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에요. 그 어떤 대단한 기술을 가져왔다 해도 사람들이 감동을 받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죠. 공연무대는 특히 관객과 바로 마주하기 때문에 대단한 기술은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줘야 의미가 있습니다. 즉 그 기술이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 녹아있어야 관객들이 감탄하는 거죠.”
‘매지컬(magical)’ 이라는 수식어를 최초로 입은 뮤지컬 ‘고스트’의 무대감독 폴 키에브(Paul Kieve)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한 <문화기술(CT) 포럼 2014>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포럼에는 ‘매지컬’ 이라는 수식어로 뮤지컬의 새로운 흥행 공식을 쓴 ‘고스트’의 폴 키에브 감독, ‘겨울왕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유재현 아티스트,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의 아이작 베르트란 등이 참여해 다양한 문화기술 활용 사례 등을 제시했다.
마술사로 일한 경험, 무대공연으로 꽃피워
포럼의 기조연설은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해 최첨단 무대기술을 적용시킨 폴 키에브 감독이 선보였다. ‘콘텐츠 표현 메커니즘의 다변화와 기술의 역할’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한 그는 지난 2012년 자신에게 뉴욕드라마데스크어워드(New York Drama Desk Awards)를 안겨준 ‘고스트’의 문화기술을 비롯해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적용한 마술효과 및 최근 미국 TV 드라마에 채용한 비주얼 특수효과를 소개하고 더불어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10살 때부터 마술을 배워온 키에브 감독은 5년 정도 마술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일하는 와중에 극장으로부터 특수효과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아 ‘투명인간’을 올렸고, 이는 그가 공연과 첫 연을 맺게 된 작품이다. 이후 영화와 뮤지컬 등 수많은 작품에 마술을 이용한 다양한 일루전 기법을 도입했다.
수많은 작업을 거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키에브 감독은 “무대극이라는 점에서 특수효과와 CG는 차이가 있다”며 “무엇보다 무대 공연은 주8회 이상 라이브로 공연돼야 한다는 점에서 기술적 요소와 마술적 요소를 잘 조합해 안정적인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다.
기술은 스토리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야 한다. 키에브 감독은 “만약 그 기술만이 유독 눈에 띌 뿐 극의 스토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면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없다”며 “컴퓨터그래픽(CG)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CG는 그 자체로 주목을 받을 수 있어 대중들에게 많은 홍보효과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의 입 벌어지게 하는 작품 만들어야
이어 진행된 ‘CT + Art & Life’ 세션에서는 ‘겨울왕국’을 비롯해 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영화 ‘지.아이.조 –더 라이즈 오브 코브라’, ‘왓치맨’ 등의 그래픽 효과를 담당한 월트디즈니의 유재현 아티스트가 ‘할리우드 영화 와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발표를 이어갔다.
강연에서 그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속 기술을 이야기 하면 결국 질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제작비와 긴 시간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사람들의 ‘열린입 현상’을 언급하면서 “무언가에 감탄하거나 감동을 받으면 사람들의 입은 자연스럽게 열리게 된다. 이것은 심리학이 아니라 뇌에서 발생하는 생물학적 현상”이라며 “이처럼 사람들의 입이 벌어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월트 디즈니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가 ‘겨울왕국’에서 진행한 작업은 주인공 엘사의 드레스가 변화하는 모습이다. 극 중 엘사의 드레스는 음악과 스토리에 맞춰 아름답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로부터도 감탄을 자아냈다.
유재현 작가는 “엘사의 드레스가 변하는 모습에는 고체와 기체, 즉 고체와 연기의 특성을 조합해 활용했다”며 “고체는 뭔가 딱딱한 물체이고 거기에 빛을 쏘면 반짝 거린다. 반면 연기는 그렇지 않다. 고체의 반짝거림과 연기를 합쳤다고 보면 된다. 즉, 기체인데도 반짝거리는 모습을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평소 자연현상의 움직임을 그래픽으로 작업한 그는 월트 디즈니에 입사한 후 그간 자신이 진행해온 작업에 디즈니만의 라인을 덧입혔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디즈니는 그들만의 라인이 캐릭터 곳곳에 숨어있다.
한국과 미국의 작업환경의 차이를 묻는 말에 그는 “다른 건 모르겠으나 단적으로 말하자면 엘사의 드레스 작업만 1년 2개월을 진행했다. 이렇게 저렇게 수많은 방식으로 표현해서 이번 방법이 채택된 것”이라며 “월트 디즈니에서는 작품의 스토리 전개가 완전히 바뀌어서 작업을 다시 진행해야 하는 게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만약 엘사의 드레스도 ‘갈아엎는’ 일만 생기지 않았다면 2~3주면 가능했을 작업이다. 그러나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결국 ‘높은 품질 = 시간 + 제작비’라는 이야기다. 그는 “미국사회에서는 시행착오도 결국 작업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다”고 덧붙였다.
스토리 아래 수많은 기술 얽혀 있어
다음 발제에서는 구글 크리에이티브랩 소속의 디자이너인 아이작 베르트란(Ishac Bertran)이 인터랙션 문화기술을 바탕으로 인텔과 레고 등 세계 다국적기업과 함께한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를 이어갔다.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을 주제로 발제를 선보인 그는 “과거에는 예술이 원 재료이고 이를 조각하기 위해 기술을 이용했지만 현재는 기술이 원 자재로 쓰이고 예술이 하나의 프로세스로 가공해 나가는 과정이 됐다”고 운을 뗐다.
결국 사람들에게 보이는 기술은 ‘스토리’ 에 쌓여있어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것의 수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굉장히 복잡한 기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르트란 디자이너는 “구글의 경우 예술이나 공공예술을 통해 조합하려고 하고 있다. 굳이 방향성을 말하자면 기술을 많이 사용하되 좀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강연에는 이동만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장이 ‘문화콘텐츠산업 발전의 원동력’에 대해, 김한철 레드로버 부사장이 ‘넛잡의 미국 성공기를 통해 본 국내 기술사업화의 추진방향성과 의미’를 이야기 했으며 김동호 숭실대 교수가 ‘공연의 품격을 높여주는 공연무대 메커니즘의 미래’ 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포럼에 참여한 이기현(24) 관객은 “평소 즐겨보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어떤 기술이 사용됐는지 궁금했다”며 “이번 포럼을 통해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될 수 있었다. 기업의 정보관리 차원으로 인해 비록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비법’을 듣지는 못했지만 유용했던 시간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홍상표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은 축사를 통해 “이번 포럼은 국내․외 문화기술(CT)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지속 가능한 한류 3.0시대를 열기 위한 문화기술의 발전방향을 조망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5-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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