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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김연희 객원기자
2012-04-10

건축, 신경과학을 만나다 치료와 창의성 발현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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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건축학연구회는 지난 4월 8일 ‘문화역서울 284’에서 'Neuroscience+Architecture, N+A The seed' 라는 주제로 그동안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경건축학연구회는 지난해 신경과학과 건축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학회다. 이날 정재승 교수는 신경건축학에 대한 전반적 설명을 해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신경건축학은 건축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과학적 연구

정 교수는 “신경건축학은 건축물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 정재승 교수가 강의를 하고 있다. ⓒiini0318

인지부조화로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연구는 공간과 인간의 친밀감을 잘 보여준다. 레온 페스팅거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재직하고 있을 당시, MIT 학부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간의 거리를 재고, 얼마나 자주 얼굴을 마주치는지를 연구 조사했다.

그 결과 같은 기숙사 안에서도 서로 가까운 방을 쓰고 있는 학생들끼리 친했으며,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계단 근처에 있는 방을 쓰는 학생들의 교우관계가 훨씬 폭넓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사람들이 자주 마주치고 얼굴을 여러 번 볼수록 그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반복노출 효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건물과 공간은 개인의 경우 인지과정에, 여러 사람의 경우 사회적 관계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신경건축학은 이런 부분을 아주 광범위하게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껏 우리는 공간이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과학은 측정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실험을 하고 난 후, 피험자에게 설문으로 연구를 진행시킬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표현과 반응 사이에 간극이 크다. 인지한 것이 복잡해서 말로 설명하는 것이 힘들 수 있어서이다.

표현하는 것과 실제 경험사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경건축학이 필요한 이유다. 정 교수는 “‘마인드리딩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됐다”면서 “분명 건물이나 공간이 복잡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겠지만,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인지하고 정보처리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치료와 창의성에도 도움 돼

정 교수는 요양원을 예로 들어 건축물이 환자 치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알려줬다. 요양원을 지을 때 보통은 예산에 맞춰 건물을 짓다보니 기숙사처럼 돼버린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믿기 어렵겠지만 방에서 나와 복도를 거쳐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70년간 사용한 주민등록번호도 기억을 못할 뿐만 아니라 계절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본인도 창피하여 방에서 안 나오게 되고, 환자는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은 벽 색깔도 모두 다르게, 거실도 건물 중앙에 놓아야 한다. 환자들은 최근 기억부터 잊어버리기 때문에 과거의 사진을 방에 붙여놓으면 훨씬 안정감을 느낀다.

“치료 건물로서의 역할은 비단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며 “신경과학을 이용하여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을 만든다면 치료 시간도 단축되고 효과도 높아지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정 교수는 말했다.

▲ 일반인들이 참여가 높은 강연회였다. ⓒiini0318
정 교수는 “신경건축학의 본격적인 연구는 최근 미국에 있는 ‘솔크 인스튜드’의 연구 결과가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조나 솔크를 위해 건립한 이 연구소는 천장이 높다. 조나 솔크는 백신 연구를 하다 도저히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13세기 성당에 들어간 조나 솔크는 갑자기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랐다. 그때 생각이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게 했다. 조나 솔크는 성당의 높은 천장이 자신의 인지능력을 확장시켰다고 믿었다. 그래서 건축가에게 연구소 천장을 높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연구소에만 오면 연구원들의 아이디어가 생겨났다. 결국 과학자들은 정말 천장이 높아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입증하기로 하고 연구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연구 결과는 사실이었다. 창의성을 담당하는 우뇌는 공간에 민감해 물리적 공간이 높고 넓을수록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결과물이 도출됐다. 

“이 연구의 경우 천장의 높이가 창의성과의 관계를 입증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어떤 건축학적, 공간학적 요소들이 복잡한 인간의 사고에 대해 우리가 측정 가능한 수준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나타낸 의미 있는 사례”라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도 필요

정 교수는 “신경건축학은 공간과 건물이 좀 더 인간에게 안락함을 주기 위해서라도 도입해야 한다”면서 “특히 가족의 화목함을 위해서 발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대개 가정의 행복은 가족 간의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주거 공간 중 옥시토신이 현저히 떨어지는 공간이 있다. 바로 부엌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가족들은 거실에서 얘기를 하지만 설거지를 하는 주부는 물소리 때문에 또는 격리돼 함께 대화를 할 수 없다. 그 결과 부엌은 주부에게 우울한 공간이 돼버리곤 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가족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부엌이 설계된다면 더 이상 우울한 공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 교수는 “부엌뿐 아니라 집안에 리얼타임으로 이 호르몬을 측정 가능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면 가족 간 화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그는 “신경건축학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씨앗이 돼서 물리적 구조나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서 이해되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건축가들이 더 좋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 분야의 벽을 과감히 넘어섰으면 한다”면서 “강제로 두 학문을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건축물에 신경과학과 심리학이 섞여 자연스런 하나의 화합물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김연희 객원기자
iini0318@hanmail.net
저작권자 2012-04-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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