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산바가 지나가고, 곧 가을 날씨가 계속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다음달부터는 단풍이 남쪽에서부터 올라온다고 한다. 바야흐로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가을은 볕이 좋아 외출을 하기에도, 등산을 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특히, 여름내 만났던 강한 볕과는 다르게 가을볕은 피부에 좋다는 속설이 있다.
"봄볕에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 내보낸다"
"봄볕에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 내보낸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봄볕은 건강과 피부에 좋지 않아 며느리를 내보내는 반면, 가을볕은 건강과 피부에 좋으니 딸을 내보낸다는 뜻이다. 시어머니의 차별이 담겨 있는 단순한 속담이지만, 이 속에도 과학적인 근거가 숨어 있다.
대가족이 모여살던 과거에는 결혼을 하고, 남편의 집에서 남편의 식구들과 함께 사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며느리에게는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논밭에서 일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시어머니 입장에서 며느리는 미운 사람이고, 딸은 예쁜 사람이었다. 그래서 좋은 것은 딸에게 주고, 나쁜 것은 며느리에게 준다는 뜻에서 나오게 된 속담이다.
그렇다면 '햇빛'이 아니라 '햇볕'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햇볕과 햇빛은 같은 말처럼 느껴지지만,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햇빛'은 일광(日光)이라고도 하며, 태양이 제공하는 일련의 스펙트럼을 말한다. 지구에서는 햇빛이 대기를 통해 걸러져 태양이 수평에 있을 때, 낮 동안 태양 복사가 행해진다. 다시 말해 '햇빛'은 해에서 나오는 밝은 빛 자체를 말하는 반면,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따뜻한 기운을 말하는 것.
봄볕과 가을볕의 차이
봄과 가을 모두 비가 적고 맑은 날이 많아 사람들이 외출하기에 좋은 날씨이지만, 일사량과 습도는 다르다. 일사량의 경우, 가을보다는 봄이 많다. 기상청 관측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봄철인 3월에서 5월까지의 평균 일사량은 평방미터당 약 150메가줄(MJ)*, 가을철인 9월에서 11월까지의 평균 일사량은 99메가줄로 봄이 가을에 비해 1.5배 가량 많았다.
습도의 경우, 가을철 평균 습도는 69%로 봄철의 64%보다 높다. 습도가 높으면 햇빛이 지표에 도달하는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당 일사량의 차이가 크지 않아도 사람들이 가을을 더 쾌적하게 느끼게 된다. 북반구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에게는 봄보다는 가을이 더 쾌적한 반면, 남반구인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는 봄볕이 가을볕보다 더 쾌적하다고 느낀다.
봄볕이든 가을볕이든 햇볕이 인체에 중요한 이유는 바로 햇볕을 통해 자외선이 피부에 자극을 주면 신체 내에서 비타민 D 합성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비타민 D는 각종 생리적 기능 유지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질환이 생기기 아주 쉽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골다공증과 낙상, 고관절 골절 발생률이 증가하게 되며, 여러 암이나 자가면역질환 발생률도 함께 높아진다.
생리적 기능 유지에 중요한 비타민 D
최근 피부노화와 피부암 발병의 원인이 된다며 햇볕 노출을 꺼려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 여성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햇빛의 자외선을 오래 쪼이면 피부 노화가 촉진되고, 피부암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햇볕은 지구상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데 근원이 되는 존재이며, 그만큼 사람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연어나 청어 등 다양한 식품으로 비타민 D를 섭취할 수 있지만, 사실 그 효과는 미미하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보스턴 대학 메디컬센터의 마이클 홀릭 박사 연구팀은 2009년 1월 미국 임상내분비대사 저널을 통해 관련 연구 자료를 발표했다.
