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치는 하늘에는 번쩍이는 빛과 함께 큰 소리가 발생한다. 천둥과 번개다. 번개는 양전하가 쌓인 구름에서 음전하가 쌓인 땅이나 다른 구름으로 전자가 이동하면서 방전이 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공기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부피가 팽창하느라 천둥소리가 생긴다.
최근 노르웨이, 미국, 남아공 3개국의 과학자들이 모여 ‘검은 번개’의 정체를 밝혀냈다. 일반적인 흰색 번개가 치기 직전에 감마선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전파가 방출된다는 것이다. 검은 번개가 지속되는 시간은 0.01초에 불과하다.
연구결과는 미국지구물리학연맹(AGU)이 발행하는 학술지 ‘지구물리 연구서(Geophysical Research Letters)’ 최근호에 게재되었다. 논문의 제목은 ‘시각적 번개와 지상 감마선 섬광의 우주 동시 관측(Simultaneous observations of optical lightning and terrestrial gamma ray flash from space)’이다.
1991년 최초로 발견된 ‘검은 번개’
1991년 4월 미국은 콤튼 감마선 관측위성(CGRO)을 발사했다. 태양의 플레어와 우주 전 지역에서 발생하는 감마선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위성으로부터 이상한 데이터가 전송되기 시작했다. 일부 감마선은 우주가 아닌 지구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기의 오작동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두 달에 한 번 꼴로 꾸준히 지상 감마선이 관측되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위성 발사 이후 1993년 10월까지 열두 건의 사례를 모아 지도 위에 표시하자 모두 적도 부근의 저위도 지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폭풍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들이다. 발생 위치도 지상에서 30킬로미터 이상의 공중이었다. 연구결과는 1994년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되었다. (http://www.sciencemag.org/content/264/5163/1313)
우주과학자들은 결국 폭풍이 발생할 때 감마선이 대거 방출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상 감마 섬광(TGF)’이라는 명칭을 부여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관측이 어렵고 과학적 증거가 부족해 이후에도 자세한 원리를 규명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흐른 2006년 10월 27일 새벽, 남아메리카의 베네주엘라 북부에 거대한 폭풍 구름이 형성되어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카리브해와 연결된 마라카이보 호수 지역이었다.
때마침 위를 날아가던 인공위성이 거대한 번개가 발생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새벽 4시 56분 3초였다. 그런데 당시 이 지역을 지나던 위성이 한 대 더 있었다. 공교롭게도 감마선 관측장비를 싣고 있어서 관련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다.
초속 7킬로미터의 인공위성 두 대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지나며 동일한 사건을 목격한 것도 놀랍지만, 광학 관측과 감마선 관측을 동시에 실시했다는 것도 대단한 우연의 일치다.
게다가 3천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듀크대학교의 전파수신기가 저주파(VLF)의 전파 방출을 기록했다. 덕분에 문제의 번개가 발생한 위치와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세 번의 우연이 겹친 것이다.
번개 칠 때 전자, 감마선, 전파 동시 방출돼
세 가지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시킨 것은 노르웨이, 미국, 남아공 3개국 공동연구진이었다. 새로운 탐색 알고리듬을 개발한 덕분에 여러 위성이 수집한 데이터 속에서 지상 감마 섬광이 발생한 사례를 기존의 두 배 이상 찾아낼 수 있었다.
발생 시간과 위치를 기타 데이터와 비교하는 과정에서 2006년 베네주엘라 폭풍 당시 광학, 감마선, 전파 등 세 가지 데이터가 동시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주가 아닌 지구에서 발생하는 감마선이 폭풍과 번개에 의한 것임이 입증된 셈이다.
데이터를 종합하자 일반적인 흰색 번개가 치기 직전에 감마선과 전파가 폭발적으로 방출되는 ‘검은 번개’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원리는 이러하다. 폭풍을 일으키는 소나기구름이 발생하면 상승기류에 의해 물방울이 아주 잘게 부서진다. 그 중에서 양의 전하를 가진 물방울은 구름 상층부로 올라가서 강력한 전기장을 형성한다.
반대로 음의 전하를 가진 물방울은 구름 아래쪽과 지상으로 내려간다. 전하가 정도 이상으로 쌓여 과부하가 걸리면 전자가 폭발적으로 방출되는 방전 현상이 일어난다. 번개가 치는 것이다.
그런데 구름 상층부에 발생한 전기장의 세기가 증가할수록 전자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며 다량으로 쏟아진다. 이른바 ‘전자 폭포’ 현상이다.
이 전자들이 습기를 머금은 공기 분자와 부딪히면 감마선이 생겨나고 점차 누적되다가 폭발 수준의 방출이 일어난다. 동시에 저에너지 전자들도 생겨나 전류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전파가 발생한다. 이것이 ‘검은 번개’다.
연구를 이끈 니콜라이 외스트고르(Nikolai Østgaard) 노르웨이 베르겐대 교수는 미국지구물리학연맹의 발표자료를 통해 “검은 번개와 흰 번개가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번개가 형성되는 전체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서로 다른 장비를 탑재한 두 대의 위성이 동일한 자연현상을 관측한 덕분에 번개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었다”며 “3년 후 유럽우주기구(ESA)가 대기우주 상호작용 관측위성(ASIM)을 발사하면 지상 감마 섬광에 대한 분석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스트고르 교수는 현재 위성에 탑재될 감마선 관측장비를 개발중이다.
- 임동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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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3-05-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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