다는 바퀴벌레와 더 가까운 곤충이다. 하지만 일반 개미와 같은 집단 군락을 이루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흰개미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대표적 초식 곤충이기도 한 흰개미는 장내에 들어있는 미생물들이 셀룰로오스(cellulose)와 헤미셀룰로오스(hemicellulose)를 강력하게 분해해 주기 때문에,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나무 등을 갉아먹을 수 있다.

이 같은 흰개미에 대해 미 프린스턴대 생태 및 진화생물학과의 코리나 타니타(Corina Tarnita) 교수와 연구진은 처음부터 조사할 생각은 아니었다. 전 세계 초원과 사바나 지역의 생태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흰개미집(termite mound)’ 주변의 식생에 대해 조사를 하다가 타 지역과는 다른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흰개미의 둥지로 알려져 있는 흰개미집은 보통 초원 지역 곳곳에 수 미터(m) 높이로 솟아 있다. 그런데 연구진은 이 집들을 중심으로 주변 식생을 분석하던 끝에 집과 식물 사이에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 연관성이란 비슷한 강수량이라도 흰개미 집이 있는 지역과 아닌 지역의 식생이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연구진의 조사에 따르면 흰개미집이 있는 지역의 식물이 없는 지역보다 훨씬 잘 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막화 진행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싶다면, 산재한 흰개미집의 효과를 배제해야 한다
사막화 진행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싶다면, 산재한 흰개미집의 효과를 배제해야 한다 ⓒ Wikimedia

강수량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흰개미집이 있는 지역은 사막화가 늦춰지게 됨에 따라 식물들이 더 잘 견딜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연구진은 흰개미집이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습기를 실어 나르는 통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타니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흰개미집은 토양의 특징을 변화시키고, 주변 식물들에게 영양소를 제공하여 식물들이 말라 죽는 것을 막아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만약 특정 생태계의 사막화 진행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싶다면, 항공으로 식물분포 사진을 찍었을 때 거기서 흰개미집에 의한 효과를 제거해야 보다 명확한 자료가 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주장이다.

타니타 교수는 “사실 예전부터 흰개미집 주위에는 식물이 잘 자란다는 사실을 현지 원주민들의 입소문을 통해 들어 왔다”고 밝히며 “하지만 흰개미집이 사막화를 막을 수 있을 만큼이나 식생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언급했다.

이 외에도 연구진은 이번 조사를 통해 흰개미집 주변의 풀과 나무들이 잘 자라게 되면, 이들을 섭취하는 흰개미들의 먹이도 자연스럽게 풍부해진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른바 공생 생태계가 형성된다는 것이 타니타 교수의 설명이다.

그녀는 “그동안 학계에서는 흰개미와 식물이 오랜 세월 동안 먹고 먹히는 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해 왔다”고 전하며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흰개미가 단순히 포식자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 지킴이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흰개미집의 순환시스템을 모방한 이스트게이트

흰개미가 짓는 집은 초원의 사막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건축물이기도 하다. 비록 진흙 알갱이에 타액과 배설물을 섞어서 쌓아 올린 둔덕에 불과하지만, 건조하고 무더운 사바나지역의 생태시스템 내에서 탄소와 물의 흐름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흰개미집은 내부의 여러 방에서 발생한 열이 집 구조물 내의 경로를 통해 위로 점점 좁아지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따듯하고 습한 공기가 구조물의 통풍구를 따라 올라가면, 둥지 아래의 지하 구역을 통해서 새롭게 차가운 공기가 내부로 흘러 들어와 따뜻한 공기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또한 흰개미집은 구조적으로 충분한 열용량을 가지고 있어 밤에 축적된 냉기가 낮 동안 내부 환경이 가열되는 것을 완화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각각의 시스템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외부 온도가 섭씨 1~40도(℃)를 오가는 동안에도, 흰개미집의 내부 온도는 최적인 30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흰개미집의 이러한 순환시스템을 건축물에 모방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짐바브웨에 위치한 이스트게이트 센터(Eastgate Center) 빌딩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환경 건축가인 믹 피어스(Mick Pearce)는 흰개미집을 모방하여 건물 옥상에 뜨거운 공기를 배출할 수 있는 통풍구를 만들고 건물 아래쪽에는 찬 공기를 건물로 끌어들이는 자연통풍 시스템을 디자인했다.

흰개미집의 순환시스템을 건축물에 모방한 대표적인 사례인 이스트게이트 센터 ⓒ Wikimedia
흰개미집의 순환시스템을 건축물에 모방한 대표적인 사례인 이스트게이트 센터 ⓒ Wikimedia

그 결과 이 건물은 외부 에너지를 사용하는 에어컨의 가동 없이도 38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 24도 정도의 적정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에어컨 시스템을 설치할 필요가 없게 된 덕에 이 빌딩은 총 3500만 달러에 달하는 건축비용의 10퍼센트(%)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재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스트게이트 빌딩의 중층구조 환기 시스템은 에너지 소비량이 유사한 규모의 일반 건물에 비해 10퍼센트 이하에 그칠 만큼, 뛰어난 에너지절약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피어스 건축가는 흰개미 집을 모방한 환기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켜 멜버른 시의회 청사 건축에도 적용하였다. 물론 이스트게이트 센터와 마찬가지로 이 건물에도 더워진 공기는 위로 상승하고 천정의 빈틈을 지나 북쪽 굴뚝을 통해 외부로 배출되는 방식을 적용하였다.

그리고 태양이 잘 비치지 않는 남쪽 면에는 샤워타워를 설치해 실내의 더운 공기를 흡수하는 상층의 물과 공기가 저층으로 순환하도록 함으로써 실내온도를 적절하게 조절하였다. 그 결과 이 건물 역시 냉난방 시설을 가동하지 않고도 실내 온도를 24℃정도로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전기 소비량의 85퍼센트와 가스 소비량의 87퍼센트, 그리고 물 사용량의 28퍼센트를 절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영국의 한 연구팀은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흰개미집을 모두 스캔하여 개미집 구조를 밀리미터(mm) 당 조각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하여 주목을 끈 바 있다. 이들은 흰개미집 환기시스템을 적용한 주택을 3D 프린터로 찍어 내겠다는 계획을 밝혀, 자연을 모방한 최초의 친환경 주택 기술 탄생을 예고했다.

김준래 객원기자
stimes@naver.com
저작권자 2015-02-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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