이들이 임산부 253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출산 시 비타민 D의 활성형태인 '25-수산화 비타민 D' 수치가 37.5nmol/L 이하인 여성은 제왕절개 분만율이 28%나 된 반면, 25-수산화 비타민 D 수치가 그 이상인 여성의 제왕절개 분만율은 14%에 그쳤다. 즉, 비타민 D가 부족한 임산부는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을 확률이 높다는 것. 이 연구팀은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자궁근육이 약해져 자연 분만이 어려워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비타민 D는 앞서 말했듯 각종 생리적 기능 유지에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타민 D가 결핍될 경우, 여러 가지 암이나 자가면역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 미국 에모리대학 에바트 교수팀은 2008년 'Archives of Neurology' 에 이와 관련한 연구 자료를 발표했다. 파킨슨병 환자의 경우, 같은 나이의 건강한 성인이나 알츠하이머병 환자에 비해 비타민 D가 부족해지기 쉽다는 것. 즉 파킨슨병에서는 비타민 D의 결핍증 비율이 55%로 건강한 사람들 (36%)이나 알츠하이머병 (41%)에 비해 높게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2008년 12월 미국 심장학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30~50%의 인구가 비타민 D 결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비타민 D가 결핍될 경우, 인슐린 작용이 둔해지기 때문에 복부 비만의 원인이 되고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일종의 조절점이 올라가 지방량이 증가하게 된다. 그렇기에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에는 비만과 당뇨병, 심장병과 골다공증 등 여러 성인병과 관절 관련 질환이 생기게 된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한 햇빛
사실 봄볕이든 가을볕이든 햇빛을 쐬는 것은 비단 신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햇빛을 쐬지 않을 경우, 계절성 정동장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성 정동장애는 어느 특정 계절에만 몸이 나른하거나 쉽게 지치고 기분이 저하되는 등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일종의 뇌기능 장애이다. 계절성 기분 장애, 또는 계절성 감정장애라고도 한다.
이 정동장애는 극지방과 가까운 곳에서 가장 흔하고 심각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지방의 겨울 밤은 아주 긴 반면, 여름 밤은 짧기 때문. 정동장애를 심각하게 일으키는 사람의 경우, 겨울에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고, 여름에는 조증을 나타내기도 한다. 소수는 여름에 우울증에 빠지는 반대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계절성 정동장애는 일반적인 우울증과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 예를 들어, 이 환자들은 위상이 앞당겨진 주기를 보이는 다른 유형의 우울증 환자들과는 다르게 위상이 지연된 수면과 체온 주기를 갖는다. 아주 밝은 빛을 이용해 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일출 전이나 일몰 후 1시간 이상 밝은 빛 앞에 있으면서 인위적으로 일광 기간을 연장시킬 수도 있다.
물론 연구자에 따라 아침 일찍 인공적인 빛을 쬐는 것이 가장 큰 항우울을 갖는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아침과 저녁의 빛이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고도 한다. 밝은 빛이라면 한낮에도 효과가 있다는 등 다 다른 결과물을 가지고 있지만, 이 계절성 정동장애를 일으키는 원인과 완화시키는 것이 바로 '빛'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굳이 인위적인 빛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햇빛을 쬐면서 이러한 계절성 정동장애를 피할 수 있다.
햇볕은 일종의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행복물질이라고 일컫는 '세로토닌'으로 바꿔주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햇볕을 받으면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세로토닌이 더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밖으로 나가 활동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 계절인 가을이 됐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햇볕을 쬐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 하지만 일정시간을 두고 햇볕을 쬐는 것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에 좋으니, 가을볕을 즐겨도 좋을 것 같다.
*MJ : 메가줄. 연량을 나타내는 단위의 하나로, 일반적으로는 열량을 나타낼때는 칼로리(cal)나 킬로칼로리(kcal)를 사용한다. 1kcal는 표준 기압하에서 1kg 물의 온도를 1℃올리는데 필요로 하는 연량이며, 이는 4286줄(J)에 해당한다. 1cal는 4.1868J이므로 1MJ은 약 239kcal이다. |
- 이슬기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2-09-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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