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우주인 탄생, 천리안 발사 등으로 항공우주과학이 전국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항공우주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관심을 고취시키고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발행중인 웹진 카리스쿨의 콘텐츠를 주 1회 제공한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그린 그림이 하늘 위로 날아다니게 됐습니다. 제목은 ‘2018년 평창의 모습’입니다. 하늘에는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눈사람이 있고, 스키점프 선수와 태극기를 들고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선수가 멋지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이 날아다니는 세계 곳곳에는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림이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비밀은 항공기에 있습니다. 학생이 그린 그림을 크게 출력해서 항공기에 붙이는 것이죠. 이렇게 대형 그림을 항공기 등에 붙이는 기술을 ‘래핑(wrapping)’이라고 합니다.
‘래핑’은 컴퓨터로 작업한 이미지를 특수 필름에 출력시켜 붙이는 기술입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래핑 버스’가 등장한 뒤로 알려지기 시작했죠. 당시 다양한 이미지가 붙여진 버스가 시선을 끌었고, 이후에 지하철과 건물 바깥벽, 항공기 등에도 이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페인트로 직접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지만 ‘래핑’을 이용하면 더 정확하고 자세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공기 몸체에 이미지를 입히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그렇고 거대한 항공기 몸체에 이미지를 붙이는 ‘래핑’ 작업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축소 모형항공기로 시험… 이미지를 타일처럼 잘라여객기로 사용되는 ‘보잉 747’의 몸체 길이는 약 70m, 높이는 약 19m나 됩니다. 이렇게 거대한 크기의 항공기에는 한 번에 이미지를 붙일 수 없습니다. 특히 항공기에 이미지를 붙일 곳, 즉 항공기의 몸체가 평평하지 않기 때문에 ‘래핑’ 전에 몇 가지 작업을 해야 합니다.
우선, 항공기에 붙일 이미지와 위치를 정합니다. 그 다음에는 항공기의 크기를 정확하게 잽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도면을 그리기 위해서죠. 만들어진 도면으로 컴퓨터 작업이 끝나면 실제보다 20분의 1로 줄인 항공기 모형으로 미리 ‘래핑’해 봅니다. 작업 결과를 미리 살피고, 문제가 생기면 고치기 위해서죠.
모형항공기로 최종 수정을 거친 자료는 ‘타일링(tiling)’ 작업을 합니다. 커다란 이미지를 화장실 바닥의 타일처럼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것이죠. 잘려진 이미지는 실제 항공기에 붙일 수 있게 ‘스카치프린터 전용원단’으로 만들어집니다.
항공기 꼬리부터 머리로, 아래에서 위로 감싸
‘타일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이미지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붙여집니다. 항공기 꼬리부터 머리 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붙여야 하는 거죠. 이런 규칙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항공기는 빠른 속도로 날면서 공기와 부딪칩니다. 그런데 이때 이미지가 떨어지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벗겨진 이미지가 항공기 주변 공기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주변 공기가 매끄럽지 않으면 항공기가 양력을 얻기 어려워집니다. 또 이미지가 떨어진 날개 표면은 공기와 마찰로 부식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양력이 줄어드는 원인이 되죠.
따라서 ‘항공기 래핑’에서는 이미지를 단단하게 붙이는 게 중요합니다. ‘타일링’ 과정의 규칙은 이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꼬리부터 머리 쪽으로 이미지를 붙이면, 항공기 뒷부분의 이미지가 앞부분 이미지 아래로 들어갑니다. 또 아래에서 위로 이미지를 붙이면 위쪽 이미지가 아래쪽 이미지를 덮게 되죠. 그러면 항공기가 빠른 속도로 날아도 이미지가 떨어질 확률이 줄어듭니다.
이미지를 모두 붙인 다음에는 문이 열리는 곳과 짐 칸, 비상구 근처 이미지를 잘라냅니다. 항공기 운항에 방해되지 않도록 정리하는 작업이죠. 이렇게 작업한 항공기는 멋진 모습을 뽐내며 하늘을 날게 됩니다.
전 세계로 전하는 ‘항공기 래핑’ 메시지
‘항공기 래핑’은 한눈에 띄는 큰 이미지가 하늘을 누비기 때문에 홍보 효과가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2001년 이후 ‘항공기 래핑’을 꾸준히 이용하고 있죠. 2007년에는 훈민정음으로 만든 모나리자를 B747-400 항공기에 ‘래핑’했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시작된 것을 알리는 메시지였죠. 또 작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바라는 어린이의 그림을 항공기에 입히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모양새를 잘 꾸미는 일도 필요하다는 뜻이죠. ‘래핑’ 기술로 더 멋지게 변신 중인 항공기를 보며 이 말이 더 힘 있게 들립니다. 우리나라를 알리는 메시지로 ‘래핑’한 항공기가 전 세계 하늘을 날면, 전 세계인이 한국을 더 멋진 나라로 기억하지 않을까요? 물론 ‘래핑 항공기’만큼 멋진 나라를 만드는 게 먼저겠지만요.
-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2011-03-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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