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재앙설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엘레닌(elenin)’이라는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엘레닌은 현재 수억km 밖에서 태양계로 접근하고 있는 혜성이다. 러시아의 아마추어 천문가 레오니드 엘레닌에 의해 처음 발견돼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발견 당시인 2010년 12월, 엘레닌 혜성은 지구로부터 약 6억 4천 7백만 km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태양계로 접근해 약 2억7천만 km정도까지 다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체들의 직렬현상이 지구에 영향을?엘레닌은 발견 당시 궤도의 경사각과 이심률을 기준으로 한 혜성의 분류에서 다소 특이한 모습을 보여 주목받았다. 게다가 먼 우주에서 태양계로 돌진해 오는 혜성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자연스럽게 각종 재앙설도 따라 발생했다. 가장 주된 속설은 엘레닌과 지구, 태양 및 태양계 행성들의 일직선 배열에 대한 것이다.
이 속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엘레닌 혜성과 지구를 포함한 다른 천체들이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경우 지구 각지에서 크고 작은 지진들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특히 지구의 축을 흔들어 놓은 지난해의 칠레 지진과 올해 일본 지진 발생 시에도 엘레닌 혜성과 지구,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었으며 그것이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적으로 보이는 통계자료까지 내보이며 재앙설의 신빙성을 높이려 한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사실 ‘행성직렬’이라 불리는 현상은 오래 전부터 재앙의 징조로 여겨져 왔다.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내 행성들이 일직선 위에 놓이는 시점이 존재하며 그 때가 되면 내행성과 외행성들이 지구를 양쪽으로 잡아당겨 중력의 균형이 깨지며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얼핏 들었을 땐 그럴싸할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보면 행성직렬현상으로 인한 효과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거운 행성들이 지구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것들이 직렬현상을 계기로 지구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효과는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약하다. 우선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태양이다. 이 사실만으로 행성들의 중력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거리다. 태양은 그 무지막지한 질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이 지구에 미치는 인력의 반절 정도밖에 지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직렬현상이 장시간 계속되는 것도 아니다. 우연히 일직선에 놓였다 할지라도 금세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
그렇다면 혜성은 어떨까? 말할 것도 없다. 태양계 내부의 거대 행성들도 지구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태양계 밖 수억 km나 떨어져 있는데다 질량은 행성들보다 작은 것이 마법이라도 부리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엘레닌 혜성이 앞으로 지구 및 타 천체들과 일직선이 되는 날을 꼽아놓고 재앙이 들이닥칠 것이라 예언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NASA연구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그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외계인들이 엘레닌 혜성을 따라 지구로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중국 과학자들의 관측에 따르면 엘레닌 혜성 뒤쪽에서 구형 성단을 발견했으며 그로부터 알 수 없는 신호가 분석됐다고 한다. 이것이 외계인들의 우주선일 수 있다고 예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혜성이 현재 워낙에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소 산하 지구근접물체연구소 연구원 돈 예만스는 “엘레닌 혜성이 지구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석 결과 엘레닌 혜성은 10월 16일 즈음 지구와 가장 근접할 것이며 약 3천 5백만 km정도까지 접근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구와 달 사이거리의 100배에 달할 만큼 먼 거리다. 충돌은 커녕 혜성의 파편들마저 지구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 예만스는 설명한다. 그는 “엘레닌 혜성보다 나의 소형 자동차가 해양의 조류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혜성이 태양계로 다가오는 도중 또 다른 천체와의 충돌이나 중력으로 인한 이끌림 등으로 혹여나 예측된 궤도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만스는 “엘레닌 혜성은 그 궤도를 불안하게 할만한 어떤 물체에도 충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먼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확히 예측해 내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혜성의 궤도에 영향을 줄만한 큰 충돌들은 예견할 수 있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텅텅 비어있는 허전한 공간이다. 구상성단이나 은하의 중심 등의 공간은 비교적 천체의 밀도가 높겠지만 일반적인 공간은 그렇지 않다. 시커먼 암흑의 바다에 작은 점 몇 개가 찍혀있을 뿐이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달도 우주에서 보면 상상했던 것 보다 매우 멀리 떨어져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엘레닌 혜성의 궤도를 예측한 결과 그 경로 상에 큰 영향을 줄 만한 천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그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과학자들에게 혜성은 재앙이 아닌 반가운 존재혹자들은 매번 정확한 분석과 예측으로 수많은 재앙설을 물리치는 과학자들 때문에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물론 지구의 종말을 바라는 것은 아닐지라도 내심 자극적인 현상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지구의 안전을 위해 이들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한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지구근접물체연구소 프로그램은 일명 ‘우주 지킴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들은 지구로 접근하는 혜성, 운석, 소행성 등과 같은 천체들이 지구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거나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다. 그 천체들을 발견하고 관측을 통해 특징을 분석하며 경로를 예측하는 것 등이 그들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가 “지구를 빗겨가니 안전하다”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구에 근접하는 혜성은 연구가치가 높다. 인류가 우주로 쏘아 보낸 우주선 중 가장 멀리까지 간 것은 보이저 호. 이제야 태양계를 벗어나려 하는 중이다. 반면 혜성 및 소행성은 인류가 갈 수 없는 곳은 물론, 관측조차 힘든 곳으로부터 날아온 것이기 때문에 먼 우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혜성은 생명체 우주 공간에 전파함으로써 행성에 생명의 씨앗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고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지구를 찾아오는 혜성들이 온갖 재앙설과 충돌설로 두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천문학자들에게 이들은 새로운 연구대상이 될 수 있는 반가운 존재인 것이다.
- 조재형 객원기자
- alphard15@nate.com
- 저작권자 2011-05-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